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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로운 사람이 되라
황광민  |  seokkyo@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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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년 02월 02일 (토) 20:15:52 [조회수 : 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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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6장 32-26절

자비로운 사람이 되라

 

가.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36절,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 본문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이 자비로우신 것처럼 성도들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라는 말씀이다. 여기서 ‘자비로운’(오이크티르몬)은 연약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은 참으로 자비로운 분이시다. 성도들은 이를 배워야 한다.

* 물론 사람이 하나님처럼 온전히 자비로울 수는 없다. 그렇지만 할 수 없다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성도가 바라보고 따라야 할 푯대다. 그리고 푯대가 분명해야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게 되고, 또한 최선을 다하고도 부족함을 고백하게 된다. 이것은 참으로 부담스러운 주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여 노력함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한다.

* 35절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말하며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사람을 가리킨다.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우레의 아들’이라고 불린 것과 맥을 같이 한다(막3:17). 이처럼 성도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이 올바른 신앙생활이다.

 

나. 너무 계산적인 것이 문제다.

32절,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느니라.”

* 그런데 사람들의 속성이 너무 계산적인 것이 문제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자기에게 선대하는 사람을 선대하는 것은 죄인들도 그리할 수 있다(33절). 성도들은 세상의 죄인들과 구별된 사람으로서 자신의 삶을 철저하게 성별해야 한다.

* 세상의 보편적인 원칙은 ‘받은 만큼 주기’(give and take)이다. 주님은 이 벽을 깨기 원하신다. 주님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주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주느니라”(34절)라고 꼬집으셨다. 하나님의 자비로운 성품을 익혀야 한다.

* 세상에는 계산적이지 않은 사람을 바보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계산적이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고 결국에는 무능한 사람으로 취급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호6:6)라고 하신 말씀을 참조하라.

 

다. 사랑과 자비의 수준을 높여라.

35절,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 예수님은 ‘받은 만큼 주기’의 벽을 깨고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명령하신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는 성도들이 사랑의 수준을 높이지 않고는 실행하기 어렵다. 성도들은 사랑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원수까지 사랑하고 위하여 기도할 수 있도록 사랑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 본문에서 사용된 ‘사랑’(아가페)은 수준이 높은 사랑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사랑을 육적인 사랑(에로스)을 넘어, 부모의 내리사랑(스톨게)을 넘어, 우정의 사랑(필로스)을 넘어,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사랑(아가페)의 수준으로 향상시켜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아직까지 죄인들의 사랑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이는 온전한 성도가 아니다. 사랑과 자비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 하나님이 호세아를 통해 보여주신 긍휼(라함)과 사랑(아하브)이 수준 높은 사랑이다. 호세아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고멜에게 자비를 베풀었다. 또한 룻이 나오미에게 베풀었던 선대(헤세드)가 수준 높은 사랑이다. 이렇게 성도가 사랑의 수준을 높여야 하나님의 자녀답다고 할 수 있다.

 

라. 자비로운 삶에 하나님의 상이 있다.

35절, “그리하면 너희에게 상이 클 것이요...”

* 본문은 성도가 원수까지 사랑하고 선대하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며 하늘에서 상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기서 ‘상’(미스도스)은 ‘보상’ 또는 ‘보응’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하나님은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보상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보응 즉 벌을 내리신다. 자비로운 삶에는 헌신과 희생이 따른다. 그런데 이러한 희생과 손해는 하나님이 보상하신다.

* 본문에서는 특별히 자비로운 사람에게 칭찬이 있다고 하였다. 본문에는 세 번이나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라고 묻는 말씀이 나온다. 여기서 ‘칭찬’(카리스)은 ‘매력’ 또는 ‘은총’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즉 자비로운 사람은 매력 있는 사람으로서 하나님께는 은총을 입게 되고 사람들에게는 칭찬을 받게 된다. 특별히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사람은 하늘에서 상이 크다.

*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선대를 은총으로 갚으신 것을 참조하라(창18장). 나오미를 선대한 룻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선대를 참조하라(룻1:8). 자비로운 삶은 하나님이 보상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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