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 > 황광민 목사의 설교노트
네가 어디에 있느냐
황광민  |  seokkyo@korea.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19년 01월 27일 (일) 09:02:04 [조회수 : 481]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창세기 3장 8-10절

네가 어디에 있느냐

 

가. 하나님은 죄인을 찾으신다.

9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 본문은 하나님이 죄인을 찾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나무 뒤에 숨어 있을 때에 일어난 이야기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앞에 큰 죄를 범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찾아 오셨다.

* 주님은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로다”라고 하셨다(눅19:10). 바리새인들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은 죄인을 배척하였으나 주님은 오히려 죄인들을 찾아 구원하려고 애쓰셨다. 주님은 세리장 사캐오를 찾으셨으며(눅19장), 수가성의 잃어버린 양 같은 외로운 여인을 찾으셨다(요4장). 성도들은 하나님의 심장을 가지고 죄인들을 사랑으로 품어야 한다.

* 그런데 여기서 ‘네가 어디 있느냐’라는 질문은 자신의 모습을 올바로 깨닫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있다. 하나님은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물으신 것이 아니다. 이는 그들이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주께로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질문이다.

 

나. 죄를 숨기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8절, “그들이 그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 문제는 죄를 짓고도 죄를 숨길 수 있다고, 숨기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너무 많은 데 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나무 사이에 숨었다. 여기서 ‘숨다’(하바, 히트팔렐)는 ‘스스로 자신을 숨겼다’는 뜻이다. 이것은 자신의 죄를 감추려는 인간의 속성을 보여준다.

* 죄를 숨기는 것은 해결방법이 아니다.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고 죄를 감추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나무 사이에 숨었으나 이것도 소용이 없었다. 하나님의 낯을 피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 다윗이 죄를 숨기려고 알리바이를 만들었으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셨다(삼하11장).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하나님을 속일 수 없었다(행5장). 아간의 속임도 드러났다(수7장). 죄를 숨기려는 시도는 헛수고에 불과하다.

 

다. 두려움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라.

10절,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두려워서 나무 사이에 숨었다. 그러나 이것은 해답이 아니었다. 오히려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이 해답이다. 여기서 ‘두려워하다’(야레)는 ‘무서워하다’와 ‘엎드려 경배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죄를 지으면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여기서 죄를 해결하는 방법은 잘 선택해야 한다.

* 두렵다고 죄를 숨기는 것은 옳은 해결방법이 아니다. 차라리 하나님 앞에 엎드려 죄를 자백해야 한다. 아담과 하와는 무화과나무 잎으로 만든 치마를 입고 있었지만 ‘벗었으므로’ 두려워 숨었다고 고백하였다. 죄를 감추지 말고 있는 그대로 자백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시작이다.

* 베드로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신비한 체험을 하였다. 베드로는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하였다(눅5:8). 우리에게도 이런 체험이 필요하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그를 존경함으로 죄를 멀리해야 한다.

 

라. 하나님의 손에 구원이 있다.

21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무화과나무의 잎으로 만들어 입은 치마를 벗기시고 대신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다. 무화과나무의 잎으로 만든 치마로는 죄를 감출 수 없다. 나무 사이에 숨는 것으로도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하나님 앞에 엎드릴 때에 지어주시는 가죽옷이 해답이다.

* 여기서 ‘가죽’(오르)은 ‘우르’(벗다)에서 유래하였다. 즉 하나님은 우리의 벗은 몸을 가려주시기 위하여 양의 가죽을 벗기셨다.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해결하기 위하여 자신의 옷을 벗으셨다. 우리가 주님으로 새 옷을 입고 주님과 함께 죄에 대하여 죽는 것이 사는 길이다.

* 물론 죄는 사함을 받아도 죄과는 남는다. 하와에게는 해산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셨고(16절), 아담에게는 평생 수고하여야 땅의 소산을 먹을 수 있는 고통을 주셨다(17절). 다윗이 죄를 자백함으로 죄사함을 받았으나 죄과가 남았던 것과 마찬가지다(삼하12:7-15). 그래도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앞에 엎드림으로 구원을 받고 생명을 보존하였다. 하나님의 손에 구원이 있다.

황광민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9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0 / 최대 22400바이트 (한글 11200자)
- 금지어 사용시 댓글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 [댓글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도배성, 광고성, 허위성 댓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