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간도 안녕하셨습니까? 지난 주말에 저는 큰아이와 양양 오일장에 다녀왔습니다. 마을 어르신들이 양양 오일장 구경을 좋아하셔서 남편은 교인들과 다녀온 적이 있지만 저는 처음 가보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 3대 오일장에 든다고 하기도 하고 양양장에 가면 없는 것이 없다는 어르신들의 말씀이 있어 꼭 한 번 가보고 싶었습니다. 양양장은 날짜 끝이 4일과 9일에 열립니다. 지난 토요일이 마침 19일이어서 장이 열렸습니다. 날씨도 많이 춥지 않고 새로 생긴 양양 고속도로를 타면 40분이면 도착할 수 있어 나들이로 다녀오기 좋았습니다.

   양양전통시장 근처에 이르니 차도 많고 사람도 많아 장날임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주차할 곳을 찾아 돌다가 양양감리교회 주차장이 보였습니다. 주차장은 주일을 제외하고는 개방되어 주차가 가능했고 연락처를 남기고 가라는 팻말을 세워 놓았습니다. 주차를 하고 나와 양양감리교회 표지석을 보니 ‘하디 선교사가 세운 교회’이자 ‘민족구국제단’ 교회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호기심이 생겨 큰아이와 교회 내부를 살짝 둘러보았는데 ‘조화벽 기도실’이라는 곳도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외부인이다 보니 자세히 둘러보기는 멋쩍어서 중앙 홀에서 슬쩍 내부를 보고 본당은 보지 못하고 나왔습니다.

   양양교회에서 양양전통시장으로 내려오는 길에 오른쪽으로는 오래된 성당이 있었고 왼쪽으로는 학교가 하나 있었으며 그곳의 지명은 구교리였습니다. 시장 안으로 들어가니 노점과 점포들이 길게 줄지어 사방으로 뻗어있고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저와 큰아이가 처음 찾은 곳은 옛날 꽈베기 튀김 집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천원에 3개를 주는 찹쌀도너츠를 사서 먹으며 시장 구경을 시작했습니다. 도치, 오징어를 비롯한 싱싱한 생선들, 야채와 과일, 양양에서 유명한 버섯들, 여느 장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먹거리와 공산품 구경으로 저와 큰아이는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구운 문어, 쥐포, 과메기 등을 시식하고 추운 장터 한 가운데에서 뜨거운 김을 모락모락 내고 있는 오뎅을 하나씩 사서 먹었습니다. 오뎅을 파는 난전에는 계산을 하려고 지키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원하는 만큼 먹고 스스로 먹은 꼬치를 들고 가서 옆에서 포장 오뎅을 팔고 있는 주인에게 계산을 요청하면 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만원을 기준으로 저와 큰아이가 산 품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배 6개, 족발 한 팩, 구워먹는 치즈 두 팩, 양념게장, 딸기 한 바구니, 쥐포, 표고버섯 한 소쿠리. 사다보니 들고 다니기가 팔이 아파 혼이 났습니다.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서 김밥도 한 팩 샀습니다. 그렇게 장 구경을 하며 다니다 보니 난전 끝쯤, 세워진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건물들 사이로 다 허물어져 가는 흙집이 한 채 있고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호기심이 생긴 저와 큰아이는 그 집으로 가서 무엇을 하는 곳인지 살펴보았습니다.

   그곳은 저도 난생 처음 본 대장간이었습니다. 대장간 안에서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가 벌겋게 핀 불 위에 뾰족한 쇳덩이를 올려두고 뒤돌아 앉아 또 다른 쇠를 갈고 계셨습니다. 큰아이도 신기하여 대장간 안을 들여다보고 앞에서 사진도 찍었습니다. 대장간 앞에서 다듬어진 톱을 받아들고 확인을 하고 있던 한 어르신은 무뎌진 낫을 갈러 오신 다른 어르신과 서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정말 낮설고도 정겨운 풍경이었습니다. 계산을 하는 할머니께 물어보니 안에서 일 하고 계신 할아버지는 16살에 대장장이가되어 지금까지 55년간 그곳에서 일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양양대장간’이라는 낡은 나무 팻말을 보며 지난 세월동안 그 대장간의 이야기가 무척이나 궁금해졌습니다. 하지만 바쁜 장날이라 대장간 안으로 들어가 말을 걸 수는 없었습니다. 언젠가 한 번은 다시 그 대장간에 가보고 싶습니다.

   오일장 구경도 하고 대장간도 보고 다양한 먹거리들도 구매한 양양 오일장 구경은 정말 만족스러웠습니다. 시장구경을 마치고 차를 찾아 김밥을 먹으며 집으로 돌아와 자세히 보지 못한 양양감리교회 역사도 찾아보았습니다. 토요일에 제가 다닌 양양감리교회와 구교리 고개, 그리고 양양 오일장은 뜻밖에도 아주 역사적인 장소였습니다. 1919년 3.1 운동이 있은 한 달 여 후인 4월에 개성지역의 만세운동을 주도하던 호수돈기독학교에 재학중이던 조화벽 학생이 휴교를 맞아 고향인 양양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녀는 버선 속에 독립선언서를 복사하여 숨겨 왔고 양양교회 청년과 함께 태극기를 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오일장이 서는 날 양양교회에서 구교리 언덕을 지나 양양 장터까지 수백명이 함께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고 합니다. 이는 지방에서는 가장 조직적으로 일어난 만세운동이었고 이후 양양지역의 구국운동에 큰 도화선이 되었다고 합니다.

   양양감리교회의 역사를 찾아보다 보니 교회 안에 ‘조화벽 기도실’이 있는 이유를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잃어버린 나를 되찾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날에 양양교회와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한 목숨을 건 만세운동이 있었던 그 역사적인 자리에 저와 큰아이가 아무것도 모르고 다녀 온 것이었습니다. 알고서 다시 생각해보니 양양감리교회도, 그 옆의 성당도, 구교리 언덕길도, 많은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물건을 사고 팔던 시장도 더 소중하게 여겨집니다. 우리는 모르고 살아가지만 선조들의 희생과 눈물이 우리가 걸어가는 길 곳곳에 뿌려져 있었습니다. 먼 이국땅에 교회를 세우고 신앙을 전한 하디 선교사와 나라의 독립을 위해 만세운동을 준비한 양양감리교회 청년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오늘 하루, 제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고 저의 삶 어딘가에 뿌려진 기도와 희생을 기억하며 감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