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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가 딴소리 하는 이유성경 해석의 '특수성'과 '보편성'
신성남  |  sungnamsh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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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년 01월 20일 (일) 12:45:51
최종편집 : 2019년 01월 25일 (금) 11:15:15 [조회수 : 5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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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예수님이 할례를 받으셨으니 오늘날 우리도 모두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설교자가 있다면, 그는 아마 제 정신이 아닌 사람으로 취급 받을 것이다. 그런 억지는 성경을 단지 문자적으로만 해석했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이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다(고전11:13)"고 가르친 부분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교회에서 여자들은 머리를 가리지 않고 기도한다.

 

문자적 해석의 위험성

그러면 과연 성경의 가르침이란 시대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일까? 사실 이 논점을 잘못 이해하여 어떤 설교자들은 강단에서 엉뚱한 설교를 늘어놓고 있다. 그들은 특정 사실이 분명히 성경에 있으니 글자 그대로 따르라고 주장한다. 더구나 이는 사이비나 이단들이 잘 써먹는 수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 역사'를 통하여 주셨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하나님은 인간을 단순히 로봇이나 타자기로 사용하신 것이 아니다.

성경은 그 기록자가 처한 당시의 시대적 환경과 사회적 관습의 틀 속에서 작성되었다. 따라서 성경에 노비나 첩이 허용되었으니 지금도 그대로 따라야 하는 건 결코 아니다.

성경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가 매우 중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성경은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문법적, 그리고 전체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단지 글자에 갇혀 모든 내용을 문자적, 문장적, 일반적, 그리고 부분적으로 이해하는 건 매우 위험하다.

이를 정리하자면 우리가 성경을 해석할 때는 '특수성'과 '보편성'을 충분히 구별하고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수한 상황에서 주어진 가르침을 보편적으로 해석하여 모든 상황에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을 극히 조심해야 한다.

 

'보편적 진리'를 분별해야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전14:34)"는 말씀이 있는데 이를 요즘도 글자 그대로 지키고 있는 교회는 거의 없다. 여자 교인들도 얼마든지 교회의 운영이나 사역에 참여하여 제직회나 기타 공적 모임에서 필요한 발언을 하고 있다. 그리고 구약에 "간음한 여자를 돌로 치라"고 했다고 해서 지금도 우리가 돌로 치지는 않는다.  

성경 해석은 과거 기록 당시의 '특수적 상황'에서 '보편적 진리'를 배우고, 그 보편적 가르침을 현재 우리가 처한 각자의 '특수적 현실'에 다시 바르게 적용하는 게 중요하다. 물론 그건 성숙한 성도들 각자의 몫이다.

그런데 거꾸로 이를 오해하여 당시의 '특수적 상황'에서 특수한 지침을 배우고, 다시 그 특수한 가르침을 우리의 또 다른 특수적 현실에 무조건 '보편적으로 적용'한다면 매우 큰 혼란과 오류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실제 한국교회에는 이런 답답한 오류가 너무나 많다.

예를 들자면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십일조를 하라고 말씀했으니 우리도 지금 십일조 해야 한다는 식의 성경 해석은 매우 무식한 거다. 예수님은 당시 구약 신정국가 상황에서 말씀하신 것이다.

그래서 사도들은 나중에 성전과 제사제도가 무너진 후에는 십일조를 버리고 자원적 연보를 가르쳤다. 우리가 지금 구약이 명령하였던 안식일이나 동물 제사나 절기를 더 이상 지키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다.

 

'특수적 가르침'의 보편적 오용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은 시대를 넘어 우리에게 주어진 보편적 진리다. 그러나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당시 고린도교회의 특별한 환경에서 주어진 특수적 가르침이다. 그런데 그런 특수적 지침을 보편적 가르침으로 마구 일반화하여 현대 교회에서 여자 성도에게 "입 다물라"고 강요한다면 그건 성경의 진의를 모르는 행위다.  

요즘 일부 보수 교단에서 "여성 목사는 안 된다"는 주장 따위가 바로 그런 대표적 예다. 여자 성도들 역시 '왕 같은 제사장(벧전2:9)'의 신분인데 왜 목회나 설교를 못 하나. 여성 교역자들 또한 이미 제사장의 신분인데 굳이 목사를 못 할 이유가 전혀 없다.

설교가 딴소리하는 가장 큰 원인은 기록 당시 특정 상황에서 주어진 특수적 가르침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마치 '보편적 진리'인 것처럼 모든 상황에 무차별 적용하는 데에 있다.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는 사람들은 항상 엉뚱한 주장을 무슨 대단한 진리라도 되는 듯 용감무지하게 고수한다. 그리고 보수 교단으로 갈수록 이런 교조적 현상은 더욱 강하다. 사실 한국 개신교가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가장 부패한 교회가 된 이유도 이런 설교 오류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심할 경우 성경을 자기 입맛대로 해석하여 이용하기 때문이다.

바른 설교는 사람을 살리고 잘못된 설교는 사람을 해친다.

"설교가... 그 깊이가 주는 울림이 아니라 말빨이 주는 개그로 전락한지 오래이다. 재치있는 입담과 적절한 신파 예화 한 두개만 잘 섞으면 '감동 설교가'의 반열에 오른다. 거기에 적당한 발라드 찬양 하나 잘 골라서 반복해서 부르게 하면, 교인들은 '은혜 받았다'라며 눈물을 흘린다." - 옥성호

 

신성남 / 집사,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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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법규 (122.101.20.49)
2019-01-22 07:32:40
십일조의 진실을 한번 제대로 밝혀주시면 좋겠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십일조가 없는데 왜 거진 대다수의 교회에서 십일조를 해야한다고
이구동성으로 얘기들을 하나요.
만약 십일조가 없는 헌금이라면 연보로 대체 할수는 없는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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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110.47.210.132)
2019-01-29 13:20:02
그렇다면 ‘特殊性’과 ‘普遍性’은 어느 누가 판단하는가? 어느 누가 내린 그 판단은 반드시 옳을까?
“성경은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문법적, 그리고 전체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단지 글자에 갇혀 모든 내용을 문자적, 문장적, 일반적, 그리고 부분적으로 이해하는 건 매우 위험하다.”라는 신성남의 주장에 대해선 큰 틀에서는 異意가 없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同時代에 살면서도 左派的 시각을 가진 사람도 있고, 右派的 시각을 가진 사람도 있다. 이들은 사물과 역사를 보는 관점이 확연하게 다르다. 아무리 同時代에 살고 있더라도 唯一한 普遍的 진리는 없다고 보는 것이 옳다.

어느 인간이 아무리 보편적이라고 주장해도 그건 그 자신의 관점에서 보는 普遍性일 뿐이고 이걸 타인에게까지 확장시키면 ‘特殊性’에 불과할 뿐으로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간도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만 한다.

문자적 성경해석이 그르다고 주장하는 건 어느 누구라도 할 수 있다. 또한 문자적 성경해석을 대신하여 “이것이 진리다!”라고 주장하는 무수한 어느 누구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문자적 성경해석을 대신하여 이것이 진짜 성경해석이라고 해봐야 수많은 해석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이러한 이유로 문자적 성경해석이 2000년 이상의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사이비, 이단 등의 발호와는 별개로... 여하튼 明明白白한 文字로 摘示되어 있으니까.

예수가 再臨하여 성경의 진리를 다시금 明明白白하게 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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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티끌 (110.70.26.138)
2019-01-21 14:33:40
그 때에 다 안다.!!!

성령 충만한 남자, 여자는 스스로 잠잠 한다.

성경을 자신 있게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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