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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와 찔레, 전갈 가운데 거할찌라도 (에스겔 33장)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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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년 01월 12일 (토) 21:14:17 [조회수 :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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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섭목사의 말씀학교]

가시와 찔레, 전갈 가운데 거할찌라도 (에스겔 33장)

 

0. 에스겔 33장 메시지요약

에스겔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된다. 1장~24장은 남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예언, 25장~32장은 이방열국에 대한 심판예언이다. 33장부터 48장까지는 이스라엘의 구원과 회복을 기록한다.

에스겔 33장은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이스라엘의 파수꾼으로 임명하시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예언자는 자기 생각과 말이 아니라 오직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달해야만 한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예언자의 소리를 듣는 이들은 사람(인자)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어야 함을 강조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 곧 책망과 경고를 듣기 싫어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예언자들을 핍박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파수꾼은 비록 가시와 찔레, 전갈과 같은 핍박과 환란에도 불구하고 듣든지 아니 듣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달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을 감당해야만 했다.

이스라엘의 회복과 구원을 기록하면서 파수꾼의 흔들림 없는 책무를 강조하며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철저한 회개를 강력하게 촉구하시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회개하는 깊이만큼 새롭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회개는 반드시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마음을 돌이키는 회심이 요구된다.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위로와 축복을 전하는 제사장적인 사명만 감당할 뿐 책망과 경고를 전하는 예언자적인 사명을 외면해 왔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양적인 부흥과 성장 이면에 질적인 타락과 사회적인 지탄의 대상으로 전락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교회가 회복되는 길은 ‘가시와 찔레, 전갈 가운데 거할찌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흔들림 없이 증거 하는 에스겔과 같은 예언자적인 사명을 감당하는 제자장들의 출현에 달려 있다.

 

* 동영상

 

1. 파수꾼의 사명

① (1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 에스겔에서 가장 많이 반복되고 강조하는 말씀은 “말씀이 내게 임하여”라는 구절이다. 에스겔은 자신의 주장과 생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의 말씀 곧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본디 기독교는 언약(말씀)의 종교다. 기독교의 복음은 ‘말씀’ 곧 말과 글로 아로새겨 시간과 공간을 넘어 전해져왔다. 종교개혁자들이 ‘오직 말씀(sola scriptura)’을 개혁의 정신으로 삼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맛을 잃은 소금이 되어 하나님의 뜻으로 부터 멀어진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무지할 수밖에 없다. 한국교회가 새롭게 거듭나는 유일한 길은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는 길 외에는 없다.

 

② (2절~6절) “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경고하여 이르라...그 사람이 칼이 그 땅에 임함을 보고 나팔을 불어 백성에게 경고하되”

▶ 예언자의 사명은 파수꾼과 같은 역할이다. 망루 위에서 전쟁의 위협을 미리 보고 나팔을 불어 성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경고하여 대비하게 하는 책무다. 파수꾼의 경고를 듣고 대비하지 않으면 그 책임이 듣지 않은 자들에게 돌아갈 것이고, 파수꾼이 칼의 위험을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않고 경고도 하지 않으면 ‘그 죄를 내가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리라’

 

③ (7절) “인자야 내가 너로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찌어다”

▶ 보내심을 받은 파수꾼의 책무는 ‘내 입의 말을 듣고’에 있다. 자기 말이 아니라 자신의 판단이 아니라 오직 보내신 분의 말씀을 그대로 전달해야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동시에 파수꾼의 소리를 듣는 자들은 ‘나를 대신하여’라는 말씀대로 경고의 메시지를 파수꾼의 말이 아니라 보내신 분의 음성으로 경외하며 들어야 할 책무가 있다.

 

▶ 하나님께서는 왜 이토록 파수꾼의 책무를 강조하시는 이유는 뭘까? 파수꾼(예언자) 가운데 말씀을 왜곡하고 변질시키거나 침묵하고 방기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도망친 요나다. 파수꾼이 책임과 의무를 수행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그 이유는 단순하고 분명하다. 듣든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경고와 책망)을 듣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씀을 전달하는 메신저들을 핍박하고 죽이기까지 했다. 예레미야는 옥에 가뒀고 이사야는 톱으로 켜서 죽였다.

 

▶ 누구보다 이스라엘 백성의 완고함을 잘 알고 있기에 두려워했던 에스겔에게 파수꾼의 사명을 흔들림 없이 감당해야 할 것을 명하신다. (겔 2장 4절~6절) “이 자손은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강퍅한 자니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내노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 선지지가 있은 줄을 알찌니라 인자야 너는 비록 가시와 찔레와 함께 처하며 전갈 가운데 거할찌라도 그들을 두려워 말고 그 말을 두려워 말찌어다” 에스겔은 제사장출신의 예언자다. (겔1:3 ‘부시의 아들 나 에스겔에게’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위로와 축복을 전하는 제사장적인 사명은 감당할 뿐 책망과 경고를 전하는 예언자적인 사명을 외면해 왔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양적인 부흥과 성장이면에 질적인 타락과 지탄의 대상으로 전락한 이유다. 한국교회가 회복되는 길은 ‘가시와 찔레, 전갈 가운데 거할찌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흔들림 없이 증거 하는 에스겔처럼 예언자적인 사명을 감당하는 당당한 제자장들의 출현에 달려 있다.

 

 

2. 용서받지 못할 죄

① (8절~11절) “우리의 허물과 죄가 이미 우리에게 있어 우리로 그 중에서 쇠패하게 하니 어찌 능히 살리요 하거니와...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 오늘날 한국교회가 쇠퇴하는 원인이 무엇인지, 한국교회의 위기에 대해 입 달린 사람은 누구나 한마디씩 비판한다. 자신의 허물은 누구보다 자기 자신이 가장 잘 알기마련이다. 세상에 용서받지 못할 죄는 없다. 오직 회개하지 않는 죄만은 용서받지 못한다. 죽어가는 한국교회가 다시 사는 길은 오직 하나다. 돌이키고 돌이켜서 회개하는 길 뿐이다. 회개하는 깊이만큼만 새롭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에스겔이 이스라엘의 구원과 회복을 전하면서 가장 먼저 철저한 회개를 촉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11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전도와 부흥이 아니라 회개와 변화다.

 

② (12절~16절) “의인이 범죄 하는 날에는 그 의가 구원치 못할 것이요 악인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는 날에는 그 악이 그를 엎드러뜨리지 못할 것인즉 의인이 범죄 하는 날에는 그 의로 인하여 살지 못하리라”

▶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혈통, 모세의 율법준수 등 외적인 기준으로 스스로 의인이라고 자부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준행하는 삶을 살지 않았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죄인이 돌이켜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준행하면 그들이야 말로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씀하셨다. 진정한 의인과 죄인에 대해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에스겔서가 전하는 메시지와 일맥상통한다.

 

③ (17절~20절) “그러나 너희가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의 각기 행한대로 심판하리라”

▶ ‘행한대로’ 라는 말씀은 단순히 선행이나 종교적인 행위가 아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 곧 삶의 변화를 말한다. (눅 3:7~14)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할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무리가 물어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대답하여 가로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게에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라’ 세례요한은 세례를 받으러 나오는 유대인들을 향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을 것을 촉구하며 구체적인 삶의 변화를 요구했다. 세례요한이 촉구했던 회개의 합당한 열매는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위였고, 여러 가지가 아니라 단 한 가지라는 사실이다. 진정한 회개란 입술의 고백을 넘어 삶의 구체적인 변화다.

 

 

3. 권능의 교만

① (21절~22절) “그 사람이 내게 나아올 임시에 내 입이 열리기로 내가 다시는 잠잠하지 아니하였노라”

▶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말씀하신대로 마침내 예루살렘이 멸망하였고 거기서 살아나온 사람이 전하는 예루살렘 함락 소식을 듣게 되었다. 예언이 실제로 성취된 것을 경험하면서 에스겔이 다시는 침묵하지 않기로 결심하는 장면이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듣든지 아니 듣든지 예언해야만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되기 때문이다.

 

② (23절~29절) “아브라함은 오직 한 사람이라도 이 땅을 기업으로 얻었나니 우리가 중다한즉 더욱 이 땅으로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신 것이 되느니라 하는도다...너희가 피 있는 고기를 먹으며 너희 우상들에게 눈을 들며 피를 흘리니 그 땅이 너희의 기업이 될까보냐”

▶ 하나님의 심판으로 황무지가 되어버린 후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악을 회개치 않고 여전히 스스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자신들의 머리수와 같은 외적인 조건을 의지하며 우상숭배를 일삼았다. 28절 말씀은 이스라엘의 멸망의 원인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증거 한다. ‘내가 그 땅으로 황무지와 놀라움이 되게 하고 그 권능의 교만을 그치게 하리니’ 이스라엘의 멸망의 원인은 바로 세속적인 힘과 능력을 의지하는 교만 때문이었다.

 

③ (30절~33절) “자, 가서 여호와께로부터 무슨 말씀이 나오는가 들어보자 하고 백성이 모이는 것 같이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치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은 이욕을 좇음이라”

▶ 심판의 대상 즉 에스겔이 예언하는 대상은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이 아니라 믿는 사람들이었다. 겉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처럼 신앙의 모양은 있었지만 속으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준행하지 않았다.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았던 진짜 이유는 뭘까? 한마디로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믿음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의뢰다. 사람은 자신이 믿는 것을 의지하고 좇아간다. 한마디로 자신이 믿는 바대로 살기 마련이다. 입술로는 주여 주여 하면서도 삶에서 삶의 주관자 되신 주님께 순종하지 않는 진짜이유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다른 것을 더 경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정한 회개는 마음의 중심을 돌이키는 ‘회심’이다. ‘회심’이란, 무엇이 소중한지에 대한 가치관과 무엇이 세상을 다스리는가에 대한 세계관의 전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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