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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첫 목회지에서 했던 실수
지성수  |  sydneytax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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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년 01월 04일 (금) 00:06:13
최종편집 : 2019년 03월 23일 (토) 02:59:10 [조회수 : 1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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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매우 흥미 있는 사람을 만났다. 일반적으로 인정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사회에 무리를 많이 일으켰던 승리제단(영생교)을 수 십년 동안 독신으로 지내면서 열심히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만났다. 이유는 어떤 종교이든 간에 한 종교를 그만큼 열심히 믿었으면 도를 통하지는 못했을지라도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평생 교회를 다녀도 아무 것도 없는 것이 보통이지만 영생교는 생매장도 시키고 하는 특별한 종교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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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마 막상 만나보니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 간판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과 똑 같았고 틈만 있으면 자기 종교를 설파 하기에 열심이었고 심지어는 상대방이 별로 듣고 싶어하지 않는 않는데도 애써 성의를 보였다.

한 마디로 마음이 열려 있어서 진리를 추구하는 자세가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믿고 것을 전파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가득해 보였다 그래서 나도 그의 신념체계를 바꾸고 싶은 생각이 없고 그에 의해서 내 생각을 바뀔 여지도 없으니 더 이상의 만남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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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여 년전 아직 신학공부를 마치지 않은 체 충청도 진천 시골의 감리교회에서 첫 목회를 할 때이었다. 이웃 마을에 불교를 깊이 공부했다는 거사가 있다고 하기에 도전장을 내미는 마음으로 찾아갔다. 내가 항복을 받기 위한 공격적인 질문을 퍼부었지만 거사님은 차를 내놓고 빙그레 웃기만 하고 대답을 회피하셨다. 나는 돌아와서 기고만장 해서 거사님이 내 질문에 답을 제대로 못하더라고 설교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낮이 뜨거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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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작 알량한 기독교 교리를 가지고 평생 불교 공부를 해온 거사를 설득하려 했던 것이다. 지금도 기독교에 그 시절 나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세상에 나쁜 것을 가르치는 종교는 없다. 그러나 종교를 믿어서 잘못되는 사람은 많다. 왜냐하면 종교의 교리는 사람의 마음을 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닫게 만들 경향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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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예로 동학과 증산도를 비교할 수 있겠다. 
동학혁명은 정신적 가치로는 높지만 현실적으로 무모했다. 결과적으로 우리 땅에서 청일전쟁이 벌어지게 만들었고 조선이 일본에 예속되는 시간표를 재촉하는 사건이 되어 버렸다.

동학은 현실에 절망한 사람들이 새로운 세계에 문을 연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종교성에 갇혀 있었던 반면에 동학군이 실패할 것을 예언하고 도시락 싸가지고 다니며 말리러 쫓아다니던 강증산은 종교성에 갇힌 것 같지만 오히려 현실에 열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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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준과 강증산, 두 사람은 똑같이 우리 민족이 가장 어려운 시기를 보낼 때에 민족이 겪는 고통을 안고 씨름을 했으나 민족의 고통을 해결하는 방법은 완전히 달랐다. 
전봉준은 도탄에 빠진 민중의 힘을 모아 물리적으로 후천 개벽을 하려고 힘을 다하다가 죽음을 당했지만 증산은 종교적 측면에서 후천개벽을 하려고 했다.

오히려 증산은 일본 사람들이 조선에 와서 일만 하고 품삯도 받지 못하고 돌아가는 처지가 될 것이니 말이라도 후하게 대접하라고 가르쳤다. 증산의 이런 태도는 다분히 친일적으로 보일만 하다. 그러나 여기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종교는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의 마음을 닫게 하느냐 열리게 하느냐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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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대에 살았지만 지금의 호남 고속도로 서쪽인 고부의 전봉준은 현실 정치에 참여한 반면에 동쪽인 입암의 강증산은 정신세계에 더 관심을 가졌다.
이것은 마치 노자가 현실정치에 관심을 가졌다면 장자는 은자로서 종교성이 강했다고 볼 수 있는 것과 같다. 
또 가깝게는 함석헌은 현실 참여에 강하고 다석 유영모는 종교성이 더 강한 것으로 보인 것과 같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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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전에 함석헌(많이)과 다석(아주 잠깐이지만)을 모두 뵈었지만 다석의 가치를 잘 몰랐고 함석헌만 알았다.
앞으로도 시간이 흐르면서 결국은 함석헌 보다는 다석 사상이 더 널리 알려지리라 생각한다. 그것은 오늘날 동학 보다는 증산 사상이-비록 사이비 형태로 전해지기는 하지만-더 넓게 보급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유는 정치운동 보다는 종교가 더 오래 가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가 열심당을 경계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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