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꽃만큼 친근한 들꽃이 있을까요. 우리가 손꼽는 들꽃들은 집을 떠나 숲자락이나 논과 밭이 보이는 들판, 그리고 손을 빌어 만든 공원에 들어서야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비꽃은 초청받지 않은 집앞 화단이나 담장 한켠, 공원이나 버스정류장 가로수 밑둥치, 심지어는 아스팔트나 보도블럭 사이에서도 꽃을 피웁니다. 오랑캐꽃이라는 별명이 이 거칠고 강인한 생명력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제비꽃은 우리나라 야생화중 종류가 제일 많은 꽃이라고 감히 얘기하겠습니다. 학자에 따라 40여종에서 70종까지 이야기합니다. 제가 아는 제비꽃 박사님은 아직도 찾지 못한 것이 있고 기존의 변이들과 교잡종들이 정리가 되지 않았으니 아직도 진행 중이라 하시네요. 꽃이력이 짧은 저도 그동안 만난 제비꽃 종류를 손꼽아보니 20종은 되더군요. 특이한 점은 한창 꽃을 피우는 봄에는 여느 꽃들과 다름없이 열매를 맺지만 가을 늦게까지 종족을 번식시키는 방법으로 폐쇄화를 택했습니다. 꽃을 피우지 않고 자가수정을 통해 바로 열매를 맺는 것이지요. 솜나물 또한 그렇습니다.

제비꽃...하면 딱 떠오르는 ‘그’ 꽃은 ‘호제비꽃’입니다. ‘왜제비꽃’과 ‘서울제비꽃’도 비슷하여 구별이 쉽지 않습니다. 키가 훤칠하고 색이 짙은 오리지널 제비꽃이 의외로 보기 드물답니다. 흰색 꽃을 피우는 제비꽃의 대표주자는 남산제비꽃이지요. 첫대면에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깊게 갈라진 잎과 하얀 꽃색은 그동안의 제비꽃에 대한 관념이 얼마나 단편적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해주었지요. 시간이 흐르면서 노랑이나 분홍, 자주색 꽃에 잎이 또르르 말려있거나 무늬가 있고 향이 지극하며 털이 나있는 것들을 구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다양함과 하나하나의 매력을 알고 나니 제비꽃이 다시 보입니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여러가지 삶의 모양이 세상을 알록달록 물들이는 다양함으로 다가오기를 바랍니다. 잔잔한 들꽃들의 아름다움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일상의 여유가 내내 우러나오기를 바랍니다. 지금 마음먹은 일들이 한해 끝에서 쓸모 있는 열매로 매달려있기를 바랍니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을 백이십번 하면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