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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의 조건과 마음의 할례(에스겔 31장, 32장)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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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년 12월 29일 (토) 20:34:42
최종편집 : 2018년 12월 29일 (토) 20:35:03 [조회수 : 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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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섭목사의 말씀학교]

에덴의 조건과 마음의 할례(에스겔 31장, 32장)

 

0. 에스겔 31장, 32장 메시지요약

에스겔은 풍요로운 자원과 국토를 기반으로 교만했던 애굽의 심판을 29장과 30장에 이어 31장과 32장까지 네 장에 걸쳐 기록한다. 이스라엘이 그토록 의지하고 의뢰했던 강대국 애굽의 철저한 몰락을 통해서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바벨론왕의 손을 들어주고 애굽왕의 손을 꺾으신 것임을 강조한다. 이를 통해 삶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은 열방의 흥망성쇠 뿐만 아니라 인생의 생명과 죽음까지도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깨달아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돌아오게 하신다. 32장은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이 칼에 살육 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기록한다. 이를 통해 진정한 할례는 외적인 행위가 아니라 마음의 할례이며 이것은 하나님께 마음을 돌이키는 회심을 통한 회개라는 사실을 증거 한다. 동일한 칼이지만 회개한 이는 그 칼로 할례를 받아 새로운 삶을 얻고, 회개치 않는 교만한 이들은 결국 그 칼로 살육 당하게 된다는 심판의 양면성을 증거 한다.

 

* 동영상

 

1. 31장 에덴의 조건(참된 행복의 조건)

① (1절~9절) “볼찌어다 앗수르 사람은 가지가 아름답고 그늘은 살림의 그늘 같으며 키가 높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는 레바논 백향목이었느니라”

▶ 에스겔은 은유를 통해 앗수르와 애굽을 거대하고 아름다운 레바논 백향목과 같은 나무로 묘사한다. 천년만년 영원할 것처럼 자만하지만 한낱 피조물일 뿐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 9절 ‘내가 그 가지로 많게 하여 아름답게 하였더니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는 모든 나무가 다 투기하였느니라’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는 모든 나무는 예루살렘성전이 있던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을 뜻하는데 그들이 앗수르와 애굽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신뢰하던 모습을 ‘투기’로 표현하고 있다. 앗수르와 애굽을 번성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그것을 알지 못하는 자기백성을 책망하고 있다.

 

② (10절~14절) “그의 키가 높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아서 높이 빼어났으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은즉 내가 열국의 능한 자의 손에 붙이리라”

▶ 하나님께서 친히 앗수르와 애굽의 교만을 바벨론의 손에 붙여서 도끼로 나무를 찍어내듯 심판하심을 드러낸다. 14절 “이는 물 가에 있는 모든 나무로 키가 높다고 교만치 못하게 하며 또 물 대임을 받는 능한 자로 스스로 높아 서지 못하게 함이니” 이런 심판을 행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단순히 애굽의 교만을 심판하시는 게 아니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높아지지 못하도록 경계거리로 삼으시기 위함이다. 사람은 성공할 때 교만해지고 실패할 때 겸손해진다. 성공과 성장이 나쁜 것이 아니라 성공과 성장을 주신 분을 잊어버리고 스스로 높아진 것으로 여기는 마음상태가 교만이다.

 

③ (15절~18절) “물 대임을 받은 에덴의 모든 나무 곧 레바논의 뛰어나고 아름다운 나무들로 지하에서 위로를 받게 하였으니라...그들은 옛적에 그의 팔이 된 자요 열국 중에서 그 그늘 아래 거하던 자니라”

▶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앗수르와 애굽을 의지하며 그 그늘 아래 거하던 자들이었다. 애굽의 멸망은 곧 그들에게 ‘아하~앗수르와 애굽은 의지할 대상이 못 되었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창설하신 에덴동산, 기쁨의 동산, 낙원(樂園)을 유지하는 최우선 조건은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생명나무를 지키는 데 있었다. 좋은 환경과 상황에서 오는 게 아니다. 에덴동산의 중앙에 있던 이 나무들은 창조주 되신 하나님과의 관계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척도였다.

왜 그토록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실까? 참된 기쁨과 행복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할 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를 깨달을 때 하나님을 경외하게 된다. 나의 노력과 공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게 된다. 은혜를 알 때 감사가 있고 감사가 있는 삶에서 비로소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경외-은혜-감사-기쁨-행복) 참된 행복의 조건은 환경과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에 달려 있다.(창세기의 첫 번째 주인공 아담은 최고의 환경 에덴에서 실낙원했지만 창세기의 마지막 주인공인 요셉은 최악의 환경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최고의 성공을 거둔 까닭이 여기에 있다.

 

2. 32장 애굽의 몰락

① (1절~6절) “인자야 너는 애굽 왕 바로에 대하여 애가를 불러...실상은 바다 가운데 큰 악어라 강에서 뛰어 일어나 발로 물을 더렵혔도다”

▶ 이집트의 파라오들은 나일강이라는 천혜의 조건을 기반으로 강국을 이룸으로 교만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나일강의 최상위포식자인 악어처럼 사냥꾼이 그물로 건져 올리는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는 나약한 존재임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② (7절~10절) “하늘의 모든 밝은 빛을 내가 네 위에서 어둡게 하여 어두움을 네 땅에 베풀리로다 나 주 여호와의 말이로다”

▶ 이집트의 파라오는 스스로 태양신의 아들로 자처할 만큼 자만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이 섬기던 우상, 태양신 ‘라(La)’를 비롯한 별과 달의 빛을 잃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창조주되심을 드러내신다. 심판의 날에 대한 선지자 요엘의 예언을 사도행전은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행전 2:15~21)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위기와 절망의 순간, 사람은 자신이 믿는 대상(경외)을 의뢰하고 의지한다.

 

③ (11절~16절) “”내가 애굽 땅으로 황무하여 사막이 되게 하여 거기 풍성한 것이 없게 할 것임이여 그 가운데 모든 거민을 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 큰 물가에서 멸하신다는 것은 애굽이 자신들이 그토록 의지하던 대상인 나일강에 대한 심판이며 사막과 황무지를 만드신다는 것은 애굽이 의지하던 풍요로운 대지와 국토를 멸하신다는 것이다. 심판의 날 자신이 의지하던 것들과 함께 몰락하게 된다는 사실을 증거한다. 그날, 마지막 순간, 심판의 날, 삶에서 만나는 위기의 순간, 슬픔의 애가를 부를 것인가, 아니면 영광의 찬가를 부르게 될 것인가? 그 차이는 하나님을 경외(의뢰, 순종)하는가, 아니면 물질, 지식, 권세와 명예와 같은 다른 것을 경외하는가에 달려 있다.

 

 

3. 마음의 할례

① (17절~21절) “할례 받지 않은 자 곧 칼에 살육 당한 자”

▶ 본문에 거듭해서 반복되는 ‘할례 받지 않은 자 곧 칼에 살육 당한 자’라는 말씀은 쉽게 해석하기 어려운 난해구지만 그 속에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유대인들의 정결예식으로 알려진 ‘할례’는 히브리어 바르(표피, 몸, 중심)와 무울(쪼깨지다, 부서지다, 도려내다)는 단어의 합성어다. 할례는 단순히 유대인의 정결예식이나 선민의 징표 따위가 아니다. ㄴ

※ 할례에 담긴 정신과 의미는 신명기와 예레미야, 로마서 잘 드러난다. (신 10:16) ‘그러므로 너희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렘 4:4)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행악을 인하여 나의 분노가 불 같이 발하여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 (렘9:5)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날이 이르면 할례 받은 자와 할례 받지 못한 자를 내가 다 벌하리니 곧 애굽과 유다와 에돔과 암몬 자손과 모압과 광야에 거하여 그 머리털을 모지게 깎은 자들에게 대저 열방은 할례를 받지 못하였고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느니라 하셨느니라’ (롬2:29)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

 

② (22절~30절) “그들은 다 할례를 받지 못하고 살육을 당하여 칼에 엎드려져 지하에 내려간 자들...곧 생존 세상에서 사람을 두렵게 하던 자로다”

▶ 할례는 예리한 칼로 도려내고 살육은 칼로 목숨을 빼앗는다. 동일한 칼이지만 하나는 새로운 삶 곧 생명으로 다른 하나는 죽음과 멸망을 준다. 생명과 죽음을 가르는 그 차이는 어디서 오는가? 자기부인과 자기과시, 겸손과 교만, 하나님 앞에서 회개치 않은 자들의 최후를 뜻한다. 한마디로 마음에 할례 받지 않으면 곧 회개하지 않으면 칼에 살육을 당할 것을 증거한다. 에스겔은 애굽 뿐만 아니라 사라진 열강들의 동일한 최후를 열거하면서 세상에 썩어질 것들을 추구하며 살아가던 삶, 인간의 실존과 결국이 어떠한지를 증거한다.

 

③ (31절~32절) “바로가 그들을 보고 그 모든 무리로 인하여 위로를 받을 것임여 칼에 살육 당한 바로와 그 온 군대가 그러하리로다...할례 받지 못한 자 곧 칼에 살육을 당한 자와 함께 뉘우리로다 나 주 여호와의 말이로다”

▶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인 바벨론의 칼에 멸망당하는 순간 바로 왕이 앞서간 열강들의 무덤에 뉘인 한 줌의 재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최후와 동일한 자신의 운명을 보며,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인생의 영광이 원래 이토록 허무한 것임을 깨닫는 것이다. 인생의 영광이 허무함을 자각하게 될 것을 ‘위로’라는 단어로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모든 권세, 모든 영광, 모든 자랑은 사라진다. 인생의 평준화에서 그 누구도 예외는 없다.

▶ 나쓰메소세키는 이러한 인생의 허무를 발견하는 순간 사람들이 선택하는 삶의 방식을 세 가지로 규정한다. ‘자살(염세), 발광(쾌락), 종교(초월)’다. 다윗은 시편 103편에서 헛된 인생에서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는 삶의 방식을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에 있음을 증거 한다. “인생은 그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면 없어지나니 그 곳이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미치리니 곧 그 언약을 지키고 그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로다” 아멘~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인생의 헛됨을 자각하며 마지막 날을 생각하며 날마다 영원한 가치(사랑, 감사, 기쁨, 평화...)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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