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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는 그 마음을 빌려
김기석  |  vorblick@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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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년 12월 28일 (금) 00:12:12 [조회수 : 4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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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마다 성탄절 준비로 분주하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저 들 밖에 한 밤중에 양 틈에 자던 목자들’, 아련하게 들려오는 찬송가 소리가 우리 마음을 어루만진다. 고즈넉하고 목가적인 풍경이 떠오른다. 분잡한 도시생활에 지친 마음에 고요함이 기적처럼 찾아들고,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는 동안 거칠어졌던 마음이 숙지근해진다. 무심하게 대하던 이들조차 다붓하게 느껴진다. 누군가를 위해 선물이라도 준비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호젓한 기쁨에 들뜰 때가 아니다. 성탄절은 고통의 무풍지대에서 발생한 사건이 아니다. 이 천년 전 베들레헴에는 어둠이 지극했다. 식민지 백성으로 살아온 긴 세월이 만든 무정함 때문이었을까? 베들레헴 사람들은 만삭의 여인을 위해 자기 집 문을 열지 않았다. 비정한 세월이었다. 오랫동안 어둠의 시간 속을 바장이던 이들은 어둠을 닮게 마련이다. ‘누군가 저들을 맞아들이겠지’, ‘지금 우리는 그들을 맞아들일 형편이 안 돼’, ‘괜히 낯선 사람을 맞아들였다가 불쾌한 일에 연루될 수도 있어.’ 낯선 이들을 맞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얼마든지 댈 수 있다. 타자의 고통에 무감각한 이들이 넘치는 세상, 연민과 인정의 사막과 같은 세상에서 메시아는 지금도 머물 곳을 찾지 못한 채 거리를 방황한다. 교회조차 그들의 품이 되려 하지 않는다.

요즘은 꽤 많은 교회가 성탄 즈음에 교회 마당이나 로비 한 구석에 마구간을 재현해 놓는다. 화려한 예배당과 초라한 마구간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곳도 많다. 사람들은 그 앞에 멈춰 서서 성 가족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성탄의 감격을 되새긴다. 하지만 마구간과 구유는 성탄절을 낭만적으로 치장하기 위한 상징물로 소비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어디에서도 환대받지 못하는 이들이 어김없이 마주치게 되는 현실을 보여주는 오브제로 우리 가운데 있다.

비록 비정규직이었지만 성심껏 일하다보면 정규직으로 전환되리라는 희망을 품고 일하던 24살의 젊은 노동자가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죽는 세상, 생존권을 되찾으려는 일념으로 굴뚝 위에 사람이 올라가 있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살천스런 세상, 도시 재개발이라는 미명하에 가난한 이들이 혹한의 추위에 삶의 터전에서 내몰고 결국 삶의 벼랑 끝에 내몰린 이가 한강에 투신함으로 자기 생을 마감해버리는 세상, 위탁모에게 학대받다가 죽음을 맞이한 아기의 눈물이 마르지 않는 세상, 사회적 약자들을 위험으로 내몰고 낯선 이들을 타자화함으로 자기 존재를 확인하려 드는 이들이 넘치는 세상이다. 베들레헴은 바로 우리 가운데 있다.

베를린에는 나치 치하에 순교한 이들을 기억하기 위해 세운 교회가 있다. 놀랍게도 그 교회의 예배실에는 창문이 없다. 나치가 지배하고 있던 시대의 암울함 혹은 출구 없음의 현실을 그렇게 건축학적으로 표현한 것 같다. 빛이라고는 천정에 있는 십자가 형태의 설화석고를 통해 스며드는 희미한 빛뿐이었다. 희미하지만 그 빛은 따뜻하게 사람들을 감싸 안는다. 천천히 예배당을 둘러보는 이들은 창문이 있어야 할 자리마다 걸려 있는 여섯 장의 흑백 그림들에 주목하게 마련이다. 각각의 그림은 마태복음 25장을 형상화한 것으로 굶주린 사람, 목마른 사람, 나그네, 헐벗은 사람, 병든 사람, 옥에 갇힌 사람들의 암담한 상황이 아프게 표현되어 있다. 그 그림들은 하나의 물음표로 사람들 앞에 서 있다. ‘당신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처신하려는가?’ 그 그림들이 창문 자리에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낯선 이들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그들의 설 땅이 되어 주려 할 때야말로 꺼지지 않는 빛이 우리 가운데 유입된다는 뜻이 아닐까? 세상은 여전히 어둡고 만삭의 여인은 몸 풀 곳을 찾지 못한다.

페루 시인 세사르 바예흐는 ‘일용할 양식’이라는 시에서 “문이란 문은 모두 두드려,/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안부를 묻고 싶다. 그리고,/소리없이 울고 있는 가난한 이들을 돌아보고/모두에게 갓 구운 빵 조각을 주고 싶다.”고 노래한다. 배고픈 설움을 처절하게 맛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안부를 묻고, 그들에게 갓 구운 빵 조각을 주고 싶은 마음, 어쩌면 메시아는 그 마음을 빌려 이 세상에 오고 계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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