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면 대형서점과 인터넷 서점에서 앞 다투어 올해의 베스트셀러를 손꼽는다. 2018년에도 예외는 아니다. 해마다 상위권에는 여러 권의 ‘자기계발서’들이 단골메뉴처럼 오른다. 여기에서 폭을 넓히면 심리학적 관심을 다룬 책들도 순위가 나쁘지 않다. 그리스도교의 책 목록이 전체 분야든, 타 종교와 비교해서든 앞선 순위에 드는 것은 여전히 요원한 일처럼 느껴져 아쉽다.

  놀라은 점은 한국인들이 일본을 미워하면서도 일본인에게 배우려고 한다는 사실이다. 참 신통한 일이다. 올해는 너도나도 ‘소확행’(小確幸)을 말한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소설에서 사용한 신조어인데 ‘작지만 확실한 행복’은 따져보지 않아도 올해 유행어 목록 상위권에 들었을 법하다.

  일본인이 한국인의 자기 계발에 영향을 준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아침형 인간’이니, ‘정리의 기술’이니 또 ‘단순한 삶’에 이르기까지 일본인의 일용할 생활철학은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쳐왔다. 지난 베스트셀러 목록만 뒤져봐도 확연히 증명이 된다. 다이어리 기록 등 메모 방식이나, 하다못해 쓰레기를 줄이는 방법까지 왜 우리는 스스로 익히지 않고 일본인에게 기댈까 싶다. 아마 우리사회의 지적기질이 과도하게 의미를 찾고, 심각하게 사회적 관심사에 집중하다보니 작고 소박한 일상의 것에서 빛을 발하는 일본인에게 틈새시장을 놓쳤을 법하다.
 
  일견 당연해 보이는 소소한 이야기를 화제로 삼는 자기계발서들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삶을 조금씩 바꿔보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중에서 잘 팔리는 유형의 책들이 주는 메시지는 공통된 부분이 많다. ‘만사는 마음먹기에 달렸다’처럼 긍정주의의 처방전을 남발하고, ‘잠은 밤에 자라’와 ‘밥은 조금 덜 먹는게 좋다’는 식의 뻔한 약방문으로 수작을 건다. 이런 하나마나한 충고를 책으로 배워야하는가 싶을 정도다.

  그만큼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지쳐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뭐라도 붙잡으려는 것이다. 별별 이야기가 솔깃하다. 자신의 ‘삶에서 주인노릇’을 하지 못해서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를 바꾸어보려고 노력한다. 습관을 바꾸고, 마음먹는 법을 다잡고, 사고방식을 고치고, 성격을 개조하고, 인생 전체에 변화를 주려고 노력한다. 사람들은 종종 자기 종교가 제시하는 믿음이나 신념과 무관하게 엉뚱한 데서 해답을 찾는다.

  영화 ‘철의 여인’을 본 적이 있다. 여성으로서 영국의 첫 수상이 된 마가렛 대처는 평소 여성정치인으로 남성보다 더 강한 의지와 결단력을 지녔다. ‘철의 여인’이란 별명을 얻은 배경이다. 이 영화가 다루려는 것은 남녀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대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철의 여인은 이미지일 뿐 그 역시 중요한 결정에 앞서 번민하고 근심하는 한 인간이었다.

  주인공은 어린 시절에 자기 아버지가 이렇게 충고하곤 했다고 회고한다. 아버지는 어린 딸이 이미 성인이 되었지만, 생각의 어른으로서 늘 말상대가 되곤 한다. 물론 기억 속에서 아버지를 불러내서만 가능한 일이다. 대처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곤 하였다. ‘생각을 조심해라, 생각이 말이 된다. 말을 조심해라, 말이 행동이 된다. 행동을 조심해라, 행동이 습관이 된다. 습관을 조심해라, 습관이 성격이 된다. 성격을 조심해라, 성격이 운명이 된다.’

  그 흔한 ‘자기계발서’들이 연중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것은 최근 동향만이 아니다. 카네기 류의 성공신화와 처세술은 아주 오래 전부터 베스트셀러였다. 흥미로운 사실은 책이 귀한 시절 전시용 서가 속 양장본으로 뿐 아니라, 책이 너무 흔해진 현재에도 차차 그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 현대인의 근심의 무게와 양이 훨씬 늘었기 때문일 것이다.

  대화법이니 웅변술은 이미 고등교육과정에서 배워야 했고, 평판에 귀 기울이게 만드는 인간관계는 어느 새 밥상머리에서 익혔다. 건강관리는 물론 시간관리, 능력개발, 재산관리에 이르기까지 삶의 자세와 생활습관에 대한 비방은 세상에 넘쳐나고, 또 지나칠 정도다. 로버트 풀검의 말대로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우지 않았던가?

  어쩌면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습관이 아닌 지독하게 규정된 삶 그 자체를 바꾸고 싶은 것이다. 언필칭 ‘소확행’은 지극히 소소하기 짝이 없는 내 일상을 확 바꾸고 싶은 마음의 반어법이 아닐까? 그동안 살아온 인생의 순위를 뒤바꾸고, 부정하게 인식된 안팎의 내 평판을 뒤집고 싶은 것이다. 그러기 위해 내 생을 싹 리모델링하려는 것이다.   

  어느새 2019년 새해를 맞이한다. 늘 그랬듯이 연말연초가 되면 사람들은 ‘작심3일’을 반복하면서, 기왕의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오른 자기계발서 제목들을 화두에 올리며 변화를 모색할 것이다. ‘새우잠을 자도 고래 꿈을 꾸자’고 말하고, 그러다가도 ‘바보들은 항상 결심만 한다’며 피식 웃을 것이다. 부디 올해도 배우지 못한 ‘유혹의 극복’, ‘손해 보는 인생’, ‘수호천사로 살기’ 등을 언감생심 새해의 목표에 올리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