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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로역정』의 천국에 대한 유감
최재석  |  jschoi41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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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년 12월 21일 (금) 00:32:42
최종편집 : 2019년 01월 04일 (금) 00:09:23 [조회수 : 2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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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번연(John Bunyan)이 쓴 『천로역정』(Pilgrim's Progress, 1678)은 개신교인들이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은 신앙서적이다. 알레고리 형식으로 된 이 책은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의 주인공이 장차 망할 이 세상을 등지고 많은 유혹과 모진 고난을 극복하며 천국을 향하여 나아가는 이야기다. 전도자의 권고에 따라서 망할 세상의 명예나 부는 물론 처자식까지도 버리고 오직 천국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이 작품의 주인공은 신앙인의 모범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그래서 어느 지역에 기독교가 전파되면 성경이 먼저 번역되고 그 다음에 『천로역정』이 번역되었는데, 한국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금도 한국에서는 『천로역정』의 새로운 번역서와 해설서가 나오고 『천로역정』에 대한 특강이 실시되고 있다. 그리고 어느 교회의 기도원에는 『천로역정』의 주인공이 걸어간 길을 따라가는 순례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서 많은 사람이 그 공원을 찾고 있다. 그 책이 발간된 지 340년이 지났지만, 『천로역정』은 여전히 우리 신앙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천로역정』의 주인공이 모든 것을 버리고 ‘천국’에만 올인 하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려고 한다. 그런 모범적인 신앙인의 태도에 대해서 무슨 엉뚱한 소리냐고 항변하고 싶은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먼저 복음서들에는 ‘천국’(the Kingdom of Heaven)과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가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부터 시작하겠다. 마태복음에는 예수가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할 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4:17) 선포했다고 되어 있는데, 마가복음에는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로(1:15)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복음서들에서 ‘천국’보다 ‘하나님 나라’가 일반적인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마태복음에는 주로 ‘천국’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마가, 누가, 요한복음에서는 예외 없이 ‘천국’ 대신 ‘하나님 나라’라고 말한다. 그런데 마태복음에도 ‘천국’ 대신 ‘하나님의 나라’라고 나와 있는 곳이 있다(12:18; 19:24; 21:31). 유달리 마태복음에 천국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는 것은 그 복음서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유대인 개종자들을 위해서 기록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를 피했다고 한다.

복음서들에서 천국과 하나님 나라는 모두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가 미치는 모든 영역을 가리킨다. 지금 교회에서는 그 하나님 나라가 예수의 복음 선포를 통해서 이미 세상에 임했고, 지금 이 지상에서 실현되어 가고 있고, 장차 예수가 재림할 때 완성될 것이라고 본다. 진보적인 신학자들뿐 아니라 보수적 복음주의 교회에서도, 그리고 가톨릭에서도 모두 하나님 나라를 이렇게 받아들이고 있다.

『교회용어사전』에서는 하나님 나라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하나님 나라는 (1) 시간적으로 현재적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하나님 나라는 이미 이 땅에 임하였다. 사탄에게 굴복하여 죄와 고통과 죽음으로 신음하던 지상 나라에, 하나님 나라의 주역이신 예수께서 오셔서 귀신들을 축출하심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임함을 알리셨다(막 12:18). (2) 종말적이다. 하나님 나라는 아직 완성되지 못한 상태로서 장차 완성의 날을 기다리고 있다. 즉 그 나라는 사탄의 권세를 최종적으로 분쇄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재림과 더불어 권세와 영광으로 장차 임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공관복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인격을 통해 미래적인 하나님의 나라가 현재화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그런데 『천로역정』에서는 이 땅에 이루어져 가는 천국은 외면하고 예수의 재림 때에 완성될 천국만을 다루고 있다. 그러면 왜 그 작품에서는 요단강을 건넌 후에 들어갈 하늘나라만을 강조하고 있는가? 그 답은  『천로역정』의 작가 존 번연이 청교도였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청교도(淸敎徒)라는 단어는 Puritan의 번역인데, 이 명칭은 청교도들이 삶을 정화하려고(purify) 철저한 금욕생활을 한 데서 연유한다. 그들은 경건한 영적 삶을 위해서 세상적인 것으로 보이는 모든 것을 피했다. 이러한 청교도들의 신앙은 개혁주의 신앙에 근거를 두고 있다. 개혁주의자들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요일 2:15)를 즐겨 인용했다.

그리고 경건한 개혁주의자들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세상에 속해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비그리스도인과는 상종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토록 세상일뿐 아니라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 외면하면서 영적인 삶을 추구했다. 청교도들은 국교회 측으로부터 모진 박해를 받아가면서도 굴하지 않고 개혁주의 신앙을 철저하게 실천한 사람들이다.

 『천로역정』에는 이러한 청교도주의가 잘 나타나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그가 살던 곳은 장차 망할 것이라 믿고 그 망할 도시를 떠나 천성을 향한 순례의 길에 나선다. 그는 그가 살던 도시에 대해서도 그를 따라 나서지 않는 처자식에 대해서도 전혀 미련이 없다. 그 도시는 육신의 삶을 위한 곳이고 가족은 육적인 삶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가 소망하는 것은 오직 거룩한 성이다. 결국 그는 온갖 세상적인 유혹과 고난을 극복하고 죽음의 강을 건너서 천국에 들어간다.

영적인 삶에 올인 하는 그 주인공의 신앙은 본받을 만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 세상을 외면하고 저 세상에만 몰두하는 것은 성경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는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그래서 독생자까지 보내셨다는 사실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그 독생자가 이 땅 위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려고 노력했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그런데 예수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쳤다. 우리는 소극적으로 세상을 외면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이 악한 세상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그 일을 위해서 예수가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이다.

『천로역정』의 주인공의 이름이 크리스천인 것을 보면, 작가 번연은 그 주인공을 그리스도인의 모범으로 내세운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려는 그리스도(Christ)의 사역을 외면하는 그 크리스천을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볼 수 있을까?

그 크리스천이 범한 오류는 바로 그 시대의 청교도들의 오류였다. 그리고 그 청교도들이 빠졌던 함정은 많은 한국 기독교인이 빠져있는 함정이기도 하다. 청교도들은 영국에서의 박해를 피해서 미국의 동북부로 건너가서 정착했다. 그리고 그들이 미국 개신교의 주류를 이루었다. 그런데 그 청교도들의 후예들이 한국에 선교사로 건너와서 청교도주의를 한국 땅에 심었다.

한때 교회에서 영화나 연극, 심지어 TV조차 보지 말라고 하거나 화투놀이를 금한 것, 엄격하게 금주와 금연을 요구한 것은 육신적 삶을 위한 일체의 오락을 금한 청교도주의의 영향이다. 그리고 교회에서는 주일에 돈을 쓰지 말라거나, 취직시험이 주일에 있으면 그 시험을 보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지금 경건한 삶을 위한 그런 금기가 많이 완화되었지만,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사람이 많다.

아직도 한국교회에서는 죽은 후에 가는 문자적 의미 그대로의 천국을 중시한다. 찬송가에 그것이 잘 드러나 있다. 2007년에 나온 『새찬송가』에는 찬송가 제목 분류에서 ‘하나님 나라’와 ‘천국’이 따로 나와 있다. 하나님 나라에 관해서는 4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거기서 하나님 나라는 교회를 가리킨다. 그리고 16곡이나 되는 천국에 관한 찬송은 모두 우리가 죽은 후에 가는 낙원을 노래한다.

그 외에 ‘미래와 소망’으로 분류되어 있는 16곡에서도 낙원을 노래한다. 그래서 천성을 노래하는 찬송이 하나님 나라에 관한 찬송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심지어 어린이들을 위한 찬송 563장의 마지막 절에서도 “세상 떠나가는 날 천국 가게 하소서라”고 노래한다. 어린 시절부터 죽은 후에 갈 천국을 마음 깊이 새겨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먼저, 하나님 나라와 천국에 관한 곡을 따로 분류해서 그 두 가지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은 복음서들의 내용과 다르다. 다음으로, 세상 떠나 가는 날 가게 될 천국을 중점적으로 강조하는 것도 성경적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는 나라를 이 땅 위에 세워가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늘에 있는 거룩한 성은 세상에 건설되어 가는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라는 점이다.

지금 『천로역정』을 번역하고, 그 책에 대한 해설을 쓰고, 그 책을 가지고 열심히 특강을 하는 사람들은 천성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그 주인공의 경건한 신앙을 치켜세운다. 그들은 『천로역정』의 주인공의 천국관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그들이 사후의 낙원만을 강조하는 것은 성경을 전체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한 부분만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이 성경을 올바로 읽지 않는다는 점을 다시 지적하게 된다.

그 주인공은 장차 망할 세상을 버리고 죽은 후에 갈 천국만을 바라보고 나아가지만, 예수는 이 악한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 다시 말하면, 이 땅 위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세상에 오셨다. 성경은 이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요 3:16; 막 1:14-15; 눅 17:20-21; 계 11:15; 마 13:36-40; 막 4:26-29). 하나님 나라, 즉 천국은 예수의 복음 선포를 통해서 이미 이 땅에 왔고, 지금 이 땅 위에 이루어져 가고 있다. 그리고 장차 예수의 재림 때에 완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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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티끌 (175.223.21.19)
2018-12-25 08:24:16
아멘.

믿음 안에서 자유가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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