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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위로를 기다리라
황광민  |  seokkyo@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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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년 12월 15일 (토) 21:58:55 [조회수 : 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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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장 25-33절

주님의 위로를 기다리라

 

가. 주님의 위로를 기다려야 한다.

25절,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있더라.”

* 본문은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렸던 시므온처럼 성도는 주님의 위로를 기다려야 한다는 말씀이다. 시므온은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렸는데 결국 아기 예수, 메시아를 만나 참 평안을 얻었다. 이처럼 성도들은 주님의 위로를 기다림으로 하늘의 위로를 받고 평안을 누렸으면 좋겠다.

* 여기서 ‘위로’(파라클레시스)는 ‘파라칼레오’(곁으로 부르다)에서 유래하였다. 즉 참다운 위로는 곁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을 만나 그의 곁에 머무르는 것이다.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하여 찾아오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시다. 성도는 주의 곁에 머무름을 사모해야 한다.

* 웨슬리 목사의 기념비에는 그의 마지막 말,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라는 글이 기록되어 있다. 세상의 어떤 것도 참 위로가 되지 못한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야말로 진정으로 행복한 삶이다. 성도는 주님의 위로를 기다려야 한다.

 

나.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25절, “성령이 그 위에 있더라.”

* 시므온의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릴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은 성령의 도우심이었다. “성령이 그 위에 있더라”라고 하였다. 그는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었다(26절). 또한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갔다가 메시야를 만났다(27절).

* 주님의 위로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한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으면 육신에 매이기 때문이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늘의 위로 대신 땅의 위로를 기다리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육에 속하여 명예, 부귀, 쾌락 등을 얻음으로 위로를 삼고자 하는 데 문제가 있다.

* 요엘은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라고 하였다(욜2:28). 성령의 사람들은 이 땅만 바라보지 않고 장래의 일을 말한다. 성령의 사람들은 아무리 어려워도 낙심하지 않고 신령한 세계를 꿈꾼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만이 세상에 매이지 않고 하늘의 위로를 기다린다.

 

다. 주님을 기다림으로 닮아가라.

25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 참된 위로는 하나님의 곁에 머무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머무르려면 그의 인격에 연합하기를 꾀해야 한다. 즉 주님을 기다림으로 그를 닮아가야 한다. 주님을 닮지 않고는 그와 함께 머무를 수 없다. 참된 믿음은 그를 믿는 믿음의 차원을 넘어 그의 믿음을 닮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의롭고’(디카이오스)는 단순히 칭의의 수준이 아니다. 이는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지 아니하고 그의 율법을 지킨다는 뜻이다. 그리고 ‘경건하여’(율라베스)는 하나님을 바르게 모시는 것을 말한다. 주님이 하나님을 온전히 섬겼던 것이 모델이다. 시므온은 주님의 위로를 기다리던 사람으로서 주님을 닮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 기다림은 닮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큰 바위 얼굴을 기다리던 어네스트가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이 되었더라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주님의 위로를 기다리며 그와 함께 머물기를 바라는 성도들이 주님을 닮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이다.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그를 닮아가야 한다.

 

라. 주님의 위로에 참 평안이 있다.

29절,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 이 말씀은 아기 예수, 메시아를 만난 시므온이 감격 속에서 찬양한 고백이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라고 하였다(30-32절). 주님의 위로에 평안이 넘치는 것을 보여준다.

* 여기서 ‘평안’(에이레네)은 ‘샬롬’과 같은 말인데 안녕, 복지, 건강 등을 포함하는 말이다. 이것은 전쟁, 알력, 다툼을 가리키는 ‘폴레모스’와는 반대가 된다. 전쟁과 다툼, 그리고 내재되어 있는 알력은 땅의 것으로 위로를 삼으려는 사람들의 욕심에 의해 만들어진다. 오직 하나님의 곁에 머물며 그를 잘 섬기는 사람들에게 참 평안, 즉 안녕, 복지, 건강의 복이 충만하다.

* 가장 큰 위로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다. 형의 낯을 피하여 외삼촌의 집으로 가던 야곱에게 하나님의 임재는 큰 위로가 되었다. 동서남북으로 길이 막혔지만 하늘문을 여시고 어디를 가든지 함께 하시겠다고 한 약속은 큰 힘이 되었다(창28장 참조). 주님의 위로에 참 평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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