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 > 김명섭 목사의 말씀학교
갈대 지팡이 애굽, 하나님의 막대기 바벨론 (에스겔 29장)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18년 12월 15일 (토) 19:19:26
최종편집 : 2018년 12월 15일 (토) 19:20:19 [조회수 : 611]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김명섭목사의 말씀학교]

갈대 지팡이 애굽, 하나님의 막대기 바벨론 (에스겔 29장)

 

0. 에스겔 29장 메시지요약

에스겔은 두로에 대한 심판에 이어 풍요와 번영의 땅이던 애굽에 대한 심판을 네 장에 걸쳐서 기록하고 있다. 두로가 물질로 인한 교만을 상징한다면 전통적인 강대국이었던 애굽은 사람이 가진 힘과 권세를 의지하는 자만을 상징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위기의 순간마다 하나님보다 애굽을 더 의지하고 신뢰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도구인 바벨론을 통해 애굽을 철저하게 심판하심으로 애굽은 마치 갈대 지팡이처럼 의지할 대상이 못 된다는 사실을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가르쳐주신다. 에스겔은 오늘날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신뢰하고, 물질보다 사람을 더 의지하는 이들과 하나님의 믿노라 하면서도 조금도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이 시대를 향해 우리가 신뢰하고 의지할 대상은 오직 삶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한뿐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선포하고 있다.

 

* 동영상

 

1. 갈대 지팡이 애굽

① (1절~2절) “제 십년 사월 십 이일에....너는 애굽 왕 바로와 온 애굽으로 낯을 향하고 쳐서 예언하라”

▶ ‘제 십년 사월 십 이일’은 여호야긴이 바벨론의 2차 침공 때 포로로 잡혀갔던 날(B.C 597년)로부터 십년 후인 B.C 587년을 가리킨다. 이때 에스겔도 여호야긴과 함께 바벨론에 끌려갔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때 곧 심판의 날을 가리킨다. 애굽에 대한 심판은 이스라엘 주변 일곱 족속(암몬, 모압, 에돔, 블레셋, 두로, 시돈)에 이은 마지막 일곱 번째다. ‘일곱’은 단순히 숫자를 계수하는 게 아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가 모든 교회를 통칭하듯이 모든 나라와 열방들이 하나님이 심판으로부터 예외가 없음을 증거 한다. 누구도 피할 수 없고 예외 없는 죽음과 심판, 피조물의 유한성이라는 진리를 드러내고 있다.

 

② (3절~5절) “너는 자기의 강들 중에 누운 큰 악어라 스스로 이르기를 내 이강은 내 것이라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 하는도다”

▶ 애굽은 세계 4대 문명의 발생지 가운데 하나인 나일강으로 번성했던 고대의 초강대국이었다. 애굽 왕은 ‘자기 자신이 자신을 위하여 강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며 스스로 창조주로 착각할 만큼 자만심이 하늘을 찔렀다. 하나님께서는 나일 강의 악어처럼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며 두려울 것이 없다고 자만하던 애굽 왕을 갈고리로 꿰어 사냥할 것이라고 밝힘으로 제아무리 강성한 나라이지만 창조주인 하나님 앞에 한낱 미물인 악어처럼 피조물일 뿐이라는 사실을 증거 한다.

 

③ (6절~7절) “애굽은 본래 이스라엘 족속에게 갈대 지팡이라...그들이 너를 의지한즉 네가 부러져서 그들의 모든 허리로 흔들리게 하였느니라”

▶ 하나님께서는 주변 강대국의 침략이 있을 때마다 애굽을 자신들을 보호해줄 든든한 지팡이로 여기며 의지하던 이스라엘백성을 책망하신다. 애굽은 마치 속이 빈 갈대로 만든 지팡이처럼 결코 의지할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거 하신다. ‘갈대 지팡이’라는 표현은 앗수르가 북이스라엘 침공할 때, 애굽을 의지하던 이스라엘을 향해 랍사게가 말한 조롱이었다(왕하 18:21, 사36:6) 선지자 이사야는 사람의 힘과 권력을 하나님보다 더 신뢰하고 의지하는 이스라엘백성들을 책망했다. (사2:22)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

※ 성경에서 애굽은 전통적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과 대비하여 인간이 의지하고 신뢰하는 화려한 신뢰의 대상으로 자주 인용된다. (예 : 창세기12장에서 아브라함은 약속이 있지만 기근이 심했던 가나안을 떠나 풍요로운 남방(애굽)으로 내려갔다. 창세기 13장에서 롯이 선택했던 소돔과 고모라를 하나님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다고 기록한다. 창세기 16장에서 아브라함은 약속은 있지만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라 대신 건실한 ‘애굽’ 여인 하갈을 통해서 후사를 잇고자 했다)

 

 

2. 광야 사십년

① (8절~11절) “스스로 이르기를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만들었다 하도다 그러므로 내가 너와 네 강들을 쳐서 애굽 땅 믹돌에서부터 수에네 곧 구스 지경까지 황무한 황무지 곧 사막이 되게 하리니”

▶ 스스로 창조주처럼 자만해진 애굽을 쳐서 황무지 사막으로 만드심으로 강을 만드신 분이 창조주 하나님 되심을 증거 한다. 이와 반대로 하나님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광야의 길과 사막의 강 내심으로 하나님이 창조주 되심을 증거 하셨다. (사43:19)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② (12절~15절) “사람이 없이 사십년이 지날찌라...애굽 성읍도 사막이 된 열국의 성읍 같이 사십년 동안 황무하게 하고...사십년 끝에 내가 만민 중에 흩은 애굽 사람을 다시 모아 내되 ”

▶ 반복되는 ‘사십년’이라는 숫자는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과 심판의 기한을 상징적으로 증거 한다. (노아의 홍수가 40주야가 계속된 것과 출애굽 백성들의 광야 40년, 40일간 광야에서 시험 받으신 예수님) ‘사십’이란 숫자는 하나님의 고난과 시련, 연단과 훈련에는 끝이 있으며 그 속에 숨겨진 뜻이 담겨 있음을 전한다.

 

③ (16절) “그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의 의뢰가 되지 못할 것이요...그들이 나를 주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에는 뜻이 있다. 애굽을 심판하시는 목적은 자신들이 믿는 하나님보다 사람(애굽)을 더 의지하고 의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직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증거 하시기 위함이다. (신6: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고난 중에 원망하고 낙심하기보다 고난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깨닫는 지혜가 요구된다. 믿음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의뢰다. 이 믿음은 위기의 순간에 무엇을 의지하는지 무엇을 의뢰하는지를 보면 드러난다.

 

 

3. 하나님의 막대기 바벨론

① (17절~20절) “내가 애굽 땅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붙이리니...그들의 수고는 나를 위하여 함인즉 그 보수로 내가 애굽 땅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 바벨론 느부갓네살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 즉 하나님의 막대기(회초리)일 뿐이다. 바벨론은 하나님께서 친히 보수를 주고 고용한 심부름꾼일 따름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아비가 자식을 징계하듯이 사람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심판하신다.(삼하7:15)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많은 사람들은 삶에서 만나는 위기와 고난 그 자체만 바라보며 원망과 절망에 빠진다. 하지만 그 이면에 삶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의 숨겨진 메시지를 발견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시편23편에서 다윗은 ‘주의 지팡이(Rod)와 막대기(Staff)가 나를 안위(comfort)하신다’고 고백한다. 대부분 목자의 지팡이는 잘 알지만 막대기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약 1m 남짓 되는 목자가 옆구리에 차고 다니던 막대기(Staff)의 용도는 목자가 양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회초리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팡이(Rod)로만 보호하시는 게 아니라 때로는 막대기(회초리, 사랑의 매)로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신다.

 

② (21절) “그 날에 내가 이스라엘 족속에게 한 뿔이 솟아나게 하고 내가 또 너로 그들 중에서 입을 열게 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 ‘그 날에’, 심판의 날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멸망과 절망의 날이지만 어떤 이들에는 영광과 승리의 날이다. ‘뿔’은 왕권(권세와 힘)을 상징한다. 심판 속에 담겨진 하나님의 뜻은 심판을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회복시키시고 마침내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시키는데 있다. 에스겔은 이스라엘과 열방이 바벨론에게 멸망하는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될 것을 고대하며 노래한다. 비록 세상에 악이 성해도 용기를 잃지 않을 수 있는 까닭은 의의 최후승리를 믿기 때문이다. 에스겔은 메시아의 도래 곧 예수 그리스도(왕)의 오심과 통치를 예언한다. 이 천년 전 예수그리스도의 오심을 두려워했던 헤롯왕처럼 오늘날 진짜 왕의 출현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자신의 얄팍한 힘과 알량한 권력을 의지하며 왕노릇 하고 있는 애굽의 바로와 같은 가짜 왕들이다.

김명섭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25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0 / 최대 22400바이트 (한글 11200자)
- 금지어 사용시 댓글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 [댓글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도배성, 광고성, 허위성 댓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