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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소서 (겔27장)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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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년 12월 01일 (토) 15:34:44
최종편집 : 2018년 12월 01일 (토) 15:35:32 [조회수 : 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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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섭목사의 말씀학교]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소서 (에스겔 27장)

 

0. 에스겔 27장 메시지요약

에스겔서가 전하는 핵심은 우리의 인생(삶), 역사(나라와 민족), 지구(우주)는 영원하지 않고 언젠가 끝(종말, 심판)이 있다는 것이다. 열국에 대한 심판을 통해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진리로부터 그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음을 선포한다. 다른 민족들(암몬, 모압, 에돔, 블레셋)과 달리 부귀영화를 누리던 두로(시돈)에 대한 심판을 무려 세 장(26장, 27장, 28장)에 걸쳐서 자세하게 기록한 이유가 있다. 예나 지금이나, 믿는 자나 안 믿는 자나 부귀영화를 최고의 가치로 두고, 물질(돈)을 가장 의지하고 신뢰하기 때문이다. 해상무역으로 화려하고 아름다운 성읍을 건설했던 두로와 시돈의 철저한 심판은 물질의 힘이 제 아무리 강해도 심판 날에 결코 우리 삶을 구원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증거 한다.

하나님께서는 물질적인 번영을 통해 아름다움과 온전함을 추구하며, 스스로 이 모든 것을 이루었노라고 자부하던 두로의 교만을 심판하신다. 두로에 대한 심판은 오늘날 ‘많이 소유하면 행복하다’는 신념과 ‘물질이 많아지면 영혼(마음)은 저절로 평안해진다’는 거짓신화를 좇는 허망한 삶의 최후를 폭로한다. 오늘날 너 나할 것 없이 부귀영화를 추구하는 세상 속에서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라고 소원하던 아굴의 기도(잠언30:8~9)는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할 참된 부요와 삶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지를 분명하게 가르쳐주고 있다.

 

* 동영상

 

두로의 교만

① (1절~2절) “인자야 너는 두로를 위하여 애가를 애가를 지으라”

▶ 부요와 번영을 추구하며 세상의 썩어질 것들만 좇던 두로의 최후는 ‘슬픔의 애가’로 끝났다. 이와 달리 하나님을 경외하며 영원한 말씀을 좇아 살던 이들은 ‘그날에(심판의 날)’ 도리어 칭찬과 승리를 위한 ‘영광의 찬가’를 부르게 될 것이다. 죽음의 순간이 어떤 이에게는 절망과 슬픔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천국에서 눈을 뜨게 되는 영광과 영생의 시작이 되는 까닭이다.

 

② (3절~4절) “나는 온전히 아름답다하였도다...너를 지은 자가 네 아름다움을 온전케 하였도다”

▶ 두로는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부와 번영을 이룩하므로 스스로 온전해질 수 있다고 믿었다. 교만의 본질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완전해지고, 물질적인 번영으로 완벽해질 수 있다고 확신하는 그릇된 신념이다. 하나님은 ‘아름다움으로 온전하고자 했던’ 두로의 교만을 심판하셨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의 출발점은 스스로 ‘불완전한 존재(죄인)’임을 자각하는 것이고 신앙의 최종목적지는 오직 은혜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온전하게 변화되는데 있다. 누가 깨끗한 사람인가? 자신의 더러움을 인정하고 자각해서 날마다 씻는 사람이다. 스스로 의로운 줄로 착각하거나 스스로 의로운 척하는 신앙생활은 예수께서 그토록 경계하셨던 바리새인의 누룩 곧 ‘외식’이다. 자신의 공로를 통해 스스로 의롭게 될 수 있다는 신앙적인 확신은 교만에서 기인한다.

 

③ (5절~11절) “너를 위하여 레바논 백향목을 가져 돛대를 만들었도다 바산 상수리 나무로 네 노늘 만들었었음이여...시돈과 아르왓 거민들이 네 사공이 되었음이여...”

▶ 에스겔은 두로의 부강함을 거대한 한척의 배로 묘사한다. 두로가 교만했던 이유는 화려한 자재와 인력, 기술력과 항해술, 막강한 군사력으로 무장했기 때문이다. 두로는 물질과 지식, 힘과 사람으로 스스로 아름다워지고 완전해질 수 있다고 확신했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바벨탑이 땅 위에 쌓아 올린 교만의 상징이라면 두로는 바다 위에 세운 교만의 상징이다.

 

(11절) “네 사면 성위에 방패를 달아 네 아름다움을 온전케 하였도다”

▶ 화려한 두로의 배 모습과 달리 창세기에 등장하는 초라한 노아의 방주 모습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노아의 방주에는 돛도, 삿대도, 닻도 없었다. 방주는 항해하는 배가 아니라 죽은 사람의 시신을 담는 네모진 관(棺)처럼 단순했다. 오직 하늘로 열린 작은 창문만 있었다. 방주는 오직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인도하시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사람은 무엇으로 온전(완전, 거룩)해질 수 있을까? 다른 길은 없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만 거룩(온전)해질 수 있다.(딤전 4:5)

 

2. 부요의 함정과 아굴의 기도

① (12절~24절) “네 물품을 무역하였도다 너의 제조품이 풍부하므로...”

▶ 두로는 지정학적 위치를 이용한 해상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부(富)를 얻는 것 자체가 죄악은 아니지만 부요케 될 때 경계해야 할 함정이 있다. 사람은 부요케 될 때 교만해져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다. 사람의 마음에 재물에 대한 욕심이 들어가면 반드시 영혼에 대한 관심이 밖으로 떠나가기 마련이다.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은 반비례한다. 사람은 물질적이면서 동시에 영적인 존재인 까닭에 이 둘 모두에 대한 균형이 요구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혼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물질에만 집착한다. 그 이유가 있다. 많이 소유하면 마음은 저절로 행복해질 것이라는 거짓신화 때문이다. 도리어 성경은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기를 권면하며 영혼에 더 우선순위를 둘 때 참된 삶을 누릴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② (25절) “네가 바다 중심에서 풍부하여 영화가 극하였도다”

▶ 풍부와 영화가 극에 달하는 인생, 한마디로 ‘부자 되는 것’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소원이자 바람이다. 하지만 출애굽 광야에서 하늘에서 내린 만나는 하루 먹을 만큼의 양식만 주어졌다. 탐욕과 불신앙으로 만나를 쌓아두면 냄새가 나고 벌레가 생겨서 부패했다. 물질에 집착하고 축적하면 반드시 부패하고 타락한다. (딤전 6:9~10)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바찌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③ (잠언 30장 7절~9절)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 이제 한국교회는 “복에 복을 더하고 지경을 넓히는” 야베스의 기도만을 구하기보다 필요한 양식을 채우시는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날마다 감사하는 지혜자, 아굴의 기도를 간구해야 할 때다. 엄밀하게 보면 야베스의 기도는 자신을 근심에서 구원하시고 모든 물질적인 축복을 허락하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데 있다. 삶에서 누리는 부요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이 모든 복을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필요이상의 부요는 기꺼이 나눔으로 실천해야만 한다.

 

 

3. 통곡의 애가

① (26절~31절) “네 사공이 너를 인도하여 큰 물에 이름이여 동풍이 바다 중심에서 너를 파하도다”

▶ 화려한 배를 운행하다가 마침내 바다 가운데서 침몰하는 사공의 탄식을 통해 물질적인 번영과 성공으로 인도하던 길 잃은 목자들의 모습을 본다. 무엇이 나의 삶을, 가정을, 교회를 이끌어가고 있는가? 인생의 복된 항해를 위해서는 선장되신 주님께 주권을 맡겨드려야 한다. 오늘날 참된 행복의 길이 아니라 성공과 번영의 길로만 인도하는 선장(지도자)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도 못 들어가고 남도 못 들어가게 한다고 비판하시던 서기관과 율법사, 바리새인과 같은 역할을 하는 어리석은 존재들이다.

 

② (32절~35절) “네 재물과 무역품이 많으므로 세상의 열왕을 풍부케 하였었도다”

▶ ‘하였었도다’는 흘러간 과거를 뜻한다. 세상의 부귀와 영화, 물질과 번영은 화려하지만 지나가는 것이고 사라지는 것이고 두고 가는 것이다. 한마디로 세상의 부귀와 영화는 결코 영원하지 않다는 것은 진리다. (시103:15) “인생은 그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면 없어지나니 그곳이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 미치리니 곧 그 언약을 지키고 그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로다”

 

③ (36절) “다 너를 비웃음이여 네가 경계거리가 되고 네가 영원히 다시 있지 못하리라”

▶ 모든 인생은 끝이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인생 여정은 남겨진 이들에게 본보기(경계거리)가 된다. 하나님께서 화려한 해상도시 두로를 철저하게 심판하신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다. 오늘날 수많은 인생, 가정, 나라들이 두로와 시돈처럼 부와 번영을 축척해서 온전한 행복을 이룰 수 있다고 확신하며 무한경쟁 속에 질주하고 있다. 무엇보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라’ 하면서 여전히 세상과 물질을 더 섬기며 살아가는 신앙인들에게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보다 더 심각한 지경에 놓이게 되리라는 준엄한 메시지로 경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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