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간도 안녕하셨습니까? 진부령은 지난 토요일에 함박눈이 내렸습니다. 작은 아이는 오전부터 스키복을 입고 마당에서 눈 놀이를 했고, 감기로 머리가 아프고 열이 나서 따듯한 방에서 하루를 보내라는 명을 받은 큰아이도 오후에는 참지 못하고 마당으로 나갔습니다. 얼마전 새 보금자리를 얻은 행복이까지 울타리에서 벗어나 눈 속을 뛰어 다니기 시작하자 마당은 흡사 강아지 세 마리가 뛰어 다니는 것 같은 모양이었습니다. 두 아이가 누우면 행복이가 함께 배를 보이며 누워서 이리저리 뒹굴고, 아이들이 눈을 뭉쳐서 행복이에게 주면 행복이는 눈덩이를 입에 물고 자기만의 창고에 차곡차곡 모았습니다.

   일이 있어 읍내에 내려가야 했던 저는 얼마 내려가지 않아 차가 미끄러지는 것을 느끼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덕분에 저도 아이들과 행복이의 눈 놀이에 참여할 수 있었고 마치 어린시절처럼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반면 제설의 임무를 맡은 남편은 아침 식사 후부터 눈을 치우느라 힘들었습니다. 더불어 향로봉으로 제설작업을 가야 하는 군인들도 주일 예배에 참석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지인들과 연락해보니 읍내와 속초는 눈이 아닌 비가 왔습니다. 지척이지만 고도에 따라 눈과 비가 엇갈리니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나 봅니다.

   도시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나들이 계획이 필요하지만 시골에서는 그냥 주어지는 것만 해도 행사가 많습니다. 큰아이는 지난 수요일에 담임선생님과 원주로 농구경기 관람을 다녀왔습니다. 부지런하신 선생님께서 학급 행사로 농구경기 관람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큰아이가 원주 농구 경기장에서 팻말을 들고 응원하는 모습을 실시간 방송으로 보면서 남편과 저 그리고 작은아이는 집에서 응원을 했습니다. 제가 고등학생 시절에 농구계의 황제였던 문경은 선수가 감독이 되어 스크린에 등장을 했고 저는 잠시 프로농구가 시작될 무렵을 회상했습니다. 문경은, 허재, 이상민, 우지원 등 많은 농구 스타가 탄생했던 그 시절, 등교만 하면 지난밤의 농구경기에 대해서 혹은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서 설명하던 친구도 기억이 났습니다. 그 시절의 스타들은 이제 중년의 감독이 되었고 앳되던 팬들도 이제는 그 자녀들이 농구장에 가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행사를 준비해 주신 큰아이의 선생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런가 하면 목요일에는 속초 진로교육원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극 공연이 있었습니다. 큰아이가 학교에서 홍보물을 받아와서 함께 가자고 하여 온 가족이 연극 관람을 갔습니다. 가서 보니 속초, 고성, 양양에서 아이들을 가르치시는 선생님들이 2005년부터 모여 교사교육연극연구회를 만들고 해마다 한 편씩 정기연극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모임은 선생님들의 자비와 후원금으로 운영이 되고 있었고 연극 역시 무료공연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공연장 안에는 안면이 있는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흘리분교와 교류를 하는 양양의 한 분교 선생님께서 운영 대표를 맡고 계셔서 큰아이와 작은아이도 흥미도가 높아졌습니다.

   올 해 연극의 제목은 ‘어디예요 천국?’이었습니다. 도시타게 신스케의 ‘이게 정말 천국일까’라는 어린이 동화책을 각색한 내용이었는데 아마추어 연극의 느슨함에 마을 선생님의 놀라운 변신이 더해져 아이들의 웃음보를 자극했습니다. 연극을 해 본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한 시간이 넘는 분량의 연극을 준비하려면 많은 시간과 열정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에게 더 나은 교수법을 연구하고 연극 캠프를 기획하는 등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하는 선생님들의 열정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연극의 내용은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그리워하던 손자가 할아버지께서 남기신 노트 한 권을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 노트 안에는 할아버지가 천국은 어떤 곳일지 상상하며 쓴 글이 있었습니다. 그 글은 아직 죽음을 모르는 손자에게 천국이란 어떤 곳인지를 알려줍니다. 선생님들이 각색한 내용에 따르면 천국은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 조금 부족한 사람을 감싸주는 것, 그리고 가족 안에 사랑과 배려가 있는 것 등이었습니다. 연극이 보여주는 천국은 황금빛이 번쩍번쩍하는 화려하고 멋진 곳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안에서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소박한 배려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천국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하며 세상은 날마다 새로운 자극들을 쏟아냅니다. 하지만 우리 마음속에 천국이 없다면 세상 어디에도 천국은 없습니다. 매일 함께하는 가족들, 마음의 위로가 되는 교우들, 어려울 때 생각나는 친구들, 하나님은 이미 이 모든 관계 속에 천국의 모습을 심어 주셨습니다. 자녀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20년 이상 보지 않던 농구 경기를 보며 즐거워 한 수요일, 학생들을 위해 애쓰고 고민하는 선생님들을 만나게 된 목요일, 손자의 질병으로 고심하는 교우를 위해 기도한 금요일, 그리고 펑펑 내린 눈으로 모든 할 일을 뒤로 미루고 아이들과 놀 수 있었던 토요일, 모두가 천국의 한 모습입니다. 오늘 하루, 세상이 자랑하는 천국을 쫓지 말고 하나님이 이미 심어주신 마음속의 천국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하루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