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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 신령들과 목초스님
임종석  |  seok944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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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년 11월 12일 (월) 00:29:32
최종편집 : 2019년 01월 04일 (금) 00:28:35 [조회수 : 3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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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인가 땡초인가, 목초 그는 

계룡산 동학사에서 갑사로 넘어가는 연천봉 중턱 상원암 근처에는 남매탑이라는 이름의 석탑 두 개가 있다. 그런데 이 두 탑에는 신라 성덕왕 때 상원조사라고 하는 스님에게 까닭이 있는 한 처녀가 부부의 연을 맺자고 청하였으나 같이 수도에 정진하자고 거절하자 두 사람은 의남매를 맺고 불도를 닦으며 일생을 보냈는데, 스님의 제자 하나가 그 뜻을 기리어 두 개의 불탑을 세웠다는 전설이 있다.

탑에서 좁고 가파른 샛길로 조그만 내려가면 그 길가에 심우정사라고 하는 작은 암자가 하나 있고, 거기에 목초스님이라고 하는 승려가 기거하고 있었다. 20년도 더 된 오래 전의 일이긴 하지만, 필자도 산을 좋아하고 목초스님과도 안면이 있는 친한 친구를 따라 계룡산에 갔다가 몇 번인가 심우정사에 들려 같이 담소를 나눈 적이 있다.

목초스님은 기골이 장대하고 용모도 어딘지 범상치 않아 보이는 면이 있었다. 그런데 그에 대한 항간의 소문은 엇갈려 보기 드문 고승이라 하기도 하고 그저 땡초에 불과하다 하기도 했다. 누구에게 물어 봐도 속 시원히 말해 주는 사람이 없어 마치 베일 속에 가려진 느낌이었다.

그런데도 몇 번인가 만나는 사이 필자는 그에게 호감 같은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등산로의 협소한 샛길은 암자의 좁은 마당을 지나고 있었는데, 거기에서 한 발짝만 옆으로 올라서면 암자의 토방이고, 그 토방에는 툇마루가 있어 동절기면 항상 커다란 스텐레스 온수기가 놓여 있었다. 등산객들에게 따뜻한 두충차를 제공하기 위한 것인데, 그 차의 맛은 가히 일품이었다. 향긋한 두충향에 느껴질 듯 말 듯 한 단맛의 어울림은 오랜 세월이 지난 오늘까지 잊히지 않을 정도이다.

지나는 등산객 중 배가 고프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군말 없이 밥을 지어주기도 했다. 스님은 보살이라 불리는 두 부부의 시중을 받고 있었는데, 암자의 취사라든가 잔일은 거의가 다 그들 부부의 몫이었다. 남편 되는 사람은 하산을 하면 잡귀들의 괴롭힘으로 몸이 안 좋아져 아예 출가를 해서 암자의 사람이 되었다 했고, 아내 되는 사람도 사연이 있어 산에 올라왔는데, 스님이 부부로의 연을 맺어 주었다 했다.

암자에는 손바닥만한 텃밭이 있었는데, 상추며 배추 무 같은 채소를 심어 가끔은 쌈밥을 얻어먹는 등산객들이 있었고, 거기에다 된장이 맛있다며 얻어 가는 염치 좋은 사람도 있었다. 필자는 거기에서 무 잎도 쌈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게 그렇게 맛이 있는 줄도 처음으로 알았다.

스님은 무욕의 사람처럼 보였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술을 너무 좋아하는 것뿐이었다. 건강에조차 욕심이 없는 것처럼 술을 절제하려하지 않는 것 같았다. 때문에 건강을 해칠까 봐 이래저래 애를 태우는 것은 보살 부부였다.

스님은 무엇에나 꾸밈이 없었다. 하고 싶으면 남의 험담도 곧 잘했다. 그렇다고 인격이 덜 다듬어져 그런 것 같지는 않고 어딘지 해탈한 사람 같았다. 필자는 그런 그가 좋았다. 승려이면서 옷차림이나 머리를 민 것 말고는 불교라고 하는 종교적 냄새를 풍기지 않아 좋았다.

그런 그는 서예실력도 보통이 아니어서 명필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필자도 그 휘호를 몇 번 보기는 했으나 문외한이다 보니 정말 그런지 어떤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달필인 것만은 틀림없어 보였다.

그런데 어제, 계룡산에 같이 올라 목초스님을 같이 만나곤 했던 그 친구 생각을 하다가 문득 그 스님이 생각났다. 그래서 친구에게 메일을 썼는데, 여기에 그 일부를 소개해 본다. 사실 이 글도 그것이 계기가 되어 쓰기 시작한 것이다.

 

K형에게

K형, K형 생각을 하다가 왠지 문득 심우정사의 목초스님 생각이 났습니다. K형 덕분에 가끔 계룡산에 오를 수 있었고, 목초스님과도 만날 수 있었던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마 K형께서도 알고 계셨을 줄로 압니다만, 저는 크리스천이면서도 승려인 그분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분의 무욕과 자기포장을 하지 않는 인품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욕심으로 인한 다툼이 그치지 않는 불교계를 모르지 않았기에 더욱 그분에게 끌렸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저는 K형의 기독교를 바라보시는 곱지 않은 시선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시선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기도 합니다. 사실 저 또한 자신이 목사이면서도 목사들을 싫어하고 교회들도 싫어합니다. 그들 자체가 아니라 기독교의 정체성을 잃어 가는 목사와 교회들을 싫어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인간을 당신의 형상대로 만드셨습니다. 외형이 아니라 내면, 그러니까 하나님 당신의 마음처럼 아름답게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그런 자신들의 마음을 악으로 물들여 추하게 변질시켜 버렸습니다.

따라서 크리스천들은 인간 본래의 마음으로 돌아가려 노력해야 하는데, 목사들도 교회들도 그러려는 노력을 방기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제가 그들을 싫어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아마 K형의 생각도 궁극적인 면에서는 저와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따지고 보면 저 자신도 제가 욕하는 목사들이나 교회들과 별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노력은 하는데 뒤돌아보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어 그런 자신에 절망하기도 하고 자기혐오에 빠졌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러나 절망은 불신앙이기에 칠전팔기의 오뚝이를 닮아가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목초스님이 진정으로 불교정신에 따라 사시는 분인지 어떤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에 따라 지으신 인간 본래의 모습을 닮은 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하나님을 믿는 기독 신자들보다 그런 면이 더 두드러진 것처럼 생각되기도 합니다.

K형, 숨 막히도록 뿌옇게 오염된 미세먼지의 대기는 본래의 날씨엔 없던 것입니다. 본래의 대기는 파랗고 드높은 하늘의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목사를 포함한 크리스천들도 교회들도 그 본연의 모습은 지금과 같지 않고 사랑 넘치는 아름다운 것입니다. 기독교를 바라보는 K형의 시선이 이 점을 감안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데, 주제 넘는 것일는지요. (후략)

 

천혜의 호수가 있는 것도 모르고 시궁창만 찾는 오리들

필자는 한밤중에 그 친구를 따라 계룡산 정상에서 가까운 암자에 올라가 자고 아침 일찍 내려온 적이 있다. 그 무렵 친구는 누군가를 몹시 싫어하여 그와 한 도시에서 숨 쉬고 사는 것조차도 견디기 힘들어 했다. 그래서 하루의 일과를 마치면 밤늦게 혼자서 그 암자까지 올라가 자고 내려오곤 했다. 필자가 그런 그를 따라갔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 친구는 참 대단한 사람이었다. 보통사람이라면 낮에도 큰맘을 먹어야 어쩌다 한 번 올라갈 수 있는 계룡산을 그렇게 밤중에 올라가 자고 다니다니 기인이라 못할 것도 없을 것 같았다.

손전등에 의지하여 죽을힘을 다해 헐떡거리며 올라가서 그 친구가 암자의 한 방의 문을 열자 안에는 7,8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두세 사람은 누워 자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앉은 체 눈만 멀뚱거리며 입을 다문 채 문밖의 우리를 바라보았다. 들어오라 하는 이가 없었지만, 친구가 먼저 들어갔기에 필자도 따라 들어갔다. 그래도 누구 하나 말을 건네는 사람이 없고 역시 눈만 멀뚱거릴 뿐이었다. 친구가 귓속말로 묵언수행 중이라 했다.

그렇게 얼마쯤 지나자 다들 자리를 잡고 자리에 누웠으나, 비좁아 모두 모로 자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새벽에 잠이 깨어 보니 방에는 친구와 필자 두 사람뿐 아무도 없었다. 기도하러 산으로 나간 거라 역시 잠이 깬 친구가 말해 주었다.

필자는 계룡산의 귀신들까지도 쫓아냈다던 군사정권도 이들만은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어 속으로 피식 웃었다. 박정희 군사정권은 미신타파라는 명목으로 전국의 소위 영산들에 산재해 있는 무속인들을 모두 쫓아냈다. 사람들은 귀신들도 꼼짝 못한 것을 보니 총칼의 군홧발이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사실 적잖은 세월이 흐른 뒤이니 이 새벽에 산으로 기도하러 나간 이들은 군사정권의 무속인 축출 이후에 이 산을 찾은 사람들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 필자의 뇌리를 스치는 하나의 말씀이 있었다. 바울이 아덴의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행17:16),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22)라고 한 말씀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종교성’을 주셨다. 그런데 그 종교성을 잘못 발휘하여 아덴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알지 못하는 신’(23)에게 절을 하기도 하고 잡귀나 자연이나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찾아 섬기기도 한다.

오리는 물을 찾는 성질을 타고 난다. 그런데 그런 오리가 맑은 물의 먹이 풍부한 호수가 있다는 것도 모르고 시궁창을 찾아가 오수로 날개깃을 더럽히며 지렁이나 잡아먹는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필자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새벽을 보내고 이른 아침 친구와 함께 산을 내려왔었다.

그러나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안타까운 것은 저들만이 아니다. 마찬가지라 할 수는 없어도 예수를 믿는 우리도 몹시 안타까운 사람들인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입으로는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실은 믿지 못하고 제멋대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믿는 사람들이 믿지 못하다니 말이 되느냐고 하지 말기 바란다. 믿는다면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야 하는데, 아니지 않는가. 우리가 정말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다면, 제대로는 따르지 못한다 해도 그러려고 기도하며 노력만이라도 하고 있다면 누가 기독교를 가리켜 ☓독교라 욕을 하고, 목사를 가리켜 ☓사라 비아냥거리겠는가.

그건 교회를 세습하고 성추행이나 하는 목사들 때문이지 내 탓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가. 차라리 그런 말이라도 자신 있게 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 글쎄,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다. 양심이 무뎌지긴 했지만 그래도 필자는 그게 발바닥 같진 않아 자신의 탓도 크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요즘 따라 목초스님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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