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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사죄할 때 까지 한국교회가 함께 하겠다.”‘한국교회일천만기도대성회’ , 위안부할머니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에 성금 전달
심자득  |  webmaster@dangdan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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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년 11월 07일 (수) 23:55:44
최종편집 : 2018년 11월 12일 (월) 00:35:01 [조회수 : 1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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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보환 감독이 정의기억연대 윤미향 대표에게 기도대성회 성금을 전달했다. @사진 - 윤미향 페이스북 캡쳐 https://www.facebook.com/Hanagajoah/videos/2152732898091045/

‘한국교회일천만기도대성회’ 대회장 윤보환 감독이 7일 낮 서울 종로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개최되고 있는 제1360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집회’ 현장을 찾아 윤미향 대표(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에게 성금 500만원을 전달했다.

이 성금은 지난 달 28일 광화문에서 열렸던 ‘한국교회 일천만 기도대성회’에서 드려진 헌금으로서 당시 기도대성회 참석자들이 드린 헌금은 정의기억연대 이외에 한국교회순교자기념사업회, 생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복지시설인 광주 나눔의 집에 전달하기로 했었다.

윤보환 감독은 성금을 전달한 자리에서 ”한국교회가 신사참배를 회개하는 동시에 일본정부가 한국교회를 강제 신사참배시킨 일과 위안부 할머니들을 강제로 끌고 간 사건을 동일시하여 기도대성회를 열면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격려하는 마음으로 헌금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방문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윤감독은 “한국교회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사랑하고 일본정부의 사과를 촉구하는 일에 전적으로 동조하고 또 지원한다. 일본이 사죄할 때 까지 함께 하겠다.”고 격려하고 현장을 찾은 ‘ 한국교회일천만기도대성회’ 관계자들과 함께 “일본 정부는 사죄하라, 보상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수요시위 집회현장에는 마이크 혼다 미국 전 상원위원과 한국교회연합, 광양마루초등학교, 춘천중학교 창원사파고등학교, 성신여대, 광천중학교, 제주애월초등학교, 국민대학평화의소녀상건립추진위, 성신여대 학생들이 함께 했다.

한 때 고등학교 교사였다고 자신을 소개한 혼다 위원은 “위안부 피해자의 역사를 일본과 다른 나라에서도 반드시 배워 다시는 같은 일이 되풀이 되서는 안된다는 말을 여기 일본 대사관 앞에서 하고 싶었다”면서 “일본 정부는 반드시 사죄하고 이 일을 가르쳐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청춘을 조금이라도 돌려줘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 수요정기 집회에 참석중인 학생들

 

   
▲ 일본은 사죄하고 위안부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하는 혼다 전 미국상원의원
   
 

 

   
▲ 윤보환 감독과 함께 수요정기 집회현장을 찾은 한국교회일천만기도대성회 관계자들이 “일본 정부는 사죄하라, 보상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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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110.47.177.238)
2018-11-08 02:00:59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小考
일제시대에 그 유명한 광주학생 항일운동이란 게 있었다. 일본인들이 조선인 여학생을 희롱했다고 해서 조선인 학생들이 단체로 들고 일어난 사건이다. 일본인이 여학생을 윤간이라도 했나? 아니면 피투성이 나게 때렸나? 그냥 기차에서, 조선인 여학생 머리채를 흔들며 장난쳤단다. 그것도 그냥 못보고, 단체로 일본인들한테 항의하고 시위를 한 게 광주학생운동이다.

그런데, 2만명도 아닌 20만명의 어린 소녀들이 강제로 일본군위안부로 끌려가는 걸 나머지 조선 남자들이 구경만 하고, 박수만 쳤다? 이런 허황된 주장을 하니, 한국인으로서 창피할 따름이다.

조선 처녀들이 일본군위안부로 강제로 끌려갈 때 일본군에 스스로 자원입대하길 원했던 조선 장정은 1938년 400명 모집에 2900여 명 지원(경쟁률 7.2對1)/ 1939년 600명 모집에 1만2300여 명 지원(20.5對1)/ 1940년 3000명 모집에 8만4400여 명 지원(28.1對1)/ 1941년 3000명 모집에 14만4700여 명 지원(48.2對1)/ 1942년 4500명 모집에 25만4300여 명 지원(56.5對1)/ 1943년 5330명 모집에 30만3400여 명 지원(56.9對1)로 스스로 일본군이 되지 못해 안달하고 있었다. 이거 말이 되는가? 조선 처녀 수십만명이 성폭행 당하기 위해 끌려가는 와중에 조선 장정 수십만명이 이들을 성폭행하기 위해 수십만명이 일본군으로 자원입대하길 원했다는 사실이...

※ [참고 1]
韓國 側 주장 -20만 명, 한반도 여성 강제연행
日本 側 항변 -위안부 총 인원은 2만여명. 그 중 한반도 출신은 4000명 수준, 한반도 여성을 강제 연행했다는 객관적 증거 無

※ [참고 2]
모든 언론들이 <강제징용 재판>이라는 式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이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제대로 하자면 <신일철주금 임금체불 재판>이라고 해야 정확하다. 日本은 1939년에 전시동원령(징병, 징용)을 내렸다. 하지만 동원령 대상에서 韓國人과 대만人은 제외되었다. 日本人만 대상이었다. 그러다가, 전황이 매우 불리하게 전개되자 日本 정부는 1944년 9월부터 비로소 韓國人과 대만人을 전시동원령에 포함했다.  

연합국이 日本 주변의 制海権(제해권)을 장악하여 1945년 3월말에는 釜山과 山口의 下関(시모노세키)을 연결하는 関釜連絡船(관부연락선) 항로가 폐쇄되었다. 결국, 한반도 거주자에 대한 徴用(징용)은 실질적으로 7개월간 실시되다가 종료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7개월을 ‘제외한 기간’에 일본으로 건너간 위안부나 이른바 징용공은 ‘반드시 강제로’ 끌려갔다고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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