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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만에 번복된 감리회 시뮬레이션-33회 총회 소고(小考)-
민돈원  |  value7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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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년 11월 06일 (화) 09:16:13
최종편집 : 2018년 11월 07일 (수) 01:57:31 [조회수 :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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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만에 번복된 감리회 시뮬레이션

 

지난 33회 총회를 보고 난 소회이다.

총회 끝나는 둘째 날의 가장 뜨거운 쟁점사안은 말할 나위도 없이 감독당선자 취임식 건 이었다. 이미 총회 전부터 회의장 입구와 밖에서는 피켓 시위가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그것은 당선자중 성문제로 '세간에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한 사람'의 문제로 총회가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조짐이 예견되었던 바였다.

이에 회의를 주재하는 감독회장 입장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기에 매우 곤혹스러워 하며 회의 도중 이 문제가 대두될 때 마다 나름 기지(機智)를 발휘하여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림으로써 논쟁의 불을 꺼보려 하는 입장이 역력했다. 그러나 워낙 중한 사안인지라 결코 호락호락치만은 않았다. 현장에 있던 분들이든 생방송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라면 예외 없이 이 문제가 어떻게 처리될지 긴장된 마음으로 지켜보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결국 이에 대한 최종적인 결론은 이번 총회석상에서 이, 취임식을 하지 않는다는 이례적인 선언으로 종결되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문제가 된 신임당선 감독자와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공식선상에서 밝혔다. 그래서 가장 우려했던 감리회는 역사의식과 가치관이 살아있다고 마음으로 박수를 보냈다. 그런데 이것은 일회용 기쁨이었고 하루살이 역사의식이었다. 왜냐하면 다음날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담은 사진 한 장과 함께 기사를 보았기 때문이다.

전날 함께 할 수 없기에 이, 취임식을 거부한다 했던 그 분들이 마치 국가원수나 정치인들이 당선되면 첫 발걸음을 국립묘지 현충원을 참배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을 모방하듯이 기독교 정신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 양화진선교사 순교자묘원 방문에 그 문제가 된 당선자와 모두 동행함으로써 말을 번복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보를 하고 말았다.

이는 결국 당시 회의가 시끄러울 것 같으니 머리회전이 빠른 측근들의 사전 시나리오가 만든 시뮬레이션이었던 것 외에는 달리 해석할 길이 없어 보였다!!!외부 언론을 의식한 잠시 한 편의 역할극으로서의 촌극(寸劇)에 지나지 않았다!뭐 이렇게 할 거였다면 31일 총회 때 이, 취임식 강행할 것이지 그 날 사람의 눈을 의식하여 임시변통으로 요란스럽게 공언하셨을까?

이는 감리회 구성원들이 합의한 교리와 장정에 기록한 법정신 준수에 앞서 더 근본적인 복음의 근간을 흔들어 버렸다는데 있다. 즉 세상 성공주의를 좇는 명예를 초개처럼 여기고, 불의와 세상의 음란과 우상이 복음과 배치될 때 내 생명과도 바꾸게 하는 그리스도인의 거룩성과 주체의식이 마지막 보루여야 할 지도자들이 일말이라도 가슴조이며 의연(毅然)하고 꿋꿋하길 염원하는 절대 다수 사람들의 희망을 기만했고 그 기대를 무참히 뭉개 버리고 말았다는 것이 서글프기만 하다. 다시 말해 누구를 따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는 자괴감이다.

숫자로 계산해 보니 약140만 감리회원들로 보고 감독님들이 12명이니 약 0.0009%에 뽑힌 그야말로 어디서도 찾기 힘든 극소수에 속한 분들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아이러니한 것은 지난 80년 전 당시 굴복한 신사참배가 정당했다는 교권을 쥔 선배 지도자들의 결의를 역사의 수치라면서 몇 분의 동일시 회개하는 의미로 무릎 꿇어 기도한 후 무효화 선언하는 것도 생생하게 지켜보았다. 그런데 이와 성격은 다른지 모르지만 하루사이에 의식 없는 대단한 포용(?), 일관되지 못한 지도력 부재로 인한 손바닥 뒤집듯 한 번복이나 다름없는 행보는 앞으로 미칠 영향력에 있어서만큼은 신사참배의 수치와 비교할 때 결코 가볍지 않은 기득권의 중대한 범과이다. 기독교 정체성 붕괴로 가는 시그널과 같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10월31일 부로 『총회특별재판위원장직』임기를 마치면서 보고 느낀 소감 10가지를 밝힌 바 있는 홍성국 목사님은 10가지 중 한 가지만 제외하고 모두 지도자가 갖출 리더십의 덕목이었다. 그중에 특히 두 가지는 교회 지도자, 특히 감독이 되고자 하는 분이라면 깊이 새겨야만 하는 지적이었다. 하나는 지도자가 도덕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부정하면 영적 리더십을 상실한다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교단이 환란과 위기에 직면해 있을 때 공익보다는 사익의 득실을 셈한다면 지도자 자격이 없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번 이중적 행보의 최선봉에서 몸 사리는 감독님들, 대표라고 참석한 총대들께 묻고 싶다.

-. 여러분들이 감리회 목사들에게 '나를 본 받으라' 할 수 있는 정체성의 근거가 무엇인가?

-. 이번 행보가 최근 유행하는 포용의 정치요, 소수 리더십이 보여주는 和而不同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가? 이 후 감리회 구성원들끼리 줏대 없는 同而不和의 불협화음을 조장하게 될 파장까지는 미처 생각해보지 않았는가?

부디 당장 비록 소를 잃었을지언정 지금이라도 외양간을 고치든지 다시 신축하는 감리회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제발 감리회 목사의 최고 목표가 권력에의 의지, 명예욕의 자리 탐으로 목회자들과 동문들 만남의 화두에서 멀어지길 바란다. 물릴 수도 없는 이 생명의 길, 세상이 흉내 낼 수 없는 복음의 건수가 아닌 생수에 목말라하고 고민하도록 해 줄 영혼을 울리는 리더십의 지도자를 달라고 오늘도 무릎 꿇으련다.

감리회의 위기가 아닌 우리의 조국 교회 부활과 희망을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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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110.47.177.238)
2018-11-06 18:14:48
이번 총회는 최소한 半(반)걸음은 前進(전진)되었다!
첫째, 자신들의 도덕성에는 아랑곳없이 남에게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무흠’이라는 잣대를 들이대고서 魔男(마남)사냥에 나섰던 스스로 완장 찬 ‘MeToo추종자들’의 막무가내행태에 굴복하지 아니한 지도부의 고뇌를 느낄 수 있었다. 만일, 일방적으로 性추문자로 낙인찍힌 감독당선자만 배척하고 財産추문자로 낙인찍힌 감독당선자들은 눈감아 준다면 이야말로 小貪大失(소탐대실), 내로남불의 극치가 될 뻔하였다. 한사람에게 돌팔매질하면서 나머지는 면죄부를 얻는 방식이야말로 더 치졸한 것 아니겠는가?

둘째, 감독회장과 감독당선자들이 고도의 순발력을 발휘하여 中道統合(중도통합)을 추구한 결과 무리 없이 총회를 마칠 수 있었다고 본다. 장정과교리의 정당한 절차가 아닌 군중시위나 피켓팅으로 일방적 주장을 관철하려는 철부지들과 정면으로 대결해봐야 남는 게 없으므로 이들과의 정면대결을 피하면서도 교리와장정에 따른 절차를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요령’으로 당일의 감독 취임을 보류한 것으로 보인다. 만일 감독 취임을 감행했다면 ‘MeToo추종자들’의 깽판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불상사를 막기 위한 부득이한 감독 취임보류라고 이해하고 싶다. 교리와장정에 의해 감독에 당선된 자를 정당하지 않은 절차에 의해 물러나게 할 권한은 어느 누구에게도 없기 때문이고, 어느 누가 피켓팅시위를 한다고 하여 이에 겁먹고 일방적으로 낙인찍힌 당선자 한 사람만 쏙 빼놓고 취임한다는 건 도저히 있을 수없는 폭거이기 때문이다.

셋째, 조계종의 경우 ‘종단 일에 나서는 승려’와 ‘道를 닦는 승려’를 구분한다. ‘종단 일에 나서는 승려’의 경우에는 ‘道를 닦는 승려’보다는 相對的(상대적)으로 도덕적 결함이 있어도 그다지 큰 문제가 안 된다. 감리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목사 직분에 만족하여 교회 일에만 열중하는 ‘예수추종 목사’가 있는 반면 이들 중에 일부는 교단운영에 관심을 가지고 감독직이나 감독회장직에 도전하는 ‘예수추종 및 교단추종 목사’가 있다. 온갖 잡다한 일을 다 겪는 지도부, 당선되기 위해서는 ‘유권자의 수준에 아부(유권자가 돈봉투를 받지 않으면 누가 돈 봉투를 돌리겠는가? 돈봉투를 돌리면 당선이 되니 돈 봉투를 돌리는 것 아니겠는가? 유권자 수준에 딱 맞는 감독회장과 감독이 있을 뿐...)’해야 하는 현실 등을 고려하지 않고 구름에 뜬 도덕성만으로 흠을 잡다보면 감독회장이나 감독은 한 사람도 배겨나지 못할 것이다. 인간적으로, 종교적으로 감내할 정도의 수준으로 만족해야지... 교리와장정에 나와있는 결격사유에 해당되지 않는 자라면 누구라도 출마하고 유권자 수준에 맞게 감독이나 감독회장이 나오면 족하다고 본다. 유권자 수준부터 높이면 자동적으로 감독회장이나 감독도 수준이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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