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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가운과 지팡이펜던트의 우상(에스겔 23장)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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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년 11월 04일 (일) 19:59:14
최종편집 : 2018년 11월 04일 (일) 20:00:04 [조회수 :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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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섭목사의 말씀학교]

보라색가운과 지팡이펜던트의 우상(에스겔 23장)

 

0. 에스겔 23장 메시지요약

에스겔서가 전하는 본래적인 메시지는 하나님의 심판 속에 담겨있는 변함없는 사랑이다. 신실한 남편을 저버리고 간음한 오홀라와 오홀리아의 모습을 통해 앗수르와 바벨론에 멸망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전하고 있다. 고난에는 뜻이 있고 심판에는 목적이 있다. 패역한 남유다와 예루살렘을 향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통해 모든 이들에게 반면교사 즉 패역한 자의 최후를 알게 하시는 본보기를 삼으신다. 고난과 심판을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시려는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를 증거하고 있다. 에스겔은 매서운 고난과 무서운 심판을 통해 하나님의 숨겨진 뜻을 깨닫는 지혜를 촉구하고 있다.

 

* 동영상

 

1. 오홀라와 오홀리바의 행음

① (1절~4절) “오홀라는 사마리아요 오홀리바는 예루살렘이니라”

▶ 행음(간음)은 곧 우상숭배다. 우상숭배는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가리킨다. 행음은 단순히 성적인 일탈이 아니라 남편이나 아내가 순결한 언약을 파기하는 배반을 뜻한다. 오홀라와 오홀리바는 신실한 약속을 저버리고 앗수르와 바벨론을 섬긴 북이스라엘(사마리아)와 남유다(예루살렘)이다. 왜, ‘오홀라’와 ‘오홀리바’ 라고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을까? 하나님의 언약을 저버리고 다른 것을 더 사랑하며 행음하는 모든 이들을 통칭한다.

 

② (5절~8절) “내게 속하였을 때 행음하여 그 연애하는 자 앗수르를 사모하였으니 ”

▶ 이스라엘은 거룩한 하나님과의 언약을 맺은 순결한 신부였다. 에스겔은 이스라엘의 행음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고발한다. 6절 “그들은 자색 옷을 입은 방백과 감독이요 준수한 소년, 말 타는 자들이라” 자색 옷은 값비싼 보라색 염료를 사용하는 부와 권세를 상징한다. (눅16:19)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이스라엘은 빼어난 외모와 세속적인 권력을 하나님보다 더 소중하게 여겼다. 이는 오늘날 본래적인 사명을 저버린 채 세속적인 물욕, 명예욕, 권력욕에 빠진 보라색 옷을 입은 감독들에 해당된다.

 

③ (9절~10절) “그러므로 내가 그를 그 정든 자 곧 그 연애하는 앗수르 사람의 손에 붙였더니”

▶ 하나님의 징벌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대상의 지배 곧 노예로 전락하게 하신다. 돈을 사랑하면 돈을 노예가 되고 명예를 사랑하면 명예의 노예가 된다. 결국 사라지는 것, 두고 가는 것들을 사랑하면 자신의 사랑하는 것들로 인해 부끄러움과 치욕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오늘날 거룩한 직분보다 그 감투만을 좇다가 치욕을 당하는 교회지도자들의 모습을 본다. 사도바울은 이런 모습을 가리켜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는 어리석은 자”라고 책망한다.

 

 

2. 거룩한 예루살렘의 타락

① (11절~21절) “그 아우 오홀리바가 이것을 보고도 그 형보다 음욕을 더하며 그 형의 간음함보다 더 그 간음이 더 심하므로 그 형보다 더 부패하였졌느니라”

▶ 남유다 예루살렘은 북이스라엘이 행음함으로 앗수르에게 멸망한 것을 보고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더 심각한 우상숭배에 빠져 바벨론에게 멸망하고 말았다. 남유다의 타락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더욱 통탄하시는 까닭은 남유다는 거룩한 예루살렘성전이 있는 곳 곧 택하신 백성들이었기 때문이다. 반면교사였던 북이스라엘의 전철을 따라간 남유다처럼, 오늘날 한국의 개신교회는 중세 로마카톨릭교회 보다 더 타락한 교회라는 오명을 받을 정도로 세속적인 교회로 전락했다.

 

② (22절~24절) “내가 심문권을 그들에게 맡긴즉 그들이 그 심문권대로 너를 심문하리라”

▶ 남유다의 성읍과 예루살렘성전은 바벨론의 칼과 창에 돌 위에 돌 하나 남김없이 무너지게 된다. 바벨론은 심판의 도구 곧 심판의 막대기일 뿐이다. 남유다의 멸망은 결코 힘이 없어서 바벨론에 의해 망한 게 아니라 하나님을 저버린 우상숭배 곧 행음의 결과라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감리교회가 지난 십년간 법정소송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사실 세상 법정이 사회법에 의해서 교회를 판단을 받는 것이 아니다. 사회법정은 철저하게 교회법인 교리와 장정에 따라 감리교회를 판단하고 있다. 우리의 불의와 죄악으로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는 현실이다.

 

③ (25절~35절) “네가 이같이 당할 것은 네가 음란히 이방을 좇고 그 우상들로 더럽혔음이라”

▶ 거룩한 예루살렘 성전이 수치와 조롱을 당하게 된 원인을 기록한다. 이방의 우상숭배로 스스로 더럽혔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주님의 몸된 교회는 외부의 박해로 몰락한 적이 없다. 핍박 속에서 도리어 더 강성해졌다. 다만 주님의 교회가 비참하게 몰락하는 까닭은 내부의 부패로 타락했다는 사실이다.

▶ (35절) “네가 나를 잊었고 또 나를 네 등 뒤에 버렸은즉” 남유다가 멸망한 진짜 이유를 분명하게 증거 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려서 자신의 구원자인 하나님을 등 뒤에 던져 버렸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는 아내인 이스라엘을 저버린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하나님을 업신여겨 등 뒤로 던져 버렸다. 이스라엘의 멸망은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이 부족한 탓이 아니라 자업자득임을 증거한다.

 

 

3. 행음을 심판하시는 목적

① (36절~42절) “내게 낳아준 자식들을 우상을 위하여 화제로 살랐으며...당일에 내 성소를 더럽히며 내 안식일을 범하였도다”

▶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이 저지른 죄악의 실상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된다. 하나는 하나님과의 관계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웃과의 관계다. 자신의 이기심을 채우기 위해 자식마저도 이용하는 모습은 즉 이웃과의 관계가 무너진 것을 예표한다. ‘성소와 안식일’을 더럽힌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기준이다.

 

② (43절~47절) “그 군대가 그들을 돌로 치며 칼로 죽이고 그 자녀도 죽이며 그 집들을 불사르리라”

▶ 방백과 장로 곧 이스라엘의 종교와 정치지도자들의 죄악으로 인한 심판의 결과가 당대의 자신들에게만 미친 것이 아니라 그 자녀(후손)과 그 집들을 불사르게 되었다. (창3:17~18) 아담이 범죄로 인해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며 황무하게 되었다. (민14:33) “너희 자녀들은 너희의 패역한 죄를 지고 너희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년을 광야에서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타락은 자신만을 망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와 한국교회의 미래를 무너뜨리고 있다.

 

③ (48절~49절) “이와 같이 내가 이 땅에서 음란을 그치게 한즉 모든 여인이 경성하여 너희 음행을 본받지 아니하리라”

▶ 고난에는 뜻이 있고 심판에는 목적이 있다. 패역한 남유다와 예루살렘을 향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통해 다른 모든 이들에게 반면교사 즉 패역한 자의 최후를 알게 하시는 본보기를 삼으시기 위함이다. 49절 “너희가 나를 주 여호와인줄 알리라” 고난과 심판을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시려는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가 있음을 증거하고 있다. 고난과 심판을 통해 하나님의 숨겨진 뜻을 깨닫는 지혜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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