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됨을 알리는 서리가 내리고 지난주일 아침에는 윗마을에 첫눈이 내렸습니다. 교회 앞마당 단풍나무에는 아직 힘겹게 가지에 매달린 노랗고 붉은 단풍잎들이 있습니다. 단풍이 다 떨어지기 전에 행복이(강아지)를 위한 견사 울타리를 치고 겨울을 날 만 한 집을 지어야 합니다. 남편은 나무를 주문하여 부지런히 재단을 하고 아이들은 아빠를 도와 못질을 합니다. 작년 겨울에 동사한 마을 강아지를 생각해보니, 아마도 실내에서 살다가 산골에 버려졌을 행복이도 실외에서 올해 겨울을 무사히 나는 것이 큰 과제입니다.

   요즈음은 퇴근 시간이면 이미 해가 지고 깜깜합니다. 지난 화요일 퇴근길에 어두운 진부령 길을 오르던 중 갑자기 튀어나온 고라니가 제 차에 치였습니다. 운전자석 쪽으로 뛰어든 고라니는 왼쪽 범퍼에 부딪쳤고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고라니는 죽었을 것이라 생각되고 제 차는 범퍼와 안개등이 깨졌습니다. 진부령을 오르는 내내 앞 범퍼는 덜덜덜 떨렸고 요란한 소리를 냈지만 내려서 볼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고라니 피가 묻어 있으면 어쩌나 싶기도 하고 밤이라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다행인 것은 저희 동네는 차가 많지 않아 제 차가 고라니와 부딪칠 때 뒤따라오는 차가 없었고 2차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다음날 아침 깨진 범퍼를 대충 정리하고 출근을 했습니다. 출근길에 고라니의 죽은 시체를 마주하게 될까봐 심장이 두근두근 했는데 다행히 길에 고라니는 없었습니다. 관리인이 치웠거나 상처를 입은 고라니가 숲 속으로 들어가 사망했을 것입니다. 남편은 고라니가 앞 유리로 튀어들면 큰 사고로 이어지는데 그만하길 다행이라고 저를 위로했습니다. 어쨌거나 저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고라니의 죽음은 제게 심리적 부담이 되었습니다. 차를 고치기 위해 공업사에 갔더니 야생동물을 치는 일은 이곳에서 흔한 일이고 다른 사람들도 꽤 자주 같은 이유로 공업사에 차를 맡긴다고 하였습니다. 불빛을 보면 뛰어드는 고라니의 습성 탓에 고라니 로드킬은 피하기 어려운 사고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나마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습니다. 물론 큰 사고를 피한 것은 저일 뿐 고라니는 큰 사고를 당했습니다.

   차 수리를 위해 공업사에 3일을 맡긴 후 금요일 늦은 저녁에 차를 찾았습니다. 이곳은 부품이 항상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인근 지역에서 부품을 배송 받아야 하기에 수리 시간이 다소 깁니다. 그리고 공업사가 평일에는 6시면 문을 닫고 주말에는 아예 문을 열지 않기 때문에 늦은 저녁에 차를 찾아야 하는 경우 차를 공업사 밖 도로에 주차해 둡니다. 금요일 출장으로 인해 늦게 공업사에 도착한 저는 차를 찾아서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어쩐지 시야가 많이 어두웠습니다. 범퍼를 교체하고 안개등을 고치기는 했는데 양쪽 라이트 하향 등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가로등이 없는 진부령 길을 올라야 하는 저는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집에 가기는 해야겠기에 차를 몰고 이동을 시도했습니다. 이리저리 조작해보니 하향 등은 들어오지 않고 상향 등은 작동이 되었습니다. 상향 등을 켜고 이동을 하다가 맞은편에 차가 오면 껐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보니 등을 끄면 비가 오는 커브길이 시야에서 일시적으로 사라지는 현상이 있었습니다. 아쉬운 대로 앞이 보이도록 작은 불빛이라도 있어야겠고 뒤따라오는 차가 당황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비상등을 켜고 상향 등을 켜고 끄기를 반복하며 천천히 운전을 했습니다. 그렇게 긴장 속에 운전한 끝에 무사히 집에 도착했습니다. 운전을 하면서 종종 이렇게 예기치 못한 당황스러운 순간들을 만나게 되고 어떻게든 해결하는 법도 배우게 됩니다.

   지난 8월에 아이들 둘을 태우고 제가 운전을 해서 대구에 가야해서 차가 많은 고속도로 운전이 걱정스러웠던 저는 이미 떼고 없던 ‘초보운전’을 3년 만에 다시 붙였습니다. 그랬더니 제 차를 본 지인이 “왜 초보운전을 붙였어요?”하고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그래야 다른 운전자들이 ‘저 차는 오른쪽 깜빡이를 넣고 왼쪽으로 들어갈 수 도 있다.’고 생각하고 알아서 비켜간다.”고 했더니 웃었습니다. 운전 초보자라고 생각하면 웬만한 느린 주행과 어설픈 운전은 양해가 될뿐더러 상대방의 방어운전은 저의 안전운전이 됩니다. 붙여놓은 ‘초보운전’ 스티커는 아직까지 제 차 유리에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왠지 스티커가 붙어있으니 저도 더 천천히 달리게 됩니다.

   익숙하다고 생각하고 마음이 느슨해지면 사고로 이어지는 것이 운전입니다. 혹자는 운전 3년차가 위험하다고 하더군요. 이유인즉슨 이제 운전이 좀 익숙해져서 두려움이 없어지는 때여서 랍니다. 어쩌면 믿음의 삶도 마찬가지 같습니다. 좀 익숙해졌다 싶으면 관성에 따라서 예배에 참석하게 되고 말씀을 들어도 ‘다 아는 설교’라 느껴집니다. 제가 믿음을 출퇴근을 위한 운전처럼 날마다 필요한 것이긴 하지만 별 새로울 것 없는 기술쯤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반성해 봅니다. 오늘 하루, 선 줄로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믿음 안에서 겸비하여 새로운 하루를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