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종교개혁주일이다. 501년 전, 마틴 루터는 비텐베르그 성(城)교회 정문에 95개 논제를 내 걸고 토론의 장을 열었다. 95개 주제 중 두 번째와 세 번째 항목은 이렇게 묻고 있다. ‘회개는 성사로서 행하는 일, 즉 사제의 직권으로서 수행하는 고해성사와 속죄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당시 유럽의 그리스도교 세계를 흔든 실마리는 바로 속죄의 문제였다. 중세천년 동안 전통과 사제가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큰 권위와 권력자가 된 현실에 대해 루터는 물음을 던진 것이다. 마틴 루터는 수도자로서 로마서의 사도 바울처럼 끊임없이 죄의 문제와 씨름하였다. 결국 ‘용서는 누가 하는가?’란 속죄의 문제였다.
 
  가톨릭교회에는 고해성사 제도가 있다. 사제가 신자의 죄를 고백 받고, 하나님의 중보자로서 그 죄를 용서해주는 것이다. 루터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루터 역시 마음속에 악한 마음이 들 때마다, 그가 속한 아우구스티누스회 신부에게 가서 고해성사를 하였다. 용서를 받고 돌아와도 그 때뿐, 또 다른 악한 생각이 들었고, 그럴 때마다 다시 신부에게 가서 고백하였다. 그런데 돌아오면 생각나는 여죄(餘罪)가 있어 다시 찾아가 고해하기를 반복하였다.
 
  루터는 최선을 다해 자신의 죄를 고백하였다. 어느 날은 여섯 시간 동안 고해성사를 하였다고 한다. 수도원에 사는 경건한 수도자가 무슨 죄가 그리 많았을까? 루터에게 죄란 크고, 작음이 문제가 아니었다. 만약 하나라도 고백하지 못한 죄가 있어 그 용서받지 못한 죄 때문에 구원받지 못한다면 루터에게는 참을 수없는 고통이었다.
 
  유명한 일화가 있다. 너무 자주 고해성사를 하러 가니까 담당자인 스타우피츠 신부는 “제발 죄 좀 모았다가 한꺼번에 가져오너라”라고 당부하였다. 신부는 정말 그리스도께서 네 죄를 사하여 주시기를 기대한다면, 사소한 일로 찾아오지 말고, 살인이나, 간음 또는 신성모독과 같은 무거운 죄로 찾아오도록 충고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시대는 죄의식이 희박하여 도덕과 양심의 죄는 부끄러움이 없고, 다만 교도소만 안 가면 죄가 없다고 여긴다. 그러나 중세기에 죄와 벌의 문제는 가장 심각한 개인적, 사회적 관심사였다. 루터의 경우, 아무리 죄를 고해하고 용서받았어도 마음에 평안이 없었던 이유는 끝없이 솟아나는 죄의식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양심이 문풍지와 같았던 그에게는 속죄를 선고받아도, 죄의식은 남았다.
 
  죄 씻기에 골몰한 루터는 로마를 방문했을 때 베드로성당을 무릎으로 기어오르면서 고행으로 속죄를 하려고 하였다. 그때, 무릎으로 한참한참 계단을 오를 때마다, 그에게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는데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음성이었다. 아무리 심한 고행을 행한들 그것으로 어떻게 구원에 이르겠느냐,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기다려라 그리고 의지하라는 말씀이었다.
 
  지난 해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한 후 과연 한국교회는 개혁적이 되었는가, 물음을 듣는다. 오히려 사회전반의 적폐청산 분위기와 함께 종교, 특히 개신교회는 점점 적폐의 대상으로 주목 받고 있다. 거룩한 공교회 모두가 공격과 비난의 대상이 된 것은 아닐 것이다. 당장은 담임목사직의 부자세습과 그 배경이 된 교회의 사유화 등 특정이슈에 국한되고 있다. 물론 사회적 비난과 별개로 법적 처분을 받은 사례는 없다.
 
  우리 감리교회도 남의 일은 아니다. 아직도 소송절차가 진행 중이니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다. 당장 32차 총회 감독회장 선거무효소송에 대한 최근 사법적 판단을 최종 무죄심판으로 여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야말로 ‘가처분’에 불과한 임시적 처분일 뿐이다. 부끄러운 것은 공교회의 권위가 그때마다 재판부의 아량에 따라 달라지고, 대형 로펌의 능력에 따라 유죄와 무죄의 경계를 없앨 수 있다고 믿는다는 점이다.
 
  임시변통의 ‘가처분’은 완전한 문제해결을 위해 더 철저하게 회개하고, 낮은 자리에서 속죄하라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가처분’ 선고는 재판부가 내리더라도, 속죄할 준엄한 권리마저 사법적 방망이에 주어진 것은 아니다. 일시적 처방이 완전범죄를 가리지 못한다. 복귀한 감독회장은 입에 발린 ‘도의적 책임’으로 공교회 대표자의 무거운 책임을 피할 수 없음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선거법 위반에 대한 절차적 잘못이든, 선거관행으로 변명하는 부조리든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통회하는 마음 없이 단지 사법적 처분에 일희일비하는 것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심지어 성난 ‘미투 운동’을 무시한 채 고위성직의 감투를 얻으려고 한 경우를 보면 한 개인의 일탈이전에 우리 모두의 속죄가 부족한 때문이 아닐까 싶어 두렵다. 시대정신을 애써 무시한 맹목의식, 범죄를 관행이라고 감싸려는 공범의식은 점점 우리자신을 적폐로 규정하고, 개혁의 대상으로 삼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애초에 루터의 종교개혁은 제도를 바꾸고, 시스템을 고치려는 그런 혁신이 아니었다. 루터는 자신이 평소 고심하던 속죄에 대한 문제의식과 교회가 위임한 요한네스 테첼의 면벌부 판매에 대한 비판의지 속에서 교회와 세상을 향해 진지하게 토론을 제기한 것이다. 다니엘 유테(하바드대, 역사학)는 비텐베르크 토론 관행은 아주 보편적인 일이었다고 한다. “성당의 문은 대중에게 정보를 알려주는 게시판 역할을 했습니다.”(<1517 종교개혁> ‘고요한 개혁’, 티트마르 피이퍼).   
 
  루터가 종교개혁의 논제를 비텐베르크 성(城)교회 정문에 붙이기 전, 이미 경고가 있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수도자 에지디오 폰 비테르보는 1512년 라테란 공의회 개회 연설에서 이렇게 개탄하였다.
 
  “교회는 전쟁과 부도덕 때문에 기반까지 흔들리고 있소!”
 
  남의 문제도, 지난 역사도 아니다. 지금 한국감리교회의 위기는 이미 턱에 찼다. 과연 용서는 누가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