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의 가치는 우리에게도 특별합니다. 아르헨티나로 도망가 신분을 숨기고 살아가는 아이히만을 예루살렘 법정에 세운 후 벌어진 이야기를 담은 것이 바로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입니다.

지난 10월 26일 방송된 케이블TV tvN 예능프로그램 '알아두면 쓸데없는 잡학사전 시즌3'(이하 '알쓸신잡3')에서는 다섯 박사 유희열, 유시민, 김영하, 김진애, 김상욱이 독일 프라이부르크에서 여행을 하는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가슴 아픈 역사를 되새기며 여행하던 중 유시민이 슈톨퍼스타인(걸림돌)에 집중했습니다. 슈톨퍼스타인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군에 의해 희생된 유대인들을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진 동판입니다.

유시민은 "도시를 다녀보니까 전쟁과 현대사의 흔적이 도시 곳곳에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길거리에 주저앉아 동판에 적힌 텍스트를 하나하나 읽었습니다. 그는 "구르 수용소로 보낸 게 6천 명 정도다. 단 몇 시간 안에 그렇게 보낸 거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습니다.

이후 다섯 박사들은 아이히만 전범 재판과 한나 아렌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날 김영하는 "우리가 독일에 갈 때마다 굉장히 혼란을 느끼는 게 사람들이 착하고 질서를 잘 지키고 엄밀하고 지금은 외국인에게 포용적인 사람들인데 도대체 왜 그런 일을 저질렀을까. 그게 모두의 의문이었다. 악이란 어디에서 오는가"라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김영하는 "한나 아렌트가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무능력은 악이다'고 말했습니다. 재판을 지켜보니 아이히만이 ‘자신은 공무원이라서 시킨 걸 한 것뿐이다.’고 말을 한 거다"면서, 한나 아렌트가 주장한 악의 평범성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악의 평범성’이란?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홀로코스트, Holocaust)은 광신도나 반사회적 성격장애자가 아닌 상부의 명령에 순응한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자행되었음을 말하는 개념입니다.

이어 그는 "한나 아렌트가 유대인이 아니면 그런 얘기를 할 수도 없다. 이 문제는 굉장히 민감한 문제가 됐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나 받아들이는 얘기가 됐다"고 덧붙였습니다.

그 말에 이어서 유시민은 "악하지 않은 사람도 악에 가담할 수 있다는 거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그럴 수 있다. 악에 나도 모르게 가담하지 않기 위해서는 생각을 해야 한다. 생각을 하고 판단이 섰을 때 판단대로 행동해야 한다"며,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만 보고 그런 판단을 내린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을 밝혔습니다.

이어 그는 "한나 아렌트가 얘기한 게 있다. 나의 행위가 불러일으킬 영향에 대한 생각과 하면 안 된다는 걸 하지 않을 용기다. 그게 어려운 것 같다. 이 부분이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한나 아렌트는 히틀러 나치즘에 의해 희생자인 자신의 민족의 아픔을 함께 느끼고 함께 일생 싸웠습니다. 도저히 있어서는 안 될 아우슈비치의 참사를 후대에 잊지 않고 다시는 이러한 학살이 일어나지 않길 고민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폭력에 대해 일생 이해하려 했기에 냉혹한 정치가로서 동족 유대인들로부터, 친구들로부터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멈추지 않는 한나 아렌트, 그녀만의 불의에 대항 하는 방식을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유대 정치사상가, ‘악의 평범’이라는 그녀만의 독특한 악의 정체를 파악하려 일생을 들여 진지하게 고민했던 한 사람으로, 약속과 용서를 시대가 낳은 소외감과 고독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는 대안을 제시하며, 권력에 대해, 정치에 대해 환멸 하는 이 시대에, 권력과 폭력은 같지 않으며, 권력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금 긍정적인 시사를 던지고 있습니다.

그녀의 진지한 사고는 사고를 넘어 우리에게 무엇이 진정한 희망인지를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잔잔하면서도 끊임없는 그녀의 싸움이, 이 시대에 희생자들을 위로하고, 같은 폭력의 희생자들을 낳지 않도록 하는 데, 우리의 싸움에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한나 아렌트의 저서에 나오는 '악의 평범성', 그녀의 통찰이 과거가 아닌 현재 우리 상황에도 정확하게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게 다가올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한나 아렌트의 통찰, 악의 평범성...악을 통제하는 힘을 길러내는 교육이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히틀러에 의해 학살당한 유대인들을 잊지 않기 위해 슈톨퍼스타인(걸림돌)을 만들어 노력하는 독일의 모습을 높이 평가합니다. 자신들의 과오를 잊지 않기 위해 지독할 정도로 공부하고 사과하는 민족. 다시는 동일한 잘못을 하지 않기 위한 노력은 위대하다 할 것입니다.

▲ 곽일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