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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 목사는 더 이상 교단을 기망(欺罔)말라!
오재영  |  ojy019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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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년 10월 06일 (토) 13:33:04
최종편집 : 2018년 10월 06일 (토) 13:34:52 [조회수 : 2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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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 목사는 더 이상 교단을 기망(欺罔)말라!

이제 이 땅에서는 가장 중요한 자원은 물적 자원이 아닌 인적 자원이며 그 중에서도 헌신적이며 탁월한 지도자가 그 집단의 흥망성쇠에 가장 핵심적이라는 것은 이미 일반화가 되어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제 우리의 관심은 당연히 그러한 지도자의 능력에 모든 초점이 모아져야 한다. 이러한 지도자가 타고나는 것인지, 만들어 지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집단마다 그에 맞는 합당한 지도자가 있기에 조직의 미래를 생각하는 이들마다 그 조직과 역량에 맞는 지도자를 기대하며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사실 우리 주변에도 개 교회와 지방, 연회마다 가끔 그 역량이 미치지 못하는 평범하거나 형편없는 지도력 때문에 그 조직이 성장하지 못하고, 꼭 신앙적인 조직이 아니더라도 생존자체가 위협받는 집단들이 수없이 많다. 더욱이 기독교집단은 정치나 경제, 혹은 문화적인 목적을 추구하는 다른 어떤 집단들보다도 더욱 우수한 지도력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은 그 조직의 지도자가 하나님의 뜻을 위임받아 그 분의 영광을 위하여 사역하는 것이기에 이러한 신앙의 집단이 변변치 못한 지도자로 인하여 비효율적이고 무기력한 존재로 전락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과 우리 인간 사이에 매우 심각하고 비극적인 문제라 할 수가 있다.

어느 정도의 연륜이 있는 평신도나 목사라면 대부분이 기억하고 있는 웨스트민스터의 신앙고백서 ‘소 요리 문답’ 의 첫 번째 질문,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인가? 답,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 했다. 사도 바울께서도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했다. 신앙인다운 삶의 분명한 목적과 방향을 선언하신 말씀이다.

최근 우리교단의 책임 있는 자리를 맡겠다는 이들의 일부 무책임하고 황당한 모습들은 참으로 충격적이다. 이들의 행태를 보노라면 이들도 세상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는 똑같이 신분상승(身分上昇)을 위한 삶에 모두가 목을 매는 모습들이다. 어쩌다 남보다 좀 더 소유한 성도들의 숫자와 늘어난 재정에 기대여 못하는 일이 없다. 이들에게 묻고 싶은 말이 있다. 지금 당신들이 말하는 전도 대상자들이 우리가 획득해야할 물건처럼 보이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함께 무릎 꿇고 기도할 수 있는 영혼들로 여기고 있는가?

 

오늘의 시점에서 이철 목사에게도 묻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교단본부에 그 먼 거리로부터 매주 출근한다는 이철 목사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면, 수천의 성도들을 돌보아야할 막중한 책임을 방기하고 무슨 오기로 집착을 하는가? 교단을 사랑하기에? 지금도 여전히 당당뉴스에 올라있는 지난2016년 9월10일자 기호 4번으로 전 교단을 향하여 십자가 앞에서 기도함으로 선언한 본인의 동영상을 한번 쯤 시청해 보시라! 이미 기억에서 지워버리셨나? 본인의 오늘의 모습과 얼마나 변해있는지를, 본인은4대 정책과 함께  “안정과 변화를 융합하여 새로운 감리교회를 만들겠습니다!”라는 동영상을 올렸다.

또 본인을 추천하는 문 억 원로장로의 “겸손하고 온유하나 우유부단하지 않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뚝심 있는 지도자’라고 생각 한다”는 그 말을 본인과 관계를 맺고 있는 일부를 제외한 오늘 대부분 교단에 속하여 있는 이들이 공감을 할 수가 있는지, 본인도 감독회장이 되면, “감리교인 구성원 모두의 이야기를 세심하게 인내를 갖고 듣겠습니다. 그리고 서로 소통하는 장을 마련해 주고 공정하고 편견 없는 판결을 하고 결정을 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했다. 정말 공약(公約)아닌 공약(空約)이다. 진정 교단의 중책을 맡아 모두를 섬기겠다는 지도자라면 두 얼굴을 가져서는 안 된다. 공개적으로 표명한 견해와 사적으로 표명하는 견해가 일치해야 한다는 말이다.

지금도 여전히 자세한내용을 모르는 이들 중에는 동조하는 이들도 있으나 지금 본인이 처한 상황은 모두가 스스로자초한 ‘자업자득’이다. 처음부터 본인이 겸손함으로 직 대 로서의 위치를 지키려 했다면 이미 교단은 안정이 되었을 것이다. 직 대 에 임명되자마자 초급변호사로 교체하고, 인사권전횡으로 혼란을 일으키어 신문방송에 교단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온갖 생소한 법률용어를 남발하는 소송에 집착하는 모습이 섬기는 태도인가? 그동안 본인 등장으로 교단이 안정이 되고 부흥이 되었는가? 물론 지도자도 전능자가 아니기에 때로는 실수를 한다. 그러나 경건한 지도자의 바람직한 자세는 자신의 실책들을 공개적으로 다루고, 타인에게 적용하는 것과 동일한 기준을 자기 자신(自己自身)에게도 적용시키고자하는 의지이다. 대부분의 리더가 여기에서 정직하지 못하기에 허물어지지 않는가?

그러므로 겸비함을 갖춘 탁월한 지도자는 먼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다른 사람들의 은사를 바르게 평가하며 특별한 일을 하는데 있어서도 자신보다 더 나은 자격을 갖춘 사람에게 지도권을 양도하는 법을 안다. 성경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지도자들은 그가 두려움은 없이 용기와 담대함뿐이라는 것이 아니라, 그도 두렵고 괴로우며 상심할지라도 그 길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임을 깨달았기에 그 방향을 향하여 나가는 것이다. 이것이 정상적으로 고난의 길을 통과한 이만이 그 과정에서 얻게 되는 유익이다.

지금도 주님께서는 주님을 따르겠다는 우리에게 2천 년 전에나 지금이나 변함없이“나는 네가 올라서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려가기를 부탁한다하시며, 그 위치에서 네가 인도할 사람들의 종이 되라고 부르고 계신다.” 그리고 이 태도로는 섬김을 받을지언정 받지도 못하지만, 섬길 수가 없다. 시인 오든(W.H.Auden)은 “우리가 상처받은 곳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신다.”고 했다. 하마르슐드의 “가장 먼 여행은 내면으로의 여행이다”라는 말도 있다.

 

인생의 마지막 경주임을 기억하기를 바라며...

이제 이철 목사께서도 지난(至難)한 경주(競走)의 결승점을 향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경주자든지 미리미리 준비를 하지 않으면 마지막 남은 그 한 바퀴가 때때로 그  를 죽이는 수가 있다. 이처럼 누구에게나 자신의 평생을 마무리하는 중요한 경주이기에 마지막으로 남은 가장 도전적인 부분이, ‘미성숙에서 성숙함을 가려내는’ 한 바퀴이고, 그동안 남이모르는 상태에서‘경주에 필요한 모든 훈련을 마친’ 선수임을 증명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삶의 노년기가 다가올수록 우리는 마지막으로 달려갈 준비를 미리미리 해야 한다. 그 마지막 완주를 위해 지혜로운 이는 이미 시작 할 때부터 남다른 다짐과 각오로 출발을 한다. 마음에는 언제나 그 마지막 한 바퀴를 염두에 두고 감당하는데 무엇이 필요한지를 생각하는 겸손함으로, 그것이 늙었을 때 주변에 초라한 모습을 보이지 않음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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