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커터 칼에 비록 베었을지라도
민돈원  |  value713@naver.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18년 10월 03일 (수) 17:55:20
최종편집 : 2018년 10월 04일 (목) 02:52:16 [조회수 : 1376]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스토리가-있는-헬스-자전거

 

지난 3주 전 우리교회 부흥회가 있었다. 끝나는 마지막 시간에 강사 목사님은 전도를 언급하면서 전도용 선물을 제시하였다. 그 선물은 가정용 헬스 자전거였다. 성도들에게 이 선물을 전도하는데 작정할 사람이 있는가?를 묻자 몇 몇 분이 자원하여 20대가 마련되었다. 시판되는 동일한 제품이지만 전도용에 한해 대량 구입 시 시중가보다 보다 더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부흥회 끝나고 지체 없이 그 다음 주 주문했더니 박스 포장된 20대분의 전도용 자전거가 용달로 도착되었다. 이에 1대는 강단에 모든 성도들이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전시하고자 조립하기 시작했다.조립하기 위해 박스 속에 있는 꽉 끼인 몸체를 꺼내기 위해 두 손에 힘을 실어 힘껏 당기는 그 순간, 일어나지 않아야 할 사고가 발생했다. 오른 손바닥에 쥐고 있던 커터 칼을 왜 그랬는지 의아할 정도로 날 선 그 부분을 움켜 쥔 채 박스속의 몸체를 힘주어 당긴 것이다. 순식간에 엄지와 검지 사이 부드러운 손바닥이 칼날에 푹 스며들어가는 느낌이 들더니 2cm이상 벤 것이다.

심상치 않아 지혈을 해야 하기에 얼른 손으로 그 부위를 꼭 누른 채 마침 곁에 있던 아내에게 119를 부르도록 했다. 구급대원들에 의해 지혈을 위한 응급조치를 한 후 병원에서 찢어진 손바닥을 몇 군데 꿰매었다.담당의사는 꿰맨 후 손가락이 계속 저리고 감각이 없으면 신경이 상했을 수도 있기에 봉합수술을 다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건 이 병원에서는 할 수 없고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얄궂은 엄포(?)까지 놓았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거기까지는 가지 않아 감사할 따름이다.

오늘로써 2주째이다. 꿰매고 난 후 첫 주일에는 교인들과 악수도 할 수 없었다. 다친 후 둘째 주일인 이번주간에는 살며시 악수는 할 수 있었지만 아직 실을 빼지 않아 완치가 되지 않은 상태이다.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섬뜩하다. 모든 사고도 이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용물을 끄집어 내려하기 보다 차라리 박스를 자르면 되었을 텐데 왜 그랬는지? 왜 커터 칼을 쥔 채 박스에서 빼내려고 했는지? 그것도 하필이면 왜 그 날 부분을 움켜잡았는지?이 같은 사고 이후 어제는 일부러 그 컷터 칼을 다시 잡고 재연(再演)해 보아도 그 날 부분을 잡은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경미한 사고이든 대형 사고이든 항상 사전에 안전 조치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되었다. 좀 빨리 하려고 서두르거나 안전 불감증에 걸리면 어느 곳에서든지 예기치 않은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이번 사고를 통해 대가를 지불하고 배운 교훈이다.

사실 병원에 가서 꿰매고 돌아와 그런 손인데도 불구하고 하다 펼쳐 놓은 그 조립품이 마음에 걸려 한 손으로 기어이 조립을 완성했다. 이런 스토리가 있고 사연 있는 그 선물용 자전거가 지금 강단에 전시되어 있다.

이번 일을 당하면서 오래 전 첫 목회지 개척했을 당시 교회에서 일어난 일이 잠시 떠올랐다.

그 때는 외부 십자가 첨탑이 지금처럼 LED가 아닌 파손이 잦은 유리관 네온사인으로 된 제품이었다. 언젠가 높은 십자가 불이 들어오지 않기에 그 십자가를 고치겠다고 올라갔다 조심스럽게 뒷걸음으로 사다리를 밟고 내려오다 사다리가 그만 잘못되어 5m 정도 되는 높이에서 낙상하여 얼굴에 크게 찰과상을 입은 적이 있다.

지나온 일들 중에는 이외에도 교회 일 하면서 실로 위험하고 힘든 순간들이 적지 않았던 것 같다. 교회 진입로 포장하느라 밤을 새기도 하고 밤새내 쏟아지는 장마비에 방수가 안되어 틈새로 들어온 예배당 바닥을 초저녁 잠자다 말고 일어나 몇시간이고 닦아내야 하는 등 목회자는 교회 일이 보이면 몸을 사리지 않고 처리해야만 하는 일중독자와 같은 삶을 본의 아니게 살아야 할 때가 있다.

정작 이런 일은 지나온 나의 목회의 여정 속에 비록 볼 수 있는 사진 한 장 없고, 한 줄 드러나게 기록해 놓은 문서 한 줄 없을지라도 그저 나만이 홀로 아는 내 마음 속 어딘가에 지워지지 않는 눈물로 쓴 펜으로 새겨져 있다.

물론 목회는 결코 일 중심도 아니고 사람 중심도 아닌 하나님 중심이어야 한다. 라는 사실쯤이야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이 하나님 중심인 일꾼을 만들어 가야하고, 그 사람이 하나님 중심의 사람이 되도록 세워가야 하는 이것이 목회자에게 주신 사명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한편 진정한 목양적 삶을 살다보면 목회자의 삶은 다치고 깨지고 상하고 멍들고 나아가 맺히고 곪아 터지고 병든 곳이 여느 목회자와 사모들의 가슴속에 왜 없겠는가?

따라서 목회자의 삶이 목양적 삶을 한낮 수단이나 도구로 이용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목양적 삶이 목회자 삶에 거침돌이나 누(累)가 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이 둘은 서로 긴장이 없을 수는 없지만 건강한 모습으로 상호 충돌이 아닌 공감과 이해, 협력과 신뢰 그리고 존경과 배려가 교류할 때 부지불식간에 찾아오는 숱한 어렵고 힘든 일도 넉넉히 헤쳐 나갈 수 있으리라!

 

민돈원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11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 11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24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