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옛 어른들이 했다는 이 말, 참 안 어울린다. 우리 집엔.

아마도 보릿고개를 이야기하며 굶던 시절 오곡백과가 무르익고 먹거리가 풍성하여, 그래도 추석 때쯤 되면 먹을 것이 좀 있어서 한 말일 게다. 지금은 한가위 때가 먹을 것뿐 아니라 모든 것이 여유롭고 고향을 방문하여 부모님도 뵐 수 있으니 곱게 간직하고 그대로 쓰는 속담이다.

원래 이 말은 웃픈 이야기다. 하지만 지금은 며칠씩 연휴를 주어 공식적으로 바쁜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어 사용하는 속담이 아닐까. 하여튼, 아무튼, 그러나 우리 집엔 참 안 어울린다. 이 말이. 가장 스트레스가 심한 날이다. 지난해와 올해, 모두 그랬다.

어느 집 며느리처럼 할 일이 많아 스트레스가 아니다. 어느 집 형제들처럼 신경전이 문제가 아니다. 어느 집 자녀처럼 ‘공부는 잘 하니?’라는 어르신의 말 때문이 아니다. 어느 집 노총각처럼 ‘장가는 언제 가니?’라는 말 때문이 아니다. 어느 집 새댁처럼 ‘애는 언제 날 거니?’라는 질문 때문이 아니다.

명절만 되면 참 외롭다. 부모님 먼저 보내드린 외아들이다 보니 갈 데가 없다. 이 나이쯤에는 당연하겠지만. 또 외아들을 뒀으니 올 사람도 유일하게 아직 장가 안 든 아들 녀석 하나뿐이다. 아들이 손님처럼 왔다가 하루를 자고 떠났다. 더 허전하다.

그러나 허전한 게 문제가 아니고 외로운 게 문제가 아니다. 적령기에 이른 아들 녀석의 생각과 아내의 생각이 몹시 부딪히는 게 문제다. 지난해 한가위도 그랬고, 이번 한가위도 그랬다. 나라고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둘의 생각이 하도 평행선을 달리니, 난 가정의 평화를 위해 아내 손을 들어줬다.

솔직히 앞으로의 노년을 아들 녀석하고 살 게 아니지 않는가. 미우니 고우니 해도 아내와 살 것 아닌가. 난 현명한 선택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무조건 아내 편이다. 어차피 옳다 그르다의 논쟁이라기보다 선호의 문제 아닌가. 그래서 난 아내 편이다.

바닷길을 걸으며 아들 녀석에게 ‘넌 나를 닮았어. 그치?’라고 말했다. 아들이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아뇨. 엄마를 닮았어요.’ 한다. 그때만 해도 녀석이 틀린 답을 말한다고 생각했다. 아뿔싸! 녀석 말이 맞다. 엄마와 아들, 아들과 엄마, 한 치도 어긋남 없이 의견이 팽팽하다.

냉철함, 말 없음, 조용함, 붙임성의 결여, 차분함, 착함 ... 여기다 더 무엇을 보태랴. 누가 그 엄마에 그 아들 아니랄까 봐 이리도 이성적이고 냉철하게 팽팽한지. 감성적인 내가 감내하기에는 아무래도 버겁다. 이 엄마와 아들이.

두 해의 한가위를 이리 그 엄마와 그 아들의 한 치도 뒤로 물러서지 않는 냉철함 가운데 보냈으니, 이쯤 되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이 얼마나 우리 집에 안 어울리는 말인지, 아니 불태워 버리고 싶은 속담인지 깨단했을 터.

이렇게 추석이 지나갔다. 내년 추석은 이 속담이 우리 집에도 아주 잘 어울리는 속담이었으면 좋겠다. 내년엔 모자간의 냉철한 논쟁이 끝난 추석이기를 기도한다.

▲ 김학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