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사막수도자들의 영성훈련 이해-7.

에바그리우스가 말하는 무정념(Dispassion)에 이르는 훈련

이번주는 에바그리우스가 말하는 기도에 있어서 무정념(dispassion-無情念)의 가치에 대한 교훈을 살펴 보고자 한다. 에바그리우스에게 기도란 순수한 지성과 하나님의 교제다. 즉 잡념의 활동들로부터 자유한 지성이 하나님을 향해 집중하는 것이 기도다. 그래서 에바그리우스는 묻는다. “그렇다면, 지성이 기울어짐 없이 주님을 향해 나갈 수 있으며 매개물 없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으려면 어떤 상태가 필요합니까?” 이에 대한 대답이 무정념(헬라어로 아파떼이야)이다. 무정념에 대하여 에바그리우스의 제자로 그의 교훈을 서방 가톨릭교회에 전했던 존 카시안은 간략하게 마음의 순수함(the purity of heart)이라고 정의한다. 다시 말해 이 무정념의 상태란 기도자가 자신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떠오르는 여덟 가지의 악한 생각들을 극복하고 이르게 되는 내면의 고요와 평정의 상태를 의미한다. 그 고요의 상태는 참된 기도와 하나님에 대한 관상을 위한 전제 조건이다.

무정념의 상태가 참된 기도를 경험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라면 이제 기도자에게 주어지는 과제는 과연 그 무정념의 상태를 어떻게 획득하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기독교 영성사에서 에바그리우스의 위대함은 그가 이것을 독특하면서도 구체적인 방식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에바그리우스가 제시하는 무정념에 이르는 방법이 바로 내적인 경성(헬라어로 넵시스)이다.

에바그리오스의 내적인 경성 방법은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잡념들을 분석하지 않고 관찰하는 것이다. 내면에 떠오르는 잡념들은 그것들을 제거하려는 노력에 의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에바그리우스는 기도자가 그러한 잡념들에게 주의를 집중하지 않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기도하는 동안에는 지성의 귀와 입을 막으십시오. 그렇게 하면 기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성이 귀머거리와 벙어리가 된 것처럼 내면의 잡념들의 활동들에 주의를 집중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다른 말로 하면 지성이 잡념의 활동들을 분석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떠오르는 잡념들이나 심상들을 단지 관찰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도자가 기도 가운데 집안일이 생각나면 마음의 눈으로 그것을 지그시 관찰하며 “아, 내가 집안일을 생각하고 있구나”라고만 생각하는 것이다. 더 이상 그 문제를 분석(commenting)하거나 숙고하지 않고 관찰을 통해 단지 그것의 이름(naming)만 붙이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한동안 지속하다 보면 떠오르는 잡념들이 다소 진정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둘째, 더 나아가 에바그리우스는 잡념이 활동하도록 내버려 두라고 조언한다. 일반적으로 기도할 때 지성은 조용히 머물지 못하고 생각들에 의해 이리저리 끌려 다니게 된다. 그래서 기도자는 “기도하는 동안 경계하며 지성을 생각들로부터 보호해야 한다”고 에바그리우스는 강조한다. 이 말은 지성을 잡념의 활동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오히려 잡념을 활동하도록 내버려 두라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그냥 잡념이 떠오르도록 내버려 두는 것인데(letting go of thoughts or letting them be there) 다른 말로 마음 안에 잡념들이 활동하도록 허용하는 심리적인 공간을 두는 것이다. 심리적인 공간이란 마음의 한편에서 잡념들이 떠오르지만 지성은 그것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이러한 경성의 단계를 거쳐 기도자는 마침내 성령의 임재 안에서 잡념들에 의해 방해 받지 않고 기도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기도를 마친 후에 드디어 잡념의 원인에 대한 분석을 하게 된다. 에바그리우스는 기도에 대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만일 당신이 어떤 생각을 극복하기 위해서 기도했는데 그 생각이 가라앉았다면, 그러한 생각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조사해 보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그릇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이 무정념에 대한 에바그리우스의 교훈이 다소 어려워 기독교 영성훈련 전통에서 그것을 그대로 적용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영성훈련의 원리를 이해할 때 우리는 그를 토대로 현대의 개신교인들을 위한 적용들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의 고요를 갈망하는 현대인들을 위한 통찰들을 고민해 보는 한 주가 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