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엄마아빠들과 함께한 11일 여행

10,열 번 째 이야기(5월 14일/월요일) - red crab 먹으러 갔다가...

미국에서의 간담회일정으로는 마지막이 될 워싱턴모임에 가는 날,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다. 필라델피아에서 워싱턴까지가 먼 거리는 아니었음에도 아침 일찍부터 길을 나선 것은 필라델피아의 철도박물관을 견학하기 위해서였다. 미국에서의 빡빡한 일정 가운데 처음으로 시간이 넉넉한 날이었기에 기분 전환 겸 해서 관광을 하기로 한 날이었다.

필라델피아는 남북전쟁, 미합중국 수립 등과 관련한 유적지가 많은 곳이다. 그러나 그 유적지들이 모두 시내에 있어 이동하는 데에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 한적한 곳에 있는 철도박물관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철도박물관 근처에는 아미쉬공동체도 있어 그들이 사는 모습도 볼 수 있다는 것이 또 우리의 발걸음을 그리로 하게하였다.

우리나라 철도(표준철도)와 달리 광궤철도를 달리던 기관차들의 크기에 놀랐다. 조선시대였던 1840년대에 이미 미국에서는 기차가 달리고 있었다는 사실에 또한 놀랐다. 전시된 열차에 올라 사진을 찍으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던 세월호 엄마아빠들을 보니 기뻤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그들의 마음속에 “에구, 우리 아이와 함께 왔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슬픔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팠다. 어쨌든 그 날은 날씨도 좋았고 유쾌한 여행이었다. 짧은 거리지만 증기기관차를 타고 아미쉬마을을 지나가면서 소풍 나온 아미쉬 어린이들과 손을 흔들며 인사를 나눈 것도 유족들에게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철도박물관 견학을 마치고 워싱턴으로 가는 길, 길 가에 있는 아이스크림가게 앞에 차를 세웠다. 미국에 가서 커피라도 사 드시라며 화정교회 교인들 뿐 아니라 심지어 안산지방의 어려운 목사들까지도 돈 봉투를 주었다. 그런데 도통 그 돈을 쓸 기회가 없었다. 가는 곳마다 식사를 대접받았고, 우리를 대접한 이들은 커피 한 잔 마저도 우리 돈으로 살 수 없도록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에게는 꼭 써야 될 돈이 있었다. 수 년 째 병상에 누워 움직이지 못하시는 장모님이 “세월호가족들과 함께 아이스크림이라도 사먹으라”며 주신 돈이다. “어? 저기 아이스크림가게가 있네”라며 그 앞을 조금 지나쳤지만 운전하는 김찬국 목사에게 급하게 차를 세우라고 하고는 아이스크림을 사게 되었다. 번잡한 길 가에 차를 세워서 조마조마한데, 미국아이들의 아이스크림을 푸는 속도가 얼마나 느린지... 에휴, ‘빨리빨리’에 익숙해 있는 한국사람들, 미국에서는 아이스크림 하나 사 먹는 것도 이렇게 시간과 공을 들이고 마음을 졸여야 한다는 것을 몸으로 배웠다.

▲ 볼티모어 크랩은 원래 푸른 색이다. 그걸 삶으면 빨간색이 된다.

그 날 점심은 볼티모어에서 먹었다. 김찬국 목사가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하고 이곳저곳 여러 식당 주인들과 통화를 한 후에 찾아간 곳은 시내의 어느 큰 건물 안에 있는 식당이었다. 우리는 차에서 먼저 내리고 김목사는 주차장을 찾아갔다. 그런데 그 식당이라는 것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형태여서 약간 당황스러웠다. 음식을 파는 곳은 수 십 곳인데, 음식 파는 곳에 앉아서 먹는 자리는 없었다. 음식을 사서 테이블이 널려있는 2층에 올라가서 먹는 방식이었다.

2명, 3명씩 흩어져서 각 자가 좋아하는 음식을 사들고는 2층으로 모였다. 볼티모어에서 유명하다는 red crab도 샀다. 우리가 red cab를 많이 사니까 식당주인은 덤을 듬쁙 얹어주었다. 미국에도 덤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런데 우리가 음식을 거의 다 먹을 때까지도 주차장을 찾아간 김목사가 나타나지 않았다. 한참 불안한 마음으로 기다린 후에 나타난 김목사가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고 말하는 표정이 뭔가 심상치 않았다. 주차장에 들어가다가 차가 파손됐다는 것이다. 입구가 좀 낮은 것 같아 “이 차 들어갈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주차관리인이 “충분하다”며 안내하기에 안심하고 들어가는 데 지붕에서 드드득소리가 나더라는 것이다. 다시 돌아 나오기 위해 타이어의 바람을 빼고 어쩌고 하면서 고생하다가 겨우 빠져나왔다고 하였다.

운전을 해 주기 위해 비행기까지 타고 왔고 계속 혼자서 운전하느라고 수고하는 것만 해도 미안한데 그런 문제까지 생겼으니 미안하고 당황스러웠다. 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는 교회 버스를 내 준 플러싱제일교회의 김정호목사에게 무어라고 해야 할 지 난감하였다. (그 시각 이후부터 뉴욕에 돌아와 “차가 파손되었다”고 자수할 때까지의 며칠은 영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차량파손의 얘기를 듣고도 넉넉한 웃음으로 관용을 보여주신 김목사님께 두고두고 감사한 마음이다.)

그 날의 목적지인 들꽃교회 가까운 수퍼마켓에 들러 몇 가지 필요한 것을 샀다. 우리가 쇼핑을 하는 동안 비가 오기기 시작하였다. 토네이도가 지나가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문자가 스마트폰에 계속 떴다. 강한 바람과 함께 하늘에서 쏟아 붇듯이 내리는 비를 보면서 민정이 아빠는 “아따, 미국에서는 비도 대륙적으로 오네” 하였다. 쇼핑을 마치고 차에 오르자 이런, 차 안에서도 비가 오고 있었다. 지붕에 금이 간 것이었다. 그 후부터 우리는 차 안에서 비를 맞으며 미국을 돌아다니게 되었다. 뉴욕으로 돌아올 때에 휴게소에서 겨우 구입한 테이프로 땜질을 해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고, 뉴욕의 어느 홈 디포(거대한 철물점으로 보면 됨)에서 구입한 실리콘으로 지붕을 때운 뒤에야 차 안의 비는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