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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가 아니면 ,나(我)서지 못하는데 왜들 이러십니까?
오재영  |  ojy019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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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년 09월 22일 (토) 23:45:16 [조회수 : 3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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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담한 기독교 전사들의 사기를 회복시킨다는 고든, 맥도날드는ᒥ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삶ᒧ,에서 “상품에 품질이 있듯이 영혼에도 영혼의 질(質)이 있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영혼의 질(質) 상태는 어떠합니까?

 

구도자의 진정한 용기

 

조안 치테스터(Joan Chittester)는 과거 수사(修士)들의 문서를 연구하다가 그 문서 중에 한 나라에 대군(大軍)이 쳐들어와 가는 곳마다 파괴를 일삼던 시기의 기록을 보게 된다. 적들의 극에 달한 분노는 성스러운 사람들, 특히 수사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치테스터는 이렇게 쓰고 있다. 침략자들이 어느 한 마을에 도착했을 때. 그 마을의 지도자는 지휘관에게 이렇게 보고했다. “장군님 일행이 오신다는 말을 듣고 수사들은 전부 산 속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그러자 지휘관은 얼굴 가득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 자기가 그렇게 무서운 사람으로 평판이 나 있다는 것이 뿌듯했던 것이다. 그때 마을 지도자가 덧붙였다. “다 도망갔는데 한 명은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지휘관은 격노했다. 그는 수도원으로 진격하여 문을 걷어찼다.

남아 있는 한 수사가 거기 뜰 안에 서 있었다. 지휘관은 그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그를 향하여 “너는 내가 누구인지 아느냐? 나는 눈 하나 깜짝 않고 단칼에 너를 벨 수 있는 사람이다.” 그 말을 들은 수사는 여유 있고 느긋한 시선으로, 그러나 그 지휘관을 꼼짝 못하게 주시(注視)하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는 너는 내가 누구인지 아느냐? 나는 너로 하여금 눈 하나 깜짝 않고 단칼에 나를 베게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지금 본인들은 하나님을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가?

 

마지막 때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 중에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있는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진저)하신말씀처럼, 영성(靈性)이 메마르니 별 희한한 이들의 거룩을 빙자한 다양한 모습으로 설쳐대는 모습들이 가관이다. 도대체, 성직인 감독이 되겠다고 하는 이들이나, 그에 대하여 평하는 이들이나 뒤늦게 자신의 선거 권리를 내놓으라고 선동하는 이들이나, 이들은 그동안 어떤 길을 걸어온 이들인가? 지도자가 되려면 미리미리 기도와 함께 준비하지 못하고 일용잡부들도 그리하지 않는 즉흥적으로 행했는가? 교회가 좀 크고 교인들이 있으면, 더욱 조심하여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신의 사역뿐만이 아닌 주변의 어렵고 소외된 동역자들과 성도들을 아울러 섬길 일이거늘, 그 은혜를 본인의 실력과 능력으로 과시 하듯, 온갖 혈기, 항의, 막말의 추태(醜態)의 모습들이 과연 성직자라는 본 모습들인가? 그대들은 진정 하나님의 징계(懲戒), 심판(審判)을 생각해 본적은 있는가?

지금, 감독이 되기도 전에 드러난 일부 목사들과 그를 지지하는 패거리들의 행태는 더욱 참담하다 못해 참으로 염려가 된다. 지금 눈과 귀를 막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로지 소송에만 매달리는 ‘직대’라는 허명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의 모습을 보면서도 느끼는바가 전혀 없는가? 소문대로 그에게도 3천여 명의 교인과 수십 명의 평신도 지도자들이 있음에도 그 누구하나 충고했다는 소식 듣지 못했다. 성도가 아닌, 그저 교인들일 뿐이다. 어찌 보면 그이도 고독한 사람이다. 그러함에도 혹여 뜻을 이루면 그이를 정면교사(正面敎師)로 삼겠는가? 표현자체가 부담되지만 내보기에 이들은 이미 죽기위해 사는 이들이라는 두려운 생각뿐이다.(삼상2장25,대상10:13~14). 진정 엄위의 두려움을 아는 이들이라면 서로를 향하여 “더불어 살기에 힘쓸 뿐,” 상대를 향하여 서로 원수를 대하듯 그리하지는 않는다. 부디 서로 자중하고, 허세와 객기보다는 본인의 ‘영성’부터 점검하기를 바란다. 지금 행하는 행태들은 책임의 경중(輕重)을 막론하고 사도바울의 표현대로“모두가 그리스도와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전형적인 모습들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영성이라는 표현자체가 다양하지만, 그 단어를 안소니 블룸(Anthony Bloom)은 그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라 했다. 그는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것을 뜻한다. 어쩌다 마주치는 고양이가 아니라 바로 호랑이다. 고로 하나님의 세계는 위험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 세계에 대한 정보만 구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그 안에 들어가야 한다.” “다르게 표현하여 영성이란, 창조주에게 우리의 길을 인도하게 하고, 가는 길에 힘을 공급하게 하며, 지쳤을 때나 다쳤을 때 필요한 생계를 채우시게 하는 가운데, 그 분과 동행하는 여정을 말한다. 그러므로 영성이란, 주변 세상(時勢)을 본받지 않고, 분별과 확신과 결정으로 충만한 내면세계를 따라 사는 것을 뜻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영혼을 말한다.”

(고든 맥도날드,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삶, 일부인용과 참조).

 

연목구어(緣木求魚)라는 말이 있다.

 

성경은 우리에게 더욱 아픈 가르침으로 경고하고 있다. “심은 대로 거둔다.” 자신 있는가?

“사람은 누구나 한번은 ‘리 더’가 된다. 는 말이 있다. 그러나 성실함과 탁월함을 갖춘 리더는 우연히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앞선 이들의 부실한 부분을 보고, 자신의 일처럼 스스로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에 다짐하며 노력 하는 이들 만이 전임자들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는다. 모두가 그리 살지는 못해도, 성직자와 성도들의 대의와 방향이 주님 앞에서의 ‘거룩함과 순결’이 아닌가? 오늘 우리 모두의 마음을 답답하게 하는 것은 그 책임 있는 자리에 서겠다는 이들이 그동안 그 자리에 걸 맞는 자기 훈련의 결여로 계속 천민성(賤民性)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많은 이들이 현재의 32회 총회실행부위원회 를 비롯한 본부의 조직들인 각국 위원들의 일부 부실한 모습들을 보고 비판들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또한 한 달 이면 끝이 난다.

그러나 지난 4월의 각 연회에서 추천이 되어 이미 조직을 세워 새로운 감독들의 이취임과 함께 임무를 감당하기위하여 대기하고 있는 33회 총회 실행부와 각국 위원 및 이사들의 면면을 보면 더욱 참담하지 않은가?. 그의 신앙심과 그 분야의 남다른 직능과는 관계가 없이 학연, 지연, 패거리를 벗어나지 못한 근시안(近視眼)으로 지금도 총실위를 공존시키고 있는 실행위원들 중에서도 단지 현직 감독을 지냈다는 것과, 또 감독후보들과의 정치적 연관이 되었다는 것만으로 또다시 중책을 맡기 위해 지금 대기하고 있다. 이것이 자기 자신만 소멸하고 마는 길인가? 아직도 멀었다. 이수모와 질곡을 벗어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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