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마주친 선한 사마리턴들

-15일간 미국 휭단기 8-

“그러지말고 11시에 봅시다. 한시간이라도 일찍 봐야지….”

시카코 명 교수로부터 온 전화였다. 명 교수와의 인연은  15여년 전

문학평론가인  명 교수가 워신톤에서 개최된 대학선배 L 작가의 

출판기념식에 참석했을 때였다.  기념식이 끝나고나서 명 교수가

머물고 있는  호텔까지 라이드를 주며 차 안에서  30분 정도 함석헌  스승

다석 유영모 선생님의 사상에 관한 대화를 나누며  무척 깨어있는

기독교 장로라는 인상을 받았었다.  그후 내가 쓴 집필들을 가끔 이메일로

보내주었고,  작년에는  명교수 가 저서 “예수 그리스도와 음양설”을

소포로 보내주셨다.

나는 여행중 일요일은 만나면 여행지 동네에 있는 교회에 들려

예배를 보는 오랜 습관을 가지고  있다.  신앙이 독실해서가 아니다.

예배에 참석해서  교회 신도들을 만나보면 그 지역의 역사와 전통,문화를

대충 일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전체에서 범 백인계가 차지하고 있는 비율을 72%  정도다.

그 범 백인계를 민족별로 구분해 보면  독일계가 17.1 %, 아프리카계가 14.6 %,

아일랜드계가 11.6 %, 맥시코계가 10.9%, 일글랜드계가 9%, 이태리계가 5.9%,

폴란드계가 3%, 프랑스계가 2.9 % 이다.

그 지역에 어떤 민족의 이민자들이 주류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 지역의 종교, 종파, 문화와  풍습,  음식문화.. 등이 다르다.

이번 시카고 방문 때도 카투사로 군복무 시절  함께 근무했던 c  선배를

그가 집사로 봉직하고 있는 Lakeview  Church  오전  예배에서 만나기로 했다.

 예배시간 10시 30분을 맞추기 위해 새벽  네시  반에 일어나 다섯 시간 이상을

열심히  운전해야 했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예배 후 교회 정원에서

푸짐한 피크닉 행사가 있었다.  여러 교인들과 어울려  자유로운  대화를 나누며

시카코 지역 교민사회의 역사와 살아가는 모습을 읽을수가 있었다.

첫눈에 신령한  장로처럼 보이는 한 노신사와 마주쳤을 때였다.

시카코 명 장로가  문연듯 머릿속에 떠올랐다. ‘명 교수, 명 장로, 명 연사’ 는 입담 좋은

명 교수가 워싱톤 L 선배 출판기념식에서  남겼던 자기 소개 ‘명언’ 이다.

어차피   C 선배 집에 하룻밤을 머룰기로 작정 했으니 떠나기 전에 명 교수를 잠시 뵙고갈

시간적 여유는 있는 둣했다.  문제는 명 교수의 연락처였다.

70년대 초에 유학와서 꾸준하게 문필활동을 해오신 명 교수, 명 장로, 명 연사라면

‘시카코 지역에서 그 이름을 모르면 간첩이라고 의심받을  정도는 되겠지..’ 하는 생각에

마주친 노 신사에게

“ 혹씨 장로님이 아니십니까? “  하고  물었다.

“맞습니다.그런데 내가  장로인 것은 어떻게 아세요?”  다소  놀란  기색이었다.

“ 네, 저는 겉모습만 보고도 목사와 장로를 식별해 낼 수 있는 관상쟁이 입니다.”

그리고나서 다짜고짜로 “혹시 이 지역 올드 타이머이신  명 장로님을 알고계십니까?

 전화번호가 필요해서 그런데….”

“가까운 사이는 아니지만 친분은 좀 있는 분입니다.  집에돌아가서 전화번호를  찾아

C 집사를 통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리고나서  밤늦은 시간에 c  선배가 명 교수의 전화번호가 적힌 노란 메모지를

나에게 건내며  “ 한 번밖에 만나보지 못한 사람을 갑자기  만나자고 하면

선뜻  만나주겠어?”  하며 은근한 우려함을 표했다.

“ 걱정하지  마세요. 대부분 글쟁이들은 건달끼가 끼어서   한번 만나도

만리 장성을 쌓는 사람들입니다.  밑져봐야  본전이 아니겠습니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그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으나 반응이 없어서

나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함께  만나고 싶다는 내용의  보이스 멧세지를 남겨두었다.

한 시간 후에 명 교수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내가 메시지를 남긴 전화번호가 부인의 전화여서

반응이 늦었다며  오후  12시에 근처 한국 식당에서 만나 함께 식사하자고  했다.

그러더니 금방  전화를 다시 걸어서  그러지말고 한 시간 일찍   11시에

 호텔 커피삽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가슴이 뛰었다.

점심 식사에는 한국에서 온  두분의 문인 교수들, 그리고 시카코 지역  문인들 몇 분이

함께 하셨다.  점심식사 후 명 교수는 손수 운전을 하시며 시카코 한인문화회관,  방송국등을

안내해 주셨다. 서너시간 동안 시종 가슴이  뛰어  감히  입을 다물고 있을 수가 없었다.

문학, 예술, 철학, 음악, 이민살이, 가정 이야기, …….. 연애 이야기를 빼놓고 별별 이야기들로

대화가 이어져갔다.

역시 첫눈에  사람을 알아보는 나의 직감력은  뛰어났다.

그는 명 교수, 명 장로, 명 연사 정도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가슴이 포근한 명 인간이었다.

헤어지면서  “ 명 교수님,  정말 고맙습니다.  한 번밖에 만난적이  없는 저에게

긴 시간을 내어주시고 극진한 대접까지 해  주셔서…”

“무슨 소리야? Mr. Park,  내가 워싱톤을 방문하면 Mr. Park 집으로

처들어가지 않을 것  같아”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김춘수의 詩 ‘꽃’ 은 이런 가슴에서 나온 것일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나에게 여행의 의미는 목적이 아니라 그 과정이다.

 인생이 목적이 아니라 과정인 것 처럼 ………

뭐니뭐니 해도 여행의 즐거움 중  가장 큰 즐거움은

여행의 도상에서 마주치는  이런 선한 사마리턴들과의

만남이 아니겠는가?

지난 6월 보스톤 지역 여행 중에 일어났던 한 에피소드다.

삼일간의  동창회 모임 을 끝내고 보스톤  하버에 있는 케네디 도서관을 방문하기로 했다.  .

그때도 이번 여행처럼 가급적 GPS 를 사용하지 않고 지도에 의존하는

재래식 방법  여행을 하기로 했었다.

GPS 를 사용하면  분명히 빠르고 편리하기는 하다.

그러나  지나치게 목적지만 의식하기 때문에  오고가는 여행의 여유로운 맛은 즐길 수가 없다.

여행은  休息 이다  한자어 단어 그 의미대로 나무밑 그늘에서 숨을 멈추고 몸과 마음이

쉬는 것이다. 속도나 편리함과는 거리가 멀다.

‘여행 중에 길을 잃을 경우는 없다. 다만 실수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실수들도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다.’ 이것이 나의 개인적인 여행철학이다.

호텔을 떠나 길을 나서기 전에 보스톤 지역 올드타이머로 지리에 밝은

한 후배가  케네디 도서관에 가는 길은 자상하게 알려주었다.

보스톤는  트레픽(교통체중) 도시로 악명이 높다.  더구나  여름철이라서 가는 곳마다

도로  보수공사까지 겹처 교통체증이 그야말로 생지옥이었다.  그런 탓으로 길을 잘못들어

돌고돌다가 실수로  1-95  하이웨이 사우스를 타고 4-5 Exit 을 더 내려가 내려가고 말았다.

방향감각마져 가물가물 했다.  허스름해보이는   주유소 겸 자동차 정비소가 눈에 띄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영어가 서투른 한 월남인 메케닉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내가 케네디 도서관 가는 디렉션을 묻자,  ‘ No problem’ 하며 잠깐만 기다리라고 했다.

한참을 기다렸다. ‘혹씨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하고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했다.   얼마 있다가 게스를 넣고 있는 한 월남인 손님에게 나를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한참을 베트남어로 말하더니,  그 베트남 손님이  나에게 다가와

자기 차를 따라오라고 했다.  교통체증이 올때보다 훨씬 더 심해서  도로에 차들이 기어가고 있었다.

가다가 서고, 섯다가 가고, 오른 쪽 길로,  왼 쪽 길로.. 앞차를 붙어 쫒아가는 것이

그야말로 치열한 전투를 방불케 했다. 찌는 더위에 지치고 짜증까지 났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혹씨 저 친구가 길을 헤메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마져 들었다.   아마도  한 시간 반쯤 걸렸을 것이다.

 그 베트남 젊은이가 케네디 도서관 건물이 보이는 한  학교건물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나와서 나에게 학교 건물 옆으로 난 길을 가르키며

“저게 케네디 기념 도서관입니다” 하며 얼굴에 미소를 띄었다.

“ Thank You! Thank You ! Thank You Very Much! “  나는 그를 와락 껴안았다.

“ No problem, You are welcome!!! “

따뜻했다. 가슴과 하늘이 온통…..

09/13/2018 아침에

버지아 숲속에서

박평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