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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김정호  |  fumc@fumc.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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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년 09월 15일 (토) 00:35:30
최종편집 : 2018년 09월 15일 (토) 00:37:57 [조회수 : 4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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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 43년 전 대학 1학년 시절 룸메이트를 만났습니다. 1975년 9월 일리노이 공대에 입학을 하고는 미국생활에 빨리 적응하고자 TEP(Tau Epsilon Phi)라는 사교공동체에 입단을 했습니다. 선후배 규율이 엄격하고 서로를 ‘형제’라고 부르는데 신앙공동체가 아니라 사교공동체입니다. 영화 ‘Animal House’ (동물의 집)과 비슷한 그런 내용으로 살아가는 엄격한 규율이 있으면서도 주로 술 마시고 파티를 즐기는 형제, 의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공동체 생활 첫 날 저는 밤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내 방에 들어가니 룸메이트가 있는데 키가 엄청 큰 백인 친구가 옷을 홀딱 벗고 잠을 자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꼴을 본적이 없어서 겁먹고 집으로 와버렸습니다.

그렇게 대학생활을 겁에 질려 시작했는데, 그 친구가 바로 저의 첫 미국인 친구가 되어서, 매일 학교를 같이 다녔습니다. 내 영어가 짧기도 했고 미국 친구라고는 하나도 사귀어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말을 어떻게 할지 몰랐습니다. 그 친구 역시 일리노이 시골에서 왔기에 숫기가 없어서 누군가와 대화를 제대로 나누어 본적이 없었지만 그래도 항상 같이 붙어다녔습니다.

그런데 정말 나이 먹고 생각해 보니, 그 친구로서는 생전 처음 만나보는 한국 친구인데 나를 전혀 자기와 다른 사람으로 취급하지를 않았습니다. 키가 엄쳥 큰 백인 친구와 키가 작은 저는 별로 하는 말도 없이 항상 붙어다니니 캠퍼스에서 우리를 보는 사람들이 신기하게 여겼습니다. 19살에 만난 우리가 60이 넘어 다시 만난 후 왜 그랬는가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우리 둘 다 다른 아이들과 잘 섞이지 못하는 ‘odd couple’(좀 이상한 친구들)이었기에 그랬을 것이라고 동의를 했습니다. 옛날인데 그 친구는 나를 조금도 불편해 하거나 이상한 사람으로 여길 줄을 몰랐습니다. 학교 배구대회에 나가면 나는 공을 올려주고 그 친구는 때리고 정말 베스트 파트너였습니다.

한달 전에 그 친구 소식을 듣고 연락을 하면서 제가 옛 생각에 눈물을 흘렸는데 그 친구가 하는 말이 한국으로 돌아갔을 것으로 여겼던 저를 만난다고 생각하니 잠이 안오고 눈물이 나오더라고 하더군요. 부부가 다 변호사인데 부인이 하는 말이 나와 만난다는 이야기를 하고는 그렇게 좋아서 기다렸다고 합니다.

저는 대학 2학년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그 공동체를 나와 집에서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소식이 끊어졌었습니다. 40여년전 내 대학생활, 나를 항상 ‘brother Chongho’(우리의 형제 정호) 불러주던 옛 친구들을 생각해 보니 정말 어떻게 동양사람은 나 혼자였는데 그렇게 서로 돌봐주고 지켜주었는지 생각할수록 고맙기만 합니다.

우리는 당시 대학생들이 하는 못난 짓 못된 짓도 엄청나게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60이 넘어 다시 만나고 보니 그 친구는 작은 루터란 교회에서 신앙생활 잘하고 있고 큰 회사 변호사 파트너로 성공을 했더군요. 당시에 마리화나가 유행이었는데, 단 한번도 나에게 담배나 마리화나를 권하지 않았던 것이 신기해서 물었더니 그 친구 말이 “너는 매 주일 교회 다녔잖아. 그래서 우리가 너는 건드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하더군요. 내년이 대학졸업 40주년이어서 플로리다에서 옛날 형제들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시카고제일연합감리교회 95주년 기념부흥회를 주말 인도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교회는 제가 신학교 가려고 추천서 받으러 갔다가 문전박대 당해 엉엉 울면서 나왔던 교회입니다. 그래서 신학교 1학년때는 추천해주는 교회가 없어 장학금도 못받고 고생했었습니다. 물론 훗날 당시 담임목사님이 저를 많이 돌보아 주셨지만 나에게 아픈 기억이 있는 교회입니다. 그 설움을 이기려고 입술을 깨물고 열심히 공부했었습니다. 80년대 천명이 넘는 큰 교회였지만 90년대 이후 어려워졌다가 다시 회복되고 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시절 알았던 분들이 아직도 살아서 교회를 지키고 계신 모습을 보니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4-50년 세월 한 동네 한 교회에서 살아온 분들을 보면서 한편으론 참 고맙고 한편으론 참 부러웠습니다. 어린시절의 저를 기억해 주는 분들도 계시고 80년대 저의 ‘악명’높았던 시절을 아는 분들도 계시는데 60이 넘어 흰머리가 더 많아진 저를 보고 반가와 하는 그 분들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어느 장로님께서 “목사님, 아니 왜 시카고만 떠나면 모두들 목회를 다 잘하시는 건가요?” 라고 말씀하십니다. 칭찬인줄 알고 고마웠습니다. 집회를 인도하면서 시카고 출신들인 장철우 목사님과 김성찬 목사님 이야기도 하고 옛날 목사님들 이야기를 하니 연세 드신 분들은 그 동안 잊고 살았던 옛날 이야기를 너무나 좋아하셨습니다.

어린 옛시절 기억과 추억이 있는 ‘고향’에서 집회를 인도하면서 오늘까지 인도하고 예비하신 에벤에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 또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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