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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노력할 필요가 없는가?
최재석  |  jschoi@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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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년 09월 14일 (금) 22:27:20
최종편집 : 2018년 11월 10일 (토) 00:49:59 [조회수 : 3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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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해주신다는 말을 듣는다. 혹은 기도하면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신다고 말하기도 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그런 말에 익숙해져 왔다. 그래서 그런 말은 성경적이고 아주 신앙적인 것처럼 들린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자주 드는 예가 들의 백합화도 공중의 새도 하나님이 다 먹이신다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는 마태복음 6장 25-34절의 말씀이다.

이 성경구절에 관련해서 나는 몽골에 나가 있던 한 선교사의 경험을 언급한 일이 있다. 우리교회에서 몽골에 파견한 한 선교사가 이 구절을 가지고 설교했단다. 그런데 다음날 두 젊은이가 그 선교사를 찾아왔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나님이 다 이루어주신다고 해서 사표를 내고 왔다는 것이었다. 이 의외의 일을 만난 선교사는 그 두 젊은이를 직장에 돌려보내느라고 진땀을 뺐다고 했다. 우리는 마태복음 6장 25-34절의 말씀을 과장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은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에 비유한 것과 비슷하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알아서 해주신다고, 기도를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가르친다. 바꾸어 말하면, 인간은 전혀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말인데, 그것은 먼저 우리의 삶의 경험에 맞지 않는다. 우리는 보통 처자식을 위해서 일한다고 말하는데, 우리가 일하지 않으면, 달리 말해서 돈을 벌지 않으면 가족을 부양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기독교인이든, 기독교인이 아니든 모두 열심히 일한다. 칼빈주의자들이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었다는 것은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의 정신』을 통해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은 성경의 말씀과도 맞지 않는다. 믿음의 사람 바울은 천막을 만들어서 생활비를 조달하면서 일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 3:10)고 가르쳤다. 예수님도 일하셨다. 안식일에도 일하시면서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고 말씀하셨다. 구약에서도 일하는 것이 강조되어 있다. 안식일에 쉴 것을 명하신 하나님은 엿새 동안은 힘써 일하라고 하셨다. 이렇게 신구약 모두에서 믿는 자들도 열심히 일해야 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종교개혁자들은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하고 무능한 존재라고 주장했다. 이 무능한 존재는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의 은혜로 의인이라고 칭함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2:8-9)고 말했다. 이 말씀대로 우리 개신교인들은 행위를 통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믿는다.

그런데 예수님이 마태복음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7:21)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분명히 믿음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믿음만 가지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이 구원을 받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상반되는 바울의 언급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구원은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고 말한 에베소서를 인용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우리의 행위, 즉 노력이 필요 없다고 말하기 쉽다. 그런데 에베소서 2장에서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강조한 바울이 에베소서 5장에서는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5:1-2)고 말했다. 우리가 바울의 가르침 가운데 나타나는 이 상반되는 언급 중에서 하나는 택하고 다른 하나는 버려야 하는가?

성경에 나오는 상반된 말씀 중에서 하나만을 택한다면, 그것은 성경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반만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는 두 가지를 모두 받아들여야 한다. 여기서 상반되는 말씀을 모두 받아들인다면, 구원은 인간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그 선물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칼빈은 성화나 견인조차도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다고 말했지만, 성경에는 인간의 노력을 요구하는 말씀이 많이 나온다. 이런 때에 우리는 한 신학자의 말을 따르기보다는 성경 말씀을 따라야 하지 않을까?

일상의 영역에서는 물론이지만, 믿음의 영역에서도 우리의 노력이 요구된다. 로마서 4장과 히브리서 11장에서 믿음의 전형으로 내세운 아브라함의 경우를 보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네 고향을 떠나 내가 인도하는 곳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을 따라나섰다. 그에게 믿음이 있었기에 그는 따라나서기로 결단할 수 있었고 그 결단에 따라 행동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한 믿음의 사람들 가운데에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솔로몬은 믿음의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을 때 벌을 받았다. 솔로몬은 일천번제를 드리고 자기를 위하여 장수나 부귀를 구하지 않고 겸손한 마음으로 백성을 재판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하나님께 요청했다. 그를 갸륵하게 보신 하나님은 그를 축복하셔서 지혜뿐 아니나 부귀영화까지 허락하셨다. 그리고 그는 성전을 건축했을 뿐 아니라 잠언과 시편을 지은 모범적인 신앙이었다. 그러나 그가 궁정에 이방신을 들여오고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 여호와를 온전히 따르지 아니하자 하나님은 그를 정죄하셨다. “네가 내 언약과 내가 네게 명령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 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왕상 11:11).

여기서 우리는 그의 믿음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가 악을 행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본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히브리서에서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11:6)라고 언급되어 있는데, 이 말은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이 무조건 기뻐하신다는 말이 아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이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을 하지 않으면, 솔로몬의 경우처럼 하나님을 실망시킨다.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고향을 떠나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하신 대로 믿음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기쁨이 지속된다.

믿음을 강조한 로마서에서 바울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5:1)라고 말했다. 여기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으면 하나님이 실망하실 것이고, 결국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노력할 수 있는 의지를 주셨다. 어거스틴은 『고백록』에서 그가 정욕과 하나님에 대한 열망 사이에서 오랫동안 시달린 사실을 언급하면서 우리의 마음속에는 어떤 것을 원하는 의지와 원하지 않는 의지가 공존한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롬 7:19)라고 고백한 바울도 자기와 마찬가지로 이 두 가지 의지 사이에서 싸웠다고 보았다.

여기서 어거스틴과 바울이 모두 의지를 가지고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쟁취한 사람들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지하생활자의 수기』에서 말한 대로, 인간은 “피아노 건반”이 아니다. 요샛말로 하면, 하나님은 인간을 ‘로봇’으로 만들지 않으셨다. 어거스틴은 그가 회심하는 데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인도가 있었지만, 그가 의지적으로 하나님을 믿으려고 노력했다는 사실을 누누이 언급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바울은 믿음만을 강조하고 행함을 소홀히 한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실상 바울은 앞에서 언급한 에베소에서처럼 믿음뿐 아니라 행함도 중시했다. 특히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은 사랑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13:2)라고 말했다. 그리고 믿음, 소망, 사랑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고 했다.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고 말하는 것은 예수님이 사랑의 중요성을 말씀하셨을 뿐 아니라 몸소 사랑을 실천하셨기 때문이다. 바울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바울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언급한 갈라디아서에서 “성령을 따라 행하라”(5:16)고 말했다. 흔히 사람들은 성령이 인도하신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인간은 전혀 노력하지 않아도 성령의 인도에 따라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말한다. 그렇지만 바울은 분명히 성령을 따라 행하라고, 달리 말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성령의 ‘열매’라고 말할 때 그 열매는 수고의 결과 얻어지는 결과물을 의미한다. 우리가 노력하지 않고 열매를 거둘 수는 없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고 결론짓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신 분이심을 믿는다. 우리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신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임을 믿는다. 그러나 또한 우리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은 인간을 통해서 역사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역사하셨고 많은 선지자들과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 당신의 뜻을 선포하셨다. 하나님이 패역한 세대를 돌이키기 위해서 사람을 보내려고 하실 때, 이사야는 자기를 보내달라고 자원하였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역에는 순종하는 사람들의 수고가 필요했다.

바울은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들의 수고를 인정했다. 그는 로마서 10장 13절에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말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절에서는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라고 말했다. 전파하는 자가 있어야 들어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믿어야 하나님을 부를 수 있다. 믿음은 전파하는 자의 수고에서 시작한다. 바울에 따르면, 믿음이 없이는 구원을 받을 수 없지만 믿는 자의 수고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인정한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도성』에서 시편 62편 11-12절을 인용했다.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 주여 인자함은 주께 속하오니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이다” 시편기자의 말대로 인간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고 하나님은 인자하시지만, 의지를 부여받은 인간은 하나님의 선한 뜻에 따라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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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티끌 (175.223.11.63)
2018-09-15 21:14:30
예수님 전하다 감옥 가면 무죄.

예수님 전하다가 부자 되면 존경.

예수님 전하다가 망하면 믿음은 남고.

예수님 전하다 죽으면 순교.

기준은 예수님 전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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