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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초대장
김기석  |  vorblick@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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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년 09월 12일 (수) 00:13:20 [조회수 : 6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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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마한 비닐 봉지를 손에 든 채 휘적휘적 앞서 걷던 아이가 갑자기 조그마한 건물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시간에 대갈 수 있을까 마음이 급하기는 했지만 고개를 숙인 채 뭔가를 골똘히 바라보는 아이의 모습이 나의 시선을 끌었다. 아이는 건물과 보도블럭 사이를 비집고 올라온 쑥부쟁이에 온통 마음을 빼앗긴 것 같았다. 꽃에게 길을 묻고 있던 것일까? 아이는 새롭게 조성된 신도시의 곧게 뻗은 도로를 이야기가 있는 길로 만들고 있었다. 아이는 쑥부쟁이의 말없는 초대에 흔연히 마음을 열었던 것이다.

누군가의 초대를 받는다는 것은 참 마음 설레는 일이다. 적어도 나의 존재가 그에게 거부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받은 셈이기 때문이다. 여러 해 전 노숙인들과 함께 하는 성탄절 예배가 교회에서 열렸다. 노숙인들의 벗이 되어 살던 이들이 주도한 모임인데, 저녁이 되자 노숙인들이 교회로 주뼛주뼛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분들의 손에는 초대장이 들려 있었다. 주관하는 분들이 오랫 동안 초대받지 못한 존재로 살아가는 그들의 입장을 고려하여 공들여 만든 초대장을 한분 한분에게 전달했던 것이다. 초대받은 자의 공손함과 예의를 갖춘 채 노숙인들은 감동적인 예배를 드렸다. 뿌리 뽑힌 자로 살아가는 신산스러움이 떠올랐기 때문일까. 눈물을 훔치는 이들도 있었다. 그분들의 손에 쥐어졌던 초대장은 이미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해체되었겠지만, 그들의 가슴에 새겨진 초대장은 오랫동안 그들 삶을 비추는 빛이 되었을 것이다.

분주함이 신분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시대이다. '모모'에 나오는 회색 일당들에게 시간을 팔아버렸기 때문일까? 도시인들은 모두 뭔가에 쫓기듯 살아간다. 어디로 그렇게들 달려가는 것일까? 텔레비전에서 아프리카 초원의 기린 무리를 다른 곳으로 이주시키는 광경을 본 적이 있다. 그 거대한 몸체를 한 짐승을 몰기 위해 헬기가 동원되었다. 헬기 소리에 놀란 기린들은 한 방향으로 내달렸다. 사람들은 기린이 달려오는 길목 양편에 거대한 높이의 나무벽을 쌓았다. 나무벽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좁아졌고 기린들은 결국 준비된 차에 실릴 수밖에 없었다. 욕망에 쫓기는 인생의 모습이 그러한 것 아닌지 모르겠다.

가끔 일에 몰두하느라 탈진한 동료들을 만날 때마다 쉬엄쉬엄 하라고 말하곤 한다. 모두가 그 말에 공감한다. 그래서 '언제 한 번 만나서 놀아요' 하고 헤어지지만 그 '언제'는 카프카의 '성'처럼 늘 저만치에 있다. 아무 일도 없이 만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해야 할 많은 일에 둘러싸여 살다보니 무위의 삶이 낯설어진 것이다. 그 낯섦은 스스로 깨기 어렵다. 벗들이 필요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비장한 용기로 낯섦을 깨고 나가 시간의 일부를 무위를 위해 구별해 놓은 이들이 있다. 가끔 만나 살아가는 이야기도 나누고, 음식도 나누고, 흥이 나면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는 사람들 말이다. 그런 모임은 어쩌면 각박한 우리 삶의 숨구멍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들을 청했다. 잔칫날이 다가오자 그는 청하였던 이들에게 종을 보내 모든 것이 준비되었으니 와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 초대에 응하지 않았다. 어떤 이는 새로 사들인 소가 일을 잘 하는지 시험하러 가보아야 한다고 말했고, 어떤 이는 새로 산 밭을 보러 가야 한다고 말했고, 또 다른 사람은 장가 들었기 때문에 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들은 모두 자기들에게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타성에 갇힌 수인들은 삶이 잔치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낯익은 세계에 머물면 안전할지는 모르겠지만 삶이 우리를 위해 준비해놓은 황홀한 신비를 만날 수는 없다.

저만치에 무심히 핀 듯 보이는 들꽃, 높이 떠가는 구름, 나무를 세차게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 밤하늘을 수놓는 별들, 천년 만년 푸르게 일렁이고 있는 파도는 어쩌면 신이 우리에게 발송한 초대장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를 우정의 자리로 불러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지금 불의한 세계 질서로 인해 벼랑 끝으로 내몰린 사람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사위지 않는 한을 품고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 마치 대지에서 뿌리 뽑힌 것처럼 허둥거리며 살 수밖에 없는 이들, 불가역적인 시간의 심연에 갇힌 채 폐허로 변한 가슴을 부둥켜안고 있는 사람들, 자기 땅에서 쫓겨나 세상을 떠돌고 있는 이들의 퀭한 눈망울 또한 우리를 참 사람의 길로 부르는 초대장이 아닌가. 풍경을 대하듯 무심히 지나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타성을 깨뜨리고 그들의 초대에 응답할 때 삶은 활어처럼 신선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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