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감리교 선거 사태
우리의 오만방자(傲慢放恣)함 두렵지 않은가?
오재영  |  ojy0191@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18년 08월 30일 (목) 00:18:06 [조회수 : 3892]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영혼구원을 위하여 어떠한 다짐을 하고 있는가?

 

윌로우 크릭 커뮤니티 신앙공동체를 이끌고 있는 빌,하이벨스 목사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목사가 교회에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건강한 자기 자신이다.” 이 말을 그대로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이 땅에서 영혼구원을 위해 존재하는 우리교회가 세상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교회 자체의 건강함이다. 그것은 교회가 건강해야 세상을 건져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또 프레드릭 부크너라는 영성작가는 이런 예를 들었습니다.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사람이 있을 때 의협심이 강한 사람은 그 즉시 물에 뛰어들어 죽어가는 사람을 건지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두 사람 모두 죽는다. 그것은 아무리 수영을 잘하는 사람이 구조하러 나섰다 해도 급류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기 때문에 수영을 잘하거나 못하거나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가 진정, 급류에 빠진 사람을 건지려한다면 그 방법은 전혀 다른데 있다. 우선 물 밖에서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모든 안전조치를 취해야 한다. 한 손으로 나무 둥치를 잡고 있든지, 아니면 끈으로 허리를 묶어 단단한 곳에 고정해두든지 아무튼 자기만은 절대로 급류에 휩쓸려가지 않도록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한다. 물론 짧은 시간 안에 이 모든 조치를 신속하게 취해야한다. 이렇게 자기 자신의 안전을 확보한 뒤에 손을 내밀거나 밧줄을 던지면 그때는 두 사람 모두살수가 있다.

의미 있는 예화가 아닌가? 즉 타인을 돌볼 뜻이 있다면 그는 먼저 자기 자신부터 돌봐야한다. 그것은 자신이 안전하지 않고는 다른 사람을 건져낼 수가 없기에. 우선은 내가 먼저 튼튼히 서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부크너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남을 위해서 피를 흘리되, 죽을 정도로 피를 흘리는 것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늘 우리의 주변을 둘러보면 다른 사람을 돕는다면서 오히려 자기부터 망가지는 사람들이 있다. 언뜻 겉보기에는 숭고해 보일지라도 실질적으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모두 죽는다.

오늘 세속화의 거대한 파도가 휘몰아치는 교활한 사단과의 처절한 영적전쟁터에서 오로지 주님의 명령에 따라 그 사명을 준행하기위하여 생명을 걸고 있는 교회가 해야 할 중요한 일, 성도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그것은 자기 자신을 먼저 건강하게 하는 것이다. 말씀 안에 서는 것, 믿음으로 굳건하게 서는 것, 계시로 받은 말씀대로 사는 것, 믿음의 방패와 전신갑주로 무장하여 굳건하게 서는 것, 이같이 냉철한 이성과 생명력 있는 신앙으로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이들이 모인 신앙공동체들이 허물과 죄로 죽어있는 이들을 건져 올릴 수가 있으며 다가오는 미래의 희망일수가 있다.

 

목적(目的)이 수단을 정당화 하는 것은 함정이다.

 

최근 교단의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이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품격 떨어지는 실망감에 좌절하는 이들이 너도나도 공적인 공간에 등장하여 비판을 넘어 비난에 휩쓸리게 되면서 이제는 일부의 목회자들과 평신도대표인 장로들까지 자신의 위치를 이탈하여 가볍게 행동함으로 많은 이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물론 1차적으로는 그 직분에 걸 맞는 영성과 품격을 갖추지 못한 이와 그를 추종하는 주변인들에게 책임이 있으나 그것이 이들의 행태를 합리화 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목적(目的)이 선하다하여 수단과 방법까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신중하지 못한 조급하고 성급한 표현들이 역설적으로 저들의 잘못을 합리화 시켜줄 뿐만 아니라 미래선교의 대상들에게 까지 혐오감을 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련과 위기는 오늘 우리교단과 소속된 신앙공동체만이 겪는 일은 아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대마다 내세를 향하는 이들에게는 그가 믿고 따르는 신앙의 길에서 진리를 따르기 위하여 자신의 사사로운 욕망과 욕정을 버릴 때 마다 비록 처한 환경이 열악하고 소수의 집단이라 하여도 그들은 향도(嚮導)의 위치에서 그 시대의 새로운 역사를 이끌어 많은 이들을 선도했다. 그러나 정로를 벗어나 인간의 욕망을 따를 때에는 제아무리 유구한 역사와 함께 따르는 신도의 숫자와 관계없이 그들은 버림을 받았다. 과거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든 불교가 번창했던 고려말엽, 산천의 경치 좋은 곳마다 사찰들 지어놓고 그 당시 개성에만 온갖 중들 천지였을 때 그들 불교 때문에 고려라는 나라는 망했다.

이조 5백년의 역사도 다를 바 없다. 중요한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이들이 도리(道理)를 벗어나 더불어 사는 방법을 등한시하고 눈에 보이는 대로 각자 욕망에 사로잡혀 서로를 증오하며 당쟁에 매몰될 때, 외침과 함께 나라가 망할 그때에도, 왕이 있는 한양에서 지방에 이르기까지 임금을 비롯한 정승, 판서를 비롯한 지방의 향반(鄕班)에 이르기까지 사당들 지어놓고 교리를 강론하며, 신도들로 넘쳐났으나 시대와 함께 그들이 허물어지는 기간은 불과 10여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역사의 기록이다.

 

자기부인(自己否認)없는 이들의 모습들...

 

오늘 우리가 소속된 교단의 모습은 어떠한가? 자칭 지도자를 자처하는 이들의 영성은 어떠한가? 하는 일마다 모두가 임기웅변 적이고 의문투성이인 까닭으로 “치기만만”하게 보인 탓인지 이제는 거듭남도 의심되는 시류 따라 주구노릇하든 이들까지 돕는다는 구실로 지도자의 주변에 몰려들어 온갖 추태를 일삼고 있다. 저들의 쫓기듯 허둥대며 좌우 분별없이 행동하는 가련한 모습 속에서 문득 여러해 전, 불교의 파계승(破戒僧)들이 처자식 먹여 살리겠다고 각목 들고 설쳐대든 추한모습들이 생각난다. 상식 있는 국민들과 신앙심 있는 불자들이 염려하며 모든 지상파 방송들은 경쟁적으로 그 모습들을 생중계하는데도 그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준비에 실패하는 것은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다.” 라는 말이 있다.

비록 지금은 어렵고 힘들어도 뒤따르는 후대와 동역자들, 조국 교회와 교단의 앞날과 미래, 보다 나은 후손을 위하는 결단과 각오, 자기희생의 마음들이 없다면 지체 없이 본인과 주변을 위하여 그 자리와 위치에서 퇴장함이 합당하다. 사도바울의 경고대로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仁慈)와 엄위(嚴威)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바 되리라.(롬11:22절).” 오늘 우리가 신앙의대가(大家)들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 “겸손”이다. 멈추어야할 때 멈출 줄을 아는 지혜(智慧), 인기에 함몰되지 않는 순수함을 배워야한다.

십수년 전, 어느 신학교 교수가 조사한 앙케이트에, 우리나라의 교인들 중, 100명중 단 3명만이 매일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고 있으며 주일날 예배를 마치고 교회당을 나서는 예배자 들 가운데 단 5명만이 방금 전에 들은 설교본문이 어디인지를 기억하고 있으며, 다음날 다시 물었을 때는 3명만이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명색이 성직자들인 우리들의 실제모습들은 어떠한가? 자신들의 공명심들은 내려들 놓았는가? 교회의 역사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시대마다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하게 보냄 받은 설교자들에게는 그가 그분 곁에 머물다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체취와 기운이 배어있었다. 그 때문에 그러한 설교자들의 설교는 그 설교의 요약자체가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오늘, 동일한 하나님을 믿으며 영혼을 돌보는 영적 지도자의 길을 걷는 사도와 선지자들의 후예들로서 이미 그 길을 앞서간 이들과 다르게 그 어떠한 긴장감도 없이 행하는 “오만 방자”한 우리들의 모습들이 두려울 뿐 이다.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7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1개)
0 / 최대 22400바이트 (한글 11200자)
- 금지어 사용시 댓글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 [댓글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도배성, 광고성, 허위성 댓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오재영 (116.33.133.221)
2018-09-06 09:27:01
P, S. 누구에게나 있는 죄인의 본성이지만...

지금 이철 직대와 함께하는 이들이든지, 전명구 감독이든지, 그나마 교단을 위하고 주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는 이가 먼저 내려놓으면 본인은 산다. 계속 버티면 “스게와” 의 일곱 아들들 쪽 난다. 오기와 집착으로 지뢰 묻힌 곳에서 방자히 행한 결과가 어떠한지는 이제 곧 만인 앞에 드러나는 날, 이르게 됨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오늘의 이인격이라면 2년 전, 감독회장 이 안 된 것은 교단보다도 오히려 본인에게 큰 행운이었음을 아시기를...
리플달기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