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중반까지 지구에 발 올리고 살면서 난생 처음으로 수술이란 걸 했다. 대수술도 아니고 소수술을. 아내가 어지럽다고 해 이비인후과를 갔다. 아무런 이유를 발견할 수 없으니 안과를 가보란다. 하지만 안과에서도 별 이상이 없단다.

아내 때문에 안과에 갔다가 아내가 좀 더 자세히 진단을 받아보자고 하며 나보고도 진료를 받아 보란다. 그래서 안과 진료를 했다. 아내는 이전의 안과에서 백내장 수술을 당장 해야 한다고 하더니 이번에는 백내장은 문제가 아니란다. 녹내장 기운이 좀 있긴 한데 경과를 지켜보자고 한다. 이전 안과보다 신뢰가 가는지라 그러기로 했다.

대신 내가 문제란다. 백태가 끼어 수술하지 않으면 더 심해진단다. 2년 전 건강 검진 때 발견해 이미 알고 있는 터라 순순히 수술을 받았다. 이리하여 난생 처음 날 때 그대로의 순수함을 간직한(?) 내 몸에 칼을 댄 것이다. 수술하고 보름정도 진료를 하면 깨끗해진단다.

그런데 말이다. 그게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웬만한 건 특유의 타고난 참을성으로 버티는 사람이건만 실밥이 건드리는 눈꺼풀의 아우성에는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다. 더군다나 딸꾹질을 쉬지 않고 하는 민감 반응으로 말미암아 약도 못 먹으니 더욱 그랬다. 수시로 주르륵 하고 흘러넘치는 눈물은 또 어떻게 하고.

이쯤해서 왜 바울이 생각나는 건지 얄궂다. 안질(학자들마다 의견이 다르지만) 때문에 고생했던 바울 말이다. 그는 하나님께 열심히 고쳐달라고 기도했다. 하지만 다 알다시피 하나님은 그 가시(질병)를 그대로 간직하고 살길 원하셨다. 즉 ‘NO’ 하신 거다.

이때 바울이 아주 쿨~ 하게 “알겠습니다. 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그러시는 거죠.”라며 하나님의 생각을 접수한다. 바울은 질병을 안고 복음을 전하면서도 행복하고 기뻤다고 간증한다. 아, 이 무슨? 아무래도 그런 바울이 난 버겁기만 하다.

역시 괜히 사도 바울인 게 아닌 모양이다. 아무나 그럴 수 있는 게 아니니 바울이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걸 하는 것은 값지지 않다. 누구나 할 수 없는 걸 하는 게 값지다. 바울은 바로 누구나 따라할 수 없는 걸 한 것이다.

그의 쿨~ 한 행동 속에는 그의 생각의 포기가 들어앉았다. 병을 낫게 해달라는 게 그의 기도 제목이니 그게 그의 생각(뜻)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다. 병을 그대로 간직하고 일하라 한다. 바로 이 시점에서 바울의 선택에 주목해야 한다. 바울은 자신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대립할 때 자신의 생각을 포기한다.

그게 그의 순종이요 믿음이다.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요구하는 믿음은 어떨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이번에 실감했다. 만약 날더러 하나님께서 눈꺼풀을 찌르는 상처를 간직한 채 일생을 살아라 하신다면. 어이쿠, 끔찍하다.

내일은 오늘보다 안 아플 것이란 기대 속에 산다. 의사가 약속한 날이 되면 눈에 어린 핏기도 사라지고 눈을 찌르는 고통도 사라질 것이란 기대에 산다. 당연히 보이는 것도 더 잘 보일 것이란 기대도 한다. 그런데, 그런데.... 그대로 살아라 한다면. 아마 내게 그런 응답은 절망일 게 뻔하다. 가시를 간직한 채 순종한 바울, 위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