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에서 뉴욕으로 돌아온 토요일 저녁, 뉴욕의 퀸즈대학 도서관 강당에서 유가족간담회를 가지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1부에서는 518기념식을 하고 518기념식이 끝난 후 세월호유가족과의 간담회를 한 것이었다. 애초에 뉴욕교민회관에서 하기로 약속된 것이었지만 뉴욕교민회 임원들의 반대로 부득이 장소를 옮겨야 했다.

그런데 그들이 장소사용허가를 번복하며서 한 말이 헛웃음 짓게 만드는 것이었다. “518기념식까지는 할 수 있어도 세월호가족간담회는 안 된다”는 것이며 그 이유가 “세월호가족이 박근혜대통령탄핵의 원흉이기 때문”이란다. 처음 그 말을 건네 들을 때는 언짢았지만 이내 속으로 웃었다. “그래도 알아주긴 하는구만. 허허...”

전후사정을 따지고 보니까 그들의 진단이 틀리진 않는다. 세월호 가족이 광화문 거리에서 싸우지 않았다면, 그들이 촛불을 들지 않았다면 촛불혁명은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세월호 가족 곁에서 촛불을 함께 밝히는 시민들이 한 사람 한사람 늘어나기 시작하고 그들이 밝힌 촛불이 천 수 백 만 개가 되자 불의한 권력자가 자리를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쨌든 미국까지 가서도 태극기부대노릇을 하는 어른들이 있다는 것이 충격적이었고 그들이 좀 안 됐다는 생각을 하였다.

교민회관사용취소 소식은 우리가 부르더호프공동체와 보스턴 여행을 떠나기 전에 전달된 것이었다. 교민회관 사용 거절 소식에 열 받은 김정호목사가 이리저리 전화를 하기도 하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당부했던 말이 인상 깊다. “우리 이럴수록 더 많이 모여야 돼. 총동원합시다.”

퀸즈대학 도서관에 도착하니 먼저 와서 기다리던 후러싱제일교회 목회자들과 교인들, 그리고 시민들이 우리 짐을 차에서 내려주었다. 그런데 우리가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은 중사계급장을 단 군복을 입은 어느 중년이었다. 그를 보자마자 “아니, 교민회관 대여를 취소하더니 이번엔 태극기부대원이 한 명 깽판치러 왔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하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후러싱제일교회의 교인이며 세월호의 아픔에 공감하여 활동도 하는 좋은 분이었다.

518기념식이 시작되었다. 얼추 보아도 300여명은 되는 듯 하였다. 미국 교민사회에서 300명 모이는 것은 대단한 것이다. 뉴저지 쪽에 유학 가 있는 성도 가족이 찾아와 만나느라 518기념식은 제대로 참석하지 못하였지만, 좀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518기념식이 끝나자마자 사람들이 썰물같이 빠져나갔다. 그들은 세월호간담회는 염두에 두지 않고 518기념식을 위해 온 사람들인 듯 하였다. 그들 중에는 총영사 등 정부측 관계자들도 있었고 뉴욕 교민사회에서 한 자리씩 하는 이들도 있었다.

“518기념행사가 시민단체가 주도할 때는 좋았는데 정부가 주도하게 되니까 무슨 학예회 같은 수준으로 떨어졌다”며 아쉬워하던 이들의 말이 귀에 와 닿았다. 내 생각도 그렇다. 관료들이 주도하는 집회들이 다 그런 것 아닌가? 높은 사람 축사하고 격려사 하고 누구누구 소개하고... 그러다보면 알맹이는 어디 가고 없고 껍데기만 남는...

 거의 반에 가까운 사람이 빠져나갔지만 그래도 150명 이상이 남아서 진지하게 이야기를 경청하고 질문하기도 하였다. 유족들과의 간담회에 150명이 넘는 이들이 참석하게 된 것은 총동원령을 내리고 이리저리 오더를 내렸던 김정호목사의 힘의 결과인 것 같다. 간담회를 시작하기 전 검은 옷을 입은 남녀 두 사람이 노래를 불렀다. 주로 남성이 기타를 치고 여성이 노래를 불렀는데 모두 세월호와 관련하여 슬픔과 희망을 노래하는 노래였다. 그런데 기타를 치는 남성이 눈에 익었다. 뉴욕에 도착한 첫 날 우리에게 점심을 대접하여 주었던 ‘이민자보호교회’의 멤버 중의 한 사람인 어느 변호사였다.(이름을 기록하지 않아서ㅠㅠ) 두 사람의 음악실력이 프로급이었다. 세월호유족들을 위해 정성스레 음악을 준비하여 들려 준 그들의 모습 자체가 감동이었다.

이 날 간담회는 미국에서 하였던 4차례의 간담회 중에 제일 많이 모인 간담회였다. 그러나 간담회 내내 마음이 무거웠던 것은 간담회 시작 전 시찬이 아빠가 911 차를 타고 응급실행을 했기 때문이었다. 시찬이아빠는 병원에 가지 않고 간담회에 참석하겠다고 고집을 부렸지만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헐떡거리는 그를 그대로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미국에 도착한 다음날 방문하였던 911메모리얼뮤지엄을 다녀오면서부터 시찬이 아빠의 컨디션이 눈에 띄도록 나빠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가 급기야는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고 만 것이다.

아마 911메모리얼뮤지엄을 관람하면서 느꼈던 충격과 세월호에서 죽어간 아이들 생각에서 오는 트라우마가 겹치면서 그것이 숨을 쉴 수 없는 고통으로 다가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뉴욕간담회 날 저녁부터 우리가 필라델피아와 워싱턴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기 전 날까지 꼬박 3일 동안 시찬이아빠는 뉴욕의 Presbyterian Hospital에 입원하여 있었다. 그 3일 동안 후러싱제일교회의 부목사들과 뉴욕의 세사모회원들이 시찬이아빠를 정성껏 돌보아 주었다. 세사모회원들은 당번을 정하여 돌아가며 하루 24시간 내내 시찬이아빠의 병상을 지켜주었다.

그들 중의 한 분인 서상희님이 몇 주전 한국에 다니러 왔다가 416희망목공방에 들렸다. 시찬이아빠가 건강해졌는지 염려가 되어서 만나러 왔다고 하였다. 시찬이아빠를 위해 도와주신 잊지 못할 분이 또 있다. UMC뉴욕한인여선교회 회장 김순덕님의 남편이기도 한 내과의사 Doctor Choi이다.

911메모리얼뮤지엄을 다녀온 날 저녁, 갑자기 시찬이아빠의 몸에 이상이 왔을 때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그것도 저녁식사를 한 후인 늦은 시각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였다. 김정호목사가 “내가 연락해 볼 사람이 있다”며 누구에겐가 전화를 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를 병원으로 데려다 주었다. 거기에 Doctor Choi가 와 있었다. 자신도 내과의사이고 그 병원 의사들과도 아는 사이이지만 전혀 진료에 간섭하지 않고 밖에서 한참을 기다려주었다. 그리고 간담회장소에서 시찬이아빠가 병원으로 실려갈 때도 권면해 주었고 입원해 있는 동안에도 관심 가지고 돌봐주었다. 시찬이아빠의 입원은 본인 뿐 아니라 우리 일행 모두의 고통이었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 가운데서도 이렇게 사람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동포들을 만나게 된 것이 우리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되었다.

같은 뉴욕 하늘아래 사는 동포들 가운데에도 “세월호유족은 박근혜대통령 탄핵 원흉”이라며 상처받은 이들에게 소금을 뿌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자기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몸이 아파 고통스러워하는 이를 극진히 돌보아 줌으로써 육체의 아픔보다 더 큰 위로를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가 사는 사회가 다 그런 것인가?

그리고 또 한 가지 고마웠던 것이 있다. 그것은 병원비와 관련한 것이다. 미국 병원의 응급실에 실려 갔으니 기본이 2만불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게다가 3일을 입원했으니 청구금액은 몇 만 불이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여행자보험에서 해 주는 것이 최대 2000만원이라고 하니 나머지 차액을 어떻게 할까를 서로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나 왠지 나는 그 부분은 염려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뭔가 길이 있을 겁니다. 걱정하지 맙시다.” 하고 말하고 나서는 나도 모르게 걱정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결과는 해피앤딩이었다. 후러싱제일교회의 부목사들이 병원에 드나들면서 병원의 사회복지사와 연결해 주고 통역을 도와 주었다.

사회복지사:“직업이 무엇입니까?”
시찬아빠:“없습니다”
사회복지사:“월 수입이 얼맙니까?”
시찬아빠:“지난 4년 동안 하나도 없습니다.”
사회복지사:“그러면 무엇으로 생활합니까?”
시찬아빠:“형제들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사회복지사:“아 그래요? 여기 사인하세요.”...

시찬이 아빠는 복지사가 내민 서류에 사인을 하고 퇴원하였다. 그 병원에 적립되어 있는 fund에서 시찬이아빠 병원비를 지원한다고 하였다. 미국인도 아닌 한국인 여행객에게 수만 불의 입원비를 지원해 준 미국 병원. 한국에서는 돈 없으면 입원 자체가 불가능한데, 그 나라는 돈 없는 사람도 살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