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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사회 중심되고 모범 되어야일제강점기 구국운동과 선교 얼이 담긴 봉화 척곡교회를 찾아서
류기석  |  yoogise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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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년 08월 15일 (수) 00:38:30
최종편집 : 2018년 08월 17일 (금) 15:01:21 [조회수 :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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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가 8.15 광복 73주년, 3.1독립만세운동 99주년 그리고 일제에 주권을 빼앗긴 경술국치일(1910년 8월 29일) 108주기가 되는 해이지만 아직까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에 대한 관심과 명예회복이 절실하다.

특히 1907년 대한제국 시절 일본의 탄압이 강화되자 영양군에 갖고 있던 토지를 팔아 봉화군에 척곡교회를 세우고 항일운동 자금을 모으는가 하면 산골오지에 기숙형 대안학교를 세워 참 교육에 힘쓰면서 비밀리에 독립운동가를 길러낸 현 척곡교회 김영성장로의 조부인 고 김종숙님(이하 김종숙)에 대한 이야기는 ‘교회는 사회의 중심이 되고 모범이 되어야함’을 실천적으로 증언하는 중요한 사례다.

   
▲ 111년 전 일제강점기 선교와 독립운동의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봉화 척곡교회 전경

지난 7월21일(토요일)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태백산 깊고 깊은 골짜기에서 발원한 운곡천 맑은 냇가에서 봉화 춘양면 소로리의 마을이장을 중심으로 마을자치회가 주관하는 강변축제가 열리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이장님의 초청으로 뜨거운 태양아래에서 펼쳐진 강변축제장을 찾아 주민들이 정성을 모아 준비한 매운탕과 여러 음식들을 대하며 성공적인 주민화합의 장이 되기를 기원하면서 서둘러 111년 전 일제강점기 선교와 독립운동의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척곡교회를 찾았다.

 
▲ 봉화 춘양면 소로리의 마을이장을 중심으로 마을자치회가 주관하는 운곡천 강변축제현장

 

   
▲ 봉화 춘양면 소로리의 마을이장을 중심으로 마을자치회가 주관하는 강변축제현장

법전면소재지에서 양촌마을 사미정로를 통해 중간들, 달밭들, 건문골(옛 건명동)길을 따라 옷밭골로 들어서니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제257호인 척곡교회가 마을과 조금 떨어진 산중턱에 명동서숙과 종탑을 품고 자리하고 있었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이 외교권을 빼앗겨 앞날이 어두웠던 시절, 덕수궁에서 고종황제를 모신 고 김종숙(현 김영성 장로의 조부)은 새문안교회에서 언더우드 선교사 강도에 감명을 받아 탁지부 관직을 사임하고 곧장 부인의 고향인 법전 양지마을에 정착 동생 김종옥과 처남 석태산 그리고 부호 최재구와 문촌교회 장복유를 만나 1907년 척곡교회 예배당과 기숙형 대안학교인 명동서숙을 세워 종교 교육은 물론 역사, 국어, 수학, 한문 등을 가르치며 사회선교 실천의 장으로 만들었다.

   
▲ 기숙형 대안학교인 명동서숙 앞에서 김영성 장로가 척곡교회에 대한 설명을 자세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고 김종숙은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투옥됐고, 그의 동생인 김종옥은 독립군 자금을 모아 만주의 용정 쪽으로 송금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1910년 경술국치일이 되고부터는 일제의 억압이 심해져서 만주에서 은둔 생활을 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의병대활동으로 항상 감시 대상이 된 김종옥은 만주 명동으로 도피하고 당시 함께 했던 김명립, 정재홍, 정용선 등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고 한다.

한편 김종숙은 신사참배 거부로 투옥되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1921년 미 북장로회 선교사 안대선(Anderson)의 참석으로 김종숙의 아들 김운학(현 김종성 장로의 부)에 의해 모범적인 한국최초 면려회가 조직되는 등 유지되다가 명동서숙은 1942년 폐쇄되고 교회도 위축되었다고 한다.

당시 불교와 유교가 성행했던 이곳에 개인의 선구적인 의지에 따라 설립된 척곡교회는 종교건축물로 건축적, 종교사적뿐만 아니라 향토사적으로 중요하고, 사학 명동서숙(明洞書塾) 또한 일제강점기 초기 초가로 건축된 소규모 교육시설로 역사적 의미가 크며, 그 당시 깊은 산골에 기숙사까지 갖추었으니 놀라울 따름이다.

   
▲ 봉화 척곡교회를 함께 동행한 사랑방교회 김영식 장로부부(오른쪽과 왼쪽)와 김영성 장로(가운데)가 예배당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담다.

당시 지역민들이 명동서숙에서 공부를 해서 명동은 언제나 활기가 넘쳤다고 전한다. 이곳은 물이 단아하고 들이 한건하여 건명동(乾明洞)이라 불리었으나 현재는 건문골로 불린다. 명동서숙은 6칸 초가로 1칸은 여학생 기숙사, 나머지 5칸은 교실로 사용하였다.

봉화산골 깊숙이 묻혀 역사 속으로 사라져 구전으로 전해질 번한 이곳 척곡교회를 다시금 일으켜 세운 장본인은 조부 김종숙의 손자인 김영성(94세) 장로와 안난희(89세) 권사다. 16년 전 인천의 한 여자고등학교 교장으로 봉직하다가 은퇴 후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부부는 억지로 봉화에 내려와 척곡교회를 찾았을 땐 마치 폐가처럼 잡초가 무성하고 교회 물품들은 정리되지 않은 채 나뒹굴고 있었다고 한다.

   
▲ 봉화 척곡교회를 함께 동행한 사랑방교회 김영식 장로부부(오른쪽)와 김영성 장로부부(왼쪽)가 정겨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후 교회를 정리하면서 ‘100년이 넘은 역사의 척곡교회를 문화재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일제강점기 당시 독립군들의 자금을 대주고 피난처 역할을 했던 민족교회인 척곡교회를 지속가능하게 보존할 수 있도록 문화재로 등록했고, 앞으로 남은 사명은 담임 교역자를 청빙하는 일이라고 귀뜸한다. 그리고 아직까지 목회자를 모실 사례비나 사택 등이 마련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최근 노회 소속 여 전도사가 담임 교역자로 부임하여 열심히 교회와 시골 아이들을 섬겨주니 기쁘다고 했다.

부인 안난희 권사는 내조를 통해 김 장로의 사역을 돕고 있지만 2년 전부터 허리가 굽어 의자에 앉기도 힘든 상태이지만 이 또한 하나님의 계획하심이라고 생각하며 사명을 열심히 감당하고 있었다. 척곡교회에는 현재 김영성 장로 부부를 포함해 총 다섯 가정이 출석하고 있다. 점점 나이가 많은 성도들이 세상을 등지다보니 교회는 활기를 잃고 있었다. 하지만 성도들의 자녀들이 교회에 희망을 주고 있다는 소식에 기뻤다.

김영성 장로를 따라 척곡교회 예배당에 들러 기도하고, 원형대로 잘 보존된 내부의 강단과 아치형 나무 장식 그리고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상량문(새로 짓거나 고친(重修 또는 重建) 집의 내력, 공역(工役) 일시 등을 적어둔 글)을 접하니 감개가 무량했다.

   
▲ 봉화 척곡교회 예배당, 김영성 장로가 피아노를 치면서 손수 작곡한 춘양전을 불러주었다.

예배당은 9칸 정방형 기와집으로 지어졌고, 좌우 남녀 출입문이 있고, 예배당 내에서는 가림막으로 구분하여 예배드렸다고 한다. 예배당 주변은 담으로 둘러싸여 신성시되었고, 그와 함께 6칸 초가로 명동서숙이 건립되었다. 원래 정면 3간, 측면 3간의 정방형 건물이었으나, 1990년에 앞쪽에 현관을 만들면서 붉은 벽돌로 증축된 것을 최근에 다시 복원했다.

김영성 장로는 후손들에게 올바른 역사 인식을 심어주고자 ‘나라 사랑 음악의 밤’ 행사도 매년 개최하는데 올해가 4회째란다. 이어 손수 작곡한 춘양전 노래를 피아노를 통해 들려주고는 절실한 소망은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온 지 23년밖에 안 된 그 시절에 세워진 척곡교회가 오래도록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을 간절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 옛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척곡교회 종탑

그의 마지막 바람은 교회 개척자이자 독립운동가였던 할아버지와 신앙 선열들의 역사를 담은 기념관을 세우는 것과 일제강점기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 봉화경찰서장 앞에서도 주먹으로 책상을 치면서 소신을 굽히지 않아 구속됐다가 해방 후에야 풀려났던 독립운동가 할아버지의 국가유공이 인증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명동서숙에는 한국 교회사의 귀중한 사료로 평가받는 척곡교회 초기 세례인명부와 당회록이 남아있고 현재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257호, 경상북도 지방문화재 문화재자료 제590호,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등록문화재 제1호,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사적 제3호 등으로 지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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