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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엄마아빠들과 함께한 11일 여행(6) "오! 이런 사람들이 있다니!"
박인환  |  gojumo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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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년 08월 02일 (목) 00:38:22
최종편집 : 2018년 08월 07일 (화) 01:15:18 [조회수 : 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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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여섯 번 째 이야기(5월 11일/금-12일/토) - 오! 이런 사람들이 있다니!

 

노회찬의원의 갑작스런 죽음 소식에 충격을 받아 지난주에 써야 할 여행기를 오늘에야 겨우 쓴다. 의롭고 선한 사람이 갔다. 약한 자의 벗이 되어주려 하고 사회의 정의를 위해 헌신하였던 그는 탁월한 사람이었다. 우리나라가 그런 사람을 언제 또 가져 볼 수 있을까? 노의원의 죽음소식을 듣고 갑자기 ‘아무도 미워하지 않은 자의 죽음’(잉게 숄)이라는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어 교회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다. 나찌 히틀러에 대항하여 싸우다 체포되어 사형당한 백장미 단의 대학생들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책 프롤로그에서 잉게 숄은 “그들은 대단한 영웅들이 아니었다. 단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말하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고 말했다.

5월 11일 금요일, 김찬국목사 내외가 뉴욕의 부루더호프공동체까지 우리를 태우러 와서 점심 식사 후에 보스턴으로 데려가 주었다. 거기에서 ‘매우 평범한, 그러나 결코 영웅이 아닐 수 없는 목사들과 시민들을 만나게 되었다. 오!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있다니!

저녁 6시가 넘어 도착한 보스턴의 UMC한인비전교회(홍정욱목사)에는 그 지역의 감리사인 장위현목사와 몇 몇 목사들, 그리고 시민들이 미리 와 있다가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200년이 넘은 UMC 교회를 한인교회가 share하는 형편이었다. 한국보다 더 답답한 사람이 많다는 미국교회에서 세월호 간담회를 위해 장소를 제공하는 것이 목회적으로 위험(?)할 수 도 있을텐데, 선의로 교회를 집회장소로 내어 준 홍목사가 고마웠다.

장위현감리사는 고 장기천감독의 아드님이다. 장위현목사를 처음 본 것은 장기천감독의 장례식 때 장목사가 유족을 대표해서 인사하는 모습이었다. 그 때 절제된 언어로 간결하게 인사하는 것을 보면서 무게감이 있는 목사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보스턴에서는 그가 호스트가 되어 나와 세월호 엄마.아빠들을 선대하였다. 1박 2일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가 지역목사들과 일을 만들어 가는 과정, 세월호유족들과의 간담회와 예배를 통해서 보여준 리더십을 보면서 “과연 호랑이 새끼는 호랑이다”라는 생각을 하였다. 한국감리교회에서 존경받는 마지막 몇 어른 중의 한 분이었다고 평가되는 장감독님의 뒤를 아드님이 잘 잇고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비전교회가 준비한 비빔밥은 지난 며칠간 빵과 고기만 먹느라고 고통당한(?) 세월호 엄마.아빠들에게는 은혜의 단비와 같은 것이었다. 세월호유족들과의 간담회와 예배를 위하여 100여 명이 모였다. 우리가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에 놀랐다. 목사와 교인들도 있었지만, 보스턴 지역의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심지어 어느 후배목사는 4시간 반을 운전하여 왔고, 그 다음 날 아침 장례식이 있다고 하면서 예배가 끝나자마자 교회로 돌아갔다. 차 운전만 왕복 9시간. 아마 그 다음날 새벽에 도착하여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장례식을 집례 하였을 것이다. 미안하고 고맙다. 모두 진지하게 유족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눈물을 흘렸다. 유족들은 한국에서의 어떤 간담회보다도 진지하고 자기들에게 위로가 되는 간담회였다고 말하였다.

 

   
 
   
 
   
   
   
 

 

   
 
   
 
   
 

 

유족 간담회에 이어 세월호를 기억하는 예배를 함께 드렸다. 보스턴 지역의 목회자들이 참으로 정성스럽게 준비한 예배였다. 설교는 내가 하였는데, 세월호4주기 기억예배 때에 설교(‘기억’)를 조금 줄여서 하였다. 예배가 끝난 후 몇 몇 분이 “설교에 감동받았다”고 인사했지만 정작 감동을 받은 사람은 나였다. 간담회와 예배시간에 어찌 그리 진지하게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집중하는지... 내 앞의 사람들 모두가 한국인이었지만, 한국에 사는 한국사람들과는 다른 한국사람들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담회와 예배를 인도한 이는 안신영목사이다. 미국에 가기 전, “장위현감리사의 위임을 받아 세월호유족 간담회와 예배를 준비하고 있는 안신영목사” 라며 준비와 관련한 몇 가지를 전화로 물어왔던 분이다.(한국에서 서강대인가 연세대인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된 분이다) 그 때는 “아, 보스턴 집회를 준비하는 목사님이구나”라고만 생각하였다. 그러나 만나는 순간부터 안목사는 나를 놀라게 하였다. 우선 얼굴생김새가 감리교신학대학 교수로 은퇴한 우리 동기이며 형님뻘인 송순재목사와 많이 닮았고 심지어 목소리까지 비슷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하기야 한 핏줄 한 겨레이다 보니 닮은 사람도 있겠지.

정작 더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그가 지난 4년 동안 해왔던 일들 때문이다. 안목사는 보스턴 시내에서 홈리스 사역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 이후 지난 4년 동안은 매 주 화요일, 홈리스 사역을 마친 후에는 하바드스퀘어(하바드대 정문 앞 버스 스탑 부근)에서 1인 시위를 해왔다는 것이다. “세월호를 인양하라” “진실을 인양하라”... 1인 시위라고는 세월호 유족들이 제일 힘들었던 2014년 6월 어느 날, 광화문에서 단 몇 시간 한 경험 밖에 없는 내게는 충격적인 얘기였다. 대한민국의, 안산의, 그리고 희생자가 있는 교회의 목사인 나 한 사람이 몇 시간 동안 1인 시위를 했다고 해서 특별하다는 눈길을 받았다. 그런데 그는 먼 나라 미국에서, 지나다니는 사람들 대다수가 미국인인 하바드대학교 앞에서 4년 넘도록 그런 시위를 했다니 아파하는 자들에 대한 그의 공감능력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으며 그의 용기는 어디에서 나왔단 말인가.

며칠 전, 보스턴집회에 참석해서 몇 마디 발언도 하였던 보스톤 세사모의 이금주선생이(나중에 알고보니 이 분은 하바드대 출신이다) 한국에 왔다가 세월호 목공방을 방문했던 길에 좋은 소식을 전하여 주었다. 자기도 지난 4년 동안 세월호를 위한 1인 시위를 해왔는데, 보스턴 집회에서 안목사님을 처음 만나게 되어 각 자 다른 곳에서 하던 시위를 한 곳에서 하게 되었고 현장에 모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세월호가족들의 보스턴 방문이 그곳에서 활동하는 분들을 하나로 연대하는 계기를 마련해준 것 같아 기뻤다.

 

   
 
   
 
   
 
   
 
   
 
   
   
 
     
 
   
 
   
 

 

   
 
   
 

 

예배가 끝난 후에는 우리가 만들어 간 나무볼펜을 판매하고, ‘416기억독서대 9개를 전시하였다. 내가 정성껏 만든 7개의 독서대에는 동행한 엄마.아빠들의 아이들 7명의 이름을 붙였고, 민정이 아빠가 만든 두 개의 독서대에는 예은이와 순영이의 이름을 붙였다. 각 독서대에는 아이들에게 보내는 엄마나 아빠, 또는 형제자매의 편지를 게시하였다. 편지를 읽어보니 또 다시 마음이 아팠다. 예배에 참석했던 이들이 독서대에 게시한 편지를 찬찬이 읽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심지어 초등학생 또래의 아이들 몇 명도 진지하게 편지를 읽는 것을 보았다.

 

   
 
   
 

 

   
 
   
 
   
 
   
 
   
 
   
 

 

보스턴지역의 목사들이 보스턴지역의 UMC 수련원 중의 한 곳인 Rolling Ridge에 숙소를 마련해 주었다. 어느 부자가 죽으면서 교회에 기증한 거대한 저택을 수련원으로 만든 것인데 굳이 고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웬만한 호텔보다 숙박비가 비싼 멋진 수련원에서 하루를 묵을 수 있게 해 준 UMC한인목사들의 배려가 눈물겹다.

좋은 집에서 잠을 자서인지 토요일 아침 일찍 깨어보니 몸도 마음도 상쾌하였다. 아침 일찍 세월호 유족들을 찾아오신 박기식선생의 부인(네 번 째 이야기에서 언급)이 우리에게 놀람과 감동을 주셨다. 아침식사를 일찍 하고 장위현 감리사의 안내로 보스톤 짧은 투어를 하였다. 하버드대를 갔다 왔다. 엄마.아빠들은 “우리 하버드대 들어갔다가 나온거야” 하면서 서로 농담도 주고받았다. 그러나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얼마나 마음이 힘들까. 지금쯤 대학생이 되어 즐겁게 자기의 꿈을 펼쳐가야 할 아이들이 없는데... 동행한 세월호 유족 중에는 하나 밖에 없던 아이를 잃은 이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세월호 엄마.아빠들도, 목사 둘도 한 사람도 슬퍼하는 기색 없이, 즐거운 모습으로 하바드대를 견학하였다. 겉으로는 그랬단 말이다.ㅠㅠ

점심식사를 위해 안내된 곳은 전 날 집회를 인도하였던 안신영목사의 누이동생이 운영하는 고급 일식집이었다. 풀 코스 요리를 멋지게 차려놓은 것이 대단하였고, 사장님 뿐 아니라 모든 종업원들의 머리와 가슴에 세월호 노란리본을 달고 정성껏 대접하는 것이 내 눈엔 감동 그 자체였다. 음식을 배불리 먹은 후에도 무언가 좀 더 주고 싶어 하는 여사장님께 세월호 엄마.아빠들은 목공방에서 만들어 간 나무 볼펜을 두 개 선물하였다. 전 날에는 안신영목사가 세월호 가족을 영적으로 극진하게 대접하더니 그 다음 날에는 그의 누이가 일용할 양식을 배부르게 대접하여 주었다.

 

점심을 먹고 다시 뉴욕 후러싱제일교회로 돌아가는 시간이 되었다. 장위현감리사가 “안신영목사가 지나가는 길에 자기네 교회 잠깐 지나쳐가면 어떻겠느냐”는 연락을 해왔다고 하였다. 안목사의 교회(웨슬리연합감리교회)는 보스톤에서 뉴욕으로 가다보면 그 앞을 지나치게 되는 곳에 위치해 있다. 안목사가 자기 교회 앞으로 지나가라고(시간 촉박하면 차에서 내리지는 말고) 한 것은 그가 학생들과 설치한 노란리본을 보여주고 싶은 뜻이었다. 세월호 참사 직후 교회 건너편에 있는 교회 주차장에 학생들과 함께 세월호 희생자 304명의 이름을 노란 헝겊에 써서 걸어두었다는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에서 한 일이라고 하였다.

교회에 도착해서 건너편을 보니 과연 노란리본 수백개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모두가 건너가서 이름을 찾기 시작하였다. 엄마.아빠들은 자기 저마다 아이의 이름을 찾기에 바빴다. 수연이 아빠는 자기 딸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자 안목사가 당황하면서 “제가 그 아이 이름도 기억하는데, 분명히 썼는데 혹시 너무 오래되어서 바람에 날아갔는지 모르겠네요” 하면서 얼른 교회로 건너가더니 수연이 이름을 써가지고 왔다. 그러나 세월호 엄마.아빠들이 힘을 합하여 이미 수연이 이름이 적힌 리본을 찾아낸 후였다. 그 순간 안도하는 안목사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나도 열심히 아이들의 이름을 찾았다. 우리교회의 예은이와 창현이, 지성이... 몇 명의 이름을 찾고 사진을 찍었다. 그러면서 “나도 편파적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어쩔 수 없지 뭐.

 

   
 
   

 

   
 
   
 
   
 

 

아이들의 이름이 적힌 노란리본이 보스톤의 한 거리에서 나부끼고 있는 모습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듯하였다. 뉴욕으로 가기 위해 차를 타기 직전, 장감리사가 “보스턴 UMC 한인목사들이 모금한 것”이라며 거금 1,000불을 건네주었다. 미국에서의 목회생활이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할 텐데 보스턴에서의 1박 2일간 우리일행은 돈 한 푼 못쓰게 하고 모든 경비를 지불해 준 것도 모자라 성금까지 모아주다니... 도대체 보스톤 목사들의 배려와 선의의 끝은 어디란 말인가? 나 자신 목사이면서도 지난 몇 년 간 목사들에 대한 실망감을 가지고 살아왔는데, 이번 보스턴 방문으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아직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000명’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기 때문이다. 감히 그들을 평가한다면 ‘지극히 상식적이면서 기본기가 충실한 사람들’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상식과 기본기에 충실한 그들이야 말로 상처받은 사람, 애통하는 사람들에게 치유를 가져다 주는 위대한 영웅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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