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간도 안녕하셨습니까? 저희 집은 두 아이가 방학을 시작했고 날이 덥다보니 바깥놀이를 하고 땀이 나면 하루에도 여러 번 옷을 갈아입는 통에 세탁기가 바쁩니다. 비가 오지 않고 날이 더워 농사짓는 교인들은 근심이지만 저는 진부령으로 이사를 와서 올해처럼 빨래 말리기 좋은 여름이 없었기에 따갑게 비치는 햇살이 싫지만은 않습니다. 매해 여름마다 구름이 끼고 비가 계속 내려 빨래를 할 수 없는 것이 아쉬움이었습니다.

   날이 더워도 몸을 움직이는 놀이를 좋아하는 작은아이는 아빠의 체력은 고려하지 않고 계속 마당에서 야구며 축구를 하자고 합니다. 30분만 뛰면 땀으로 범벅이 되어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다시 나가서 놉니다. 마을에서는 더위가 심한 시간대에 바깥 활동을 자제하라고 안내방송이 나오지만 어른들의 염려도 아이들의 놀이욕구를 이기지 못합니다.

   지난 주일은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인 청소년의 생일이었습니다. 다들 모르고 지나갈 뻔 했지만 또래 청소년이 먼저 알고 다른 교인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군인들이 기지를 발휘해 초코파이를 쌓아 생일 케이크를 만들어 축하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오후 예배가 끝난 후 청소년 아이들은 교회에 남아 영화를 보고 간식을 먹으며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간식은 주문한 치킨과 교회에서 구운 냉동피자였습니다. 이전에는 간식으로 치킨을 먹고 싶어도 한 마리만 주문을 해서는 배달을 오지 않아 항상 가지러 가야 했는데 올해는 저희 마을 안에 치킨을 만들어서 파는 가게가 생겼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농사일에 바빠 참을 챙기기 어려울 때, 이주노동자들의 간식이 필요할 때 마음 편히 주문할 수 있는 곳이 생긴 것이지요. 저희도 마을 가게의 수익에 일조하기 위해 치킨을 주문하고 배달을 요청하였습니다. 도시에서는 여기저기 치킨집이 있지만 저희는 군을 벗어나 치킨을 사와야 하는 형편이다 보니 마을 안의 치킨가게 개업은 그야말로 대혁명입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어린 시절에 다니러가던 외가도 지금 저희 마을과 비슷했습니다. 외가가 있는 마을의 한 가정집에서 과자류 일부와 간단한 약품 정도를 팔았지만 농사일이 바쁠 때는 주인이 문을 닫고 일을 하러 나가는 통에 가게는 있으나 사서 먹을 수 없는 때가 많았습니다. 배달음식은 당연히 없었습니다. 지금은 음식 배달이 일반화되었지만 20년 전 정도로만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아도 배달음식은 자장면 정도였습니다. 당시의 저도 지금의 저희 아이들처럼 돌아서면 배가 고팠는데 반조리 식품이나 배달음식이 없었기에 외가에 갈 때면 외할머니가 부쳐주시는 배추전이나 찐 감자, 군고구마 등으로 배를 채웠습니다.

   방학마다 찾아가서 한 달씩 머물며 집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외손들에게 싫은 소리를 한 번 안하셨던 외할머니가 근래 며칠 무척 많이 생각이 납니다. 여름에 외가에 가면 외할머니는 포도농장에서 손을 털며 저희를 맞이하셨습니다. 그러면 저와 언니들은 외할머니께서 갓 따오신 포도를 물에 씻어서 배가 부를 때까지 먹었습니다. 겨울에는 신정과 구정을 지낸 후의 전과 과일, 생선 등 명절음식이 많았는데 그 중 제가 가장 좋아했던 음식은 각종 전을 넣어 고추장찌개를 끓인 것이었습니다. 찌개 안에서 반쯤 허물어진 전을 건져내서 밥 위에 얹고 쓱쓱 비벼 먹으면 고소한 기름 맛이 입에 돌았습니다.

   글을 쓰면서도 입 안에 군침이 돕니다. 웃는 얼굴로 맞아주시던 외할머니는 어린 외손들의 안식처였습니다. 외할머니는 재작년 소천 하셨지만 제가 원할 때마다 제 삶에 다시 나타나 제가 ‘충분히 사랑받는 외손’이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십니다. 외가로 가는 버스에서 하차하여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했던 시골 외길과 외가에 다다랐음을 알려주는 마을 당산나무, 그리고 파란 대문이 눈앞에 선합니다. 당시 아직은 한창 일해야 하는 나이였음에도 외할머니는 저희에게 충분한 시간과 사랑을 할애하셨습니다. 반면 저는 성인이 되어 외가를 찾을 때마다 바쁘다는 핑계로 외할머니와 단 하룻밤도 함께 보내지 않았습니다.

   이제 내일부터 한 달간 저는 육아휴직으로 아이들과 시간을 보냅니다. 엄마를 그리워하는 아이들을 위해 육아휴직을 신청하였고 업무공백을 길게 둘 수 없어 한 달만 쉬기로 하였습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저에게도 방학입니다. 이 방학에는 외가에도 다녀오려고 합니다. 외할머니는 계시지 않지만 언제나 한없는 포근함으로 저를 맞아주던 그 공간에서 하룻밤 자고 오고 싶습니다. 외할머니의 육체는 이미 죽음을 맞이하고 자연의 일부로 돌아갔지만, 정신은 저의 기억 속에서 면면히 이어져 가고 또한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가 영원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 받은 사랑을 기억하며 썩어질 것에 천착하지 말고 영원을 살아갈 준비를 해나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