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 > 황광민 목사의 설교노트
경건을 연습하라
황광민  |  seokkyo@korea.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18년 07월 28일 (토) 20:52:02 [조회수 : 4841]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디모데전서 4장 6-10절

경건을 연습하라

 

가. 경건에 이르도록 연단해야 한다.

7절,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 본문은 경건에 이르도록 자신을 연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이다. 그리고 이것이 사람을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으로 양육하는 길이라는 말씀이다.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6절a). 이처럼 예수님을 닮는 경건훈련이 필요하다.

* 여기에서 ‘경건’(유세베이아)은 ‘잘하다’(유)와 ‘경의를 표하다’(세보마이)에서 유래한 말이다. 즉 경건은 하나님을 존중하고 경외하는 표현을 잘하는 것을 말한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존중하고 높여드리는 것이 기본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경의를 잘 표현하는 사람이 성숙한 성도다.

* 그런데 경건을 위해 자신을 연단해야 한다. 예수님을 모델로 삼고 연습해야 한다. 여기서 ‘연단하다’(귐나조)는 ‘훈련하다’ 또는 ‘옷을 벗고 운동하다’라는 뜻이다. 육신의 정욕과 세상의 악한 풍조를 극복하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려면 철저한 자기훈련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바울은 자신을 쳐서 복종하게 만들기 위해 철저하게 훈련한다고 하였다(고전9:27).

 

나. 경건은 단순히 이야기 거리가 아니다.

7절a,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 그런데 경건은 단순히 이야기 거리가 아니다. 경건은 실천하는 행동이다. 바울은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라고 하였다. 여기서 ‘망령되고’(베벨로스)는 ‘속된’이고, ‘허탄한’(그라오데스)은 ‘늙은 여자가 하듯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신화’(뮈도스)는 ‘이야기’다. 즉 쓸데없는 이야기로 소일하는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경건을 이야기 거리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다.

* 또한 바울은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라고 경계한 바 있다(딤전1:4). 이런 것들은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기보다 변론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보았다. 경건은 이야기 거리나 교리적 논쟁이 아니다. 경건은 실천적인 것이므로 예수님을 닮기 위한 구체적인 연단이 필요하다.

* 야고보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이라”고 하였다(약1:27). 즉 참된 경건은 하나님 편에 서서 속된 것은 거부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다. 모든 소망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두라.

10절,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 경건은 하나님께 소망을 둔 사람들의 생활양식이다. 그러므로 경건훈련을 잘하려면 모든 소망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두어야 한다. 세속에 소망을 두면 기복신앙에 빠지게 된다. 소망을 하나님께 두어야 경건하고 신령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소망을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하다.

* 신앙생활에서 하나님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어야 한다. 인권운동에서 사람을 수단으로 삼지 말고 목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과 같다. 하나님을 수단으로 삼으면 기복신앙에 빠진다. 하나님을 목적으로 보고 높여야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연합하는 높은 차원의 신앙생활이 된다. 하나님은 모시고 다니며 섬겨야 할 대상이지 데리고 다니다가 필요할 때나 찾는 수단이 아니다.

* 성도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위의 것을 찾아야 한다. 이는 세상의 일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의 일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 성도의 사업, 학생들의 공부, 그리고 모든 사역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리는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

 

라. 경건에는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다.

8절,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 본문은 경건의 연습에는 많은 유익이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육체의 연단에도 유익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경건의 연단에는 육체의 연단을 능가하는 큰 유익이 있다. 육체의 연단에는 금생의 유익이 있지만 경건의 연단에는 금생과 내생에 유익이 있다는 말씀이다.

* 우선 경건에는 내생의 약속이 있다. 하나님은 경건한 성도들에게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는 복을 약속하셨다.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것으로서 피할 수 없다(히9:27). 그러나 두 번째 사망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하나님은 경건한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영생에 들어가게 하신다.

* 또한 경건에는 금생의 약속도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게 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은 그를 높이는 사람은 높여주시고 그를 멸시하는 사람은 멸시하신다. 하나님을 높이는 사람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으며 영광을 누리게 된다.

황광민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13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0 / 최대 22400바이트 (한글 11200자)
- 금지어 사용시 댓글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 [댓글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도배성, 광고성, 허위성 댓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