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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의 나라 아토스 방문기(1) '방문 동기'아토스(Athos) 수도 자치국 방문과 산티아고 순례
강문호  |  mhkang52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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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년 07월 26일 (목) 16:25:23
최종편집 : 2018년 09월 28일 (금) 02:25:52 [조회수 : 5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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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의 나라 아토스 방문기(1)

 아토스(Athos)  수도 자치국 방문과 산티아고 순례
 (1) 방문 동기
 (2) 성 요한 케리아(saint John Kellia) 수도원
 (3) 대 라브라 수도원(Μεγίστη Λαύρα)
 (4) 이비론 수도원(Μεγίστη Ιβήρων)
 (5) 아토스 수도사의 삶
 (6) 아토스 수도사의 영적 에너지
 (7) 한국 봉쇄 수도원의 10가지 숙제
 (8) 산티에고 길의 20가지 영성(1)
 (9) 산티에고 길의 20가지 영성(2)
 (10) 수도원 영성 회복의 과제


아토스(Athos) 수도국 방문 동기

 

 지구상에는 수도사들만 사는 나라가 있습니다. 다른 건물은 없고 수도원만 있는 나라가 있습니다. 감신 송 성진 교수님이 들어가려다가 비자를 받지 못 하였습니다. 지난 7월 3일 이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 나라에 들어 갔다가 22일 돌아 왔습니다. 이 나라는 특이한 나라입니다.

 1. 1200년 동안 남자 수도사만 있습니다. 여자는 한 명도 없습니다.
 2. 태어나는 사람은 한 명도 없고 죽는 사람만 있습니다. 1200년 동안 여자는 들어가지 못 하였습니다.  여자는 수도 동력을 떨어뜨린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결혼식장도 있을 리 없습니다. 여자는 수도사들이 수도의 길을 걷는 데 속도를 느리게 하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3. 수도원과 수도원을 위한 농가만 건축허가가 나옵니다. 대 수도원 20곳, 중 수도원(케리) 12 곳, 작은 수도원(스키티) 300여 곳이 있습니다.
 4. 암 짐승도 못 들어가기에 목축이 없습니다. 그래서 고기가 없습니다. 야채만 먹는 나라입니다.
 5. TV도 없습니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등 교육기관도 없습니다. 오직 수도학교만 있습니다.

   

▲ 수도사 자치국 아토스

 

 나는 금년 11월 봉쇄 수도원으로 들어가기 전에 꼭 가보고 싶었습니다. 내년 연회 은퇴를 앞두고 있습니다.
 내 평생 가장 잘못된 선택은 감독회장 출마 결정이었습니다. 내 생애 가장 잘 한 것이 출마 포기였습니다.
 내 평생에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크게 선물받은 것이 “성막”이었습니다. 성막을 통하여 예루살렘 랍비들을 접하게 되었고, 성경의 맥을 잡게 되었습니다. 4만명 국내 목회자와 교제하게 되고 목사님의 요청으로 책을 118권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무소유로 살았던 저는 성막과 책을 통하여 들어 온 돈을 선교에 투자하여 파나이에 300여 교회를 개척하고 건축하게 되는 기쁨을 주님이 주셨습니다. 지나놓고 보면 모두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내 평생 가장 큰 기쁨은 “수도원 사명”입니다. 내 생애 여행중 가장 보람있었던 여행은 아토스 수도 자치국 방문과 산티아고 길 800 km 순례였습니다.


 아토스  수도 자치국

 지구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는 바티칸입니다. 1,000 명 정도입니다. 로마안에 있습니다. 두 번째 작은 나라는 아토스입니다. 서울의 반 만합니다. 강원도의 50분의 1 정도입니다. 그리스안에 있는 자치국입니다. 그리스는 자기 나라에 소속시키려고 지사를 파송하였지만 허수아비입니다. 수도사들이 자치적으로 운영하고 있고 자치국 헌법을 그리스로부터 1975년에 정식으로 인준받았습니다.

 수도사들이 제일 많을 때는 7,000명까지 있었습니다. 수도원마다 기독교 유물들이 많아서 유네스코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리스 세 반도중 가장 동쪽에 위치합니다.
 길이가 50㎞이고 가로 10.5㎞인 산등성이에 우뚝 솟아 있는 산이 아토스 산입니다. 북쪽에는 숲이 빽빽히 우거져 있습니다. 바다에 접한 남단에서 급한 경사로 솟아 있는 대리석의 아토스 봉(2,033m)이 높이 솟아 있습니다.

 AD 850년 이미 은수사(隱修士)들이 이 산에 살고 있었습니다.
 체계를 갖춘 수도원 생활은 963년에 성 아타나시우스가 비잔틴 제국의 황제인 니케포루스 2세 포카스의 후원을 받아 최초의 수도원인 대(大) 라우라를 세우면서 시작되었습니다.
 11세기에 들어 몇 개의 수도원이 더 세워졌습니다. 러시아를 포함한 여러 슬라브족 국가들의 후원으로 수도원들이 세워짐에 따라 이 반도는 거의 범 정교회적인 성격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1400년경 수도원의 수는 40개 정도로 늘어 났습니다. 그 중 20개가 현재 남아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최근 1542년에 세워진 스타브로니키타 수도원이 있습니다. 내가 보기에 20개 수도원은 각각 건축비 1,000억 이상일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습니다. 입이 벌어질 정도로 큽니다.
 아토스 산을 거룩한 산(Holy Mountain) 즉, "성산"(聖山, 그리스어: Άγιον Όρος, 아키온 오로스)으로  아토스 산에 입장하는 일일 방문객 수는 제한되고 있습니다. 20개의 수도원에는 현재 1,000 명 정도의 수도사들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내가 들어가는 날은 하루에 11명밖에 비자를 주지 않았습니다.

 정교회 신자들은 허가증 발급 절차에서 우선순위를 갖습니다. 동방 정교회의 교인이고 만 18 세 이상인 남자들은 아토스 산에서 수사 또는 노동자로 사는 것이 허용되고 있습니다.

 20개 대수도원

1. 대 라브라 수도원(Μεγίστη Λαύρα)
2. 바토페디 수도원(Βατοπέδ)
3. 이비론 수도원(Ιβήρων)
4. 헬란다리우 수도원(Χιλανδαρίου)
5. 디오니시우 수도원(Διονυσίου)
6. 쿠틀루무시우 수도원(Κουτλουμούσι)
7. 판토크라토로스 수도원(Παντοκράτορος)
8. 크시로포타무 수도원(Ξηροποτάμου)
9. 조그라푸 수도원(Ζωγράφου; Зограф)
10. 도키아리우 수도원(Δοχειαρίου)
11. 카라칼루 수도원(Καρακάλλου)
12. 필로테우 수도원(Φιλοθέου)
13. 시모노스 페트라스 수도원(Σίμωνος Πέτρα)
14. 아기우 파블루 수도원(Αγίου Παύλου)
15. 스타브로니키타 수도원(Σταυρονικήτα)
16. 크세노폰토스 수도원(Ξενοφώντος)
17. 오시우 그리고리우 수도원(Οσίου Γρηγορίου)
18. 에스피그메누 수도원(Εσφιγμένου)
19. 아기우 판텔레이모노스 수도원(Αγίου Παντελεήμονος)
20. 콘스타모니투 수도원(Κωνσταμονίτου)

 

   
▲ 아토스 20대 수도원


 수도원 지역으로 선포

 황제 바실리우스 1세는 885년 금인칙서에서 거룩한 산은 수도원지역으로 선언하였습니다.
 그 후 일반 시민과 농부들 그리고 가축 사육자들은 이 곳에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943년 수도원 땅 경계가 정밀하게 지도로 그려졌습니다.
 958년 수사 아타나시오스 아토니테(Άγιος Αθανάσιος ο Αθωνίτης)가 아토스 산으로 왔습니다.
 962년 그는 카리에스에 "프로타톤"의 중앙 교회를 건축하였습니다.
 963년 그의 친구 황제 니케포루스 포카스의 지원으로 대 라브라를 설립하였습니다. 이 수도원은 지금까지 가장 큰 수도원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후 수 세기 동안 이 곳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들의 보호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엄청난 부와 재산을 축적하였습니다.

 방문을 허락받은 사람은 한 수도원에서만 3일 동안 지낼 수 있습니다. 더 머믈기 원하면 특별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아토스 산은 피난처였습니다.
 14세기 차르 스테판 두샨이 아내 불가리아의 헬레나를 프라하로부터 보호하려고 아토스 산으로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 여자는 한번도 가마에서 내리지 못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땅에서 살면서 그 땅을 밟아 보지 못 하였습니다. 그리스 여왕도 입국이 허락되지 않아서 못 들어갔습니다.


 수도원

 1054년 이후 기독교계의 성지인 신성한 아토스 산은 그리스 정교회의 정신적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결과로 아토스 산은 아토스 산의 식물상(植物相) 뿐 아니라 지중해의 산림을 훌륭하게 보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토스 산은 유산의 자연미와 확장된 형태의 건축 창조물을 결합시킨 독특한 예술적 창조물이 되었습니다. 또한 아토스 산의 수도원들은 대 라브라(Great Lavra) 수도원에 프란고스 카스텔라노스(Frangos Castellanos)가 그린 벽화를 비롯하여 휴대용 성화(icon), 금으로 만든 제의 도구(祭儀道具), 자수 제품(embroidery), 그리고 수도원마다 소중히 보존하고 있는 사본에 이르기까지 모든 걸작들을 모아 놓았으므로 진정한 의미의 보고가 되었습니다. 기독교 유물의 보물 단지입니다. 아토스 산은 그리스 정교회의 정신적 중심으로 종교 건축 및 기념 미술 발전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쳤습니다.

 10세기에 만들어진 원리에 따라 식당, 개인 수도실, 병원, 도서관 등의 공동생활 공간과 예배실, 미사용 분수대 등의 전용 전례(典禮, liturgical) 공간, 그리고 무기고, 망루 등의 방어 시설이 엄격하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작은 수도처(idiorrythmic skites), 대농장(kellia), 독거 수도처(kathismata, 수도사들이 운영하던 농장) 등의 농토 배치 역시 중세 시대의 독특한 특징이 있습니다. 아토스 산은 또한 토속 건축과 농업 및 수공업 전통의 보고입니다.


 아토스에 들어가게 된 동기

 하나님께서 나에게 봉쇄 수도원을 명하셨습니다. 그래서 10월까지 34년 목회하던 자식같은 갈보리교회를 사임하고 11월 첫 주에 들어가려고 준비중입니다.
 수도원을 모를 때 수도원 명령을 받았습니다. 태어나니까 아버지가 감리교 목사였기에 감리교 틀을 벗어나지 못 하고 살아 왔습니다. 수도원을 접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교회 외에 타종교에 가면 큰 일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수도원 명령을 받았기에 수도원을 공부하여야 했습니다.

 1. 서점에 가서 수도원에 대한 책을 모조리 사드리고 읽었습니다.
 2. 기독교 수도원은 물론 천주교 수도원, 정교회 수도원, 불교 수도원, 유대교 수도원을 다니면서 책들을 모조리 싹쓸이하였습니다. 해외 수도원에서는 읽을 수 없는 책도 수도원에 관한 책이라면 구입하였습니다. 그림 하나라도 건지고 싶었습니다.
 3. 북코어 중고 서적 인터넷으로 지금 살 수 없는 고전 책 내놓은 것들을 모두 사드렸습니다. 1만원 짜리 책을 2000원에 사기도 하였지만 6천원짜리 책을 6만원에 사기도 하였습니다.
 4. 수도원을 하다가 실패하였다는 분을 찾아가서 실패담을 들으면서 그가 가지고 있는 책을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이렇게 모은 책이 400여권이었습니다. 다 읽고 정리하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화순에 천주교 신부 생활을 하다가 목사가 된 정 훈섭 목사님께서 책을 소개하여 주었습니다.

향기로운 삶과 말씀”(정교회의 영적 아버지 뽀르피리오스(saint Pophyrios. 성인 자서전) 백 은영 역. 정교회출판사  2014.08.06.


 당장 사서 읽었습니다. 수도사만 사는 나라 아토스 성산에서 수도하다가 1991년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성자입니다.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400여권 중에 최고 감동이었습니다. 150만원 정도 들여서 50권을 사서 수도원의 영을 심고 싶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가 아토스 성산에서 수도한 이야기를 고백하고 있는 책인 데 엄청난 은혜를 받았습니다. 갑자기 수도사만 사는 나라인 아토스에 가보고 싶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나라인가?” 한국 정교회 수도원을 찾았습니다. 가평에 주현모 정교회 수도원이 포착되었습니다. 전화를 걸었습니다. 여자 수녀가 받았습니다.
“방문하고 싶어요.”
“누구 신가요?”
“감리교 목사입니다.”“감리교 목사 환영하지 않습니다.”
“저 뽀르피리오스를 너무나 존경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 분을 알아요?”
“향기로운 삶과 말씀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 내가 번역하였습니다.”
“그래요? 50권 사서 나누어 주었어요.” 이 말에 그는 벼락처럼 저와 하나가 되는 듯 하였습니다.
“목사님! 오세요.”

 이렇게 허락을 받고 날자를 잡았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수도원 91 곳을 방문하고 수도학교를 만들었습니다. 2년제 학교입니다. 1기 23명, 2기 20명입니다. 이들을 인솔하고 가평 수도원을 방문하였습니다.
 작년 11월 10일 금요일이었습니다.
“우리 수도원 대주교 소티리우스가 뽀르피리오스 제자입니다. 이 수도원 자리도 그가 정해 준 곳입니다.”
“한국에 그가 오셨었나요?”
“아니요. 아토스에 계신 스승에게 제자 소티리수우스가 가평 이 자리를 보고 수도원을 세우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샘이 두 곳에 있어서 수도원 자리로 좋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물이 세 군데 있다고 말하면서 그 자리에 수도원을 세우라고 해주셨습니다. 나중에 보니 한 군데가 더 발견되었습니다.”

 신비하게 들렸습니다. 3층 정교회 예배실에 모두 모여 소티리우스 원장을 기다렸습니다. 조금 후 백 은영 수녀가 대주교 소티리우스를 모시고 들어 왔습니다. 89세 답지 않게 정정하였습니다. 그는 우리의 관심사 뽀르 이야기를 상세히 하여주었습니다. 테블렛으로 뽀르의 목소리까지 들려 주었습니다. 뽀르가 병걸렸을 때 드린 예수 기도 육성이었습니다.

 대주교 소티리우스는 1976년에 한국 정교회가 무너지고 있다는 편지 한 장 받고 한국으로 왔습니다. 40년 전입니다. 그가 죽으면 묻을 작은 기와 무덤까지 지어놓았습니다. 처음에는 무엇인지 몰랐다가 가서 보고 놀랐습니다. 낙엽으로 덮여 있는 자리가 인상깊었습니다.

 12시부터 1시까지 대주교 소티리우스 대주교와 이야기하기로 되어 있었는 데 진지하고 질문이 많아 1시 30분까지 이어졌습니다.
 점심 식사를 하고 2시 30분부터 4시까지 백 은영 수녀와 같이 뽀르 공부와 질문 시간을 가졌습니다. 모두가 은혜로운 공부에 푹 빠졌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모두 신비를 느꼈습니다. 깊은 영성을 접하고 돌아 갈 시간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여기에 정교회 교인들이 얼마나 찾아 오나요?”
“한국에 우리 정교회 성도가 얼마 되지 않아서 찾아 오는 사람도 없어요.”
“그러면 운영은 어떻게 해요?”“어려워요. 입동이 되었는 데 겨울을 지낼 난방비도 걱정이지요.”

 이 말을 듣고 감사헌금을 넉넉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수도생들에게 개인적으로 헌금하라고 귀뜸하였습니다. 모두 얼마인지는 모릅니다. 그 후 백 은영 수녀는 나를 잊을 수 없는 사람으로 알고 대하여 주었습니다. 이렇게 후한 헌금은 처음이라는 반응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렸을 뿐입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백 은영 수녀에게 아토스 방문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한 달 가량 지났습니다. 백 수녀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강 목사님! 아토스에 가고 싶다고 하였지요. 저는 그리스에서 7년 공부하였지만 여자라 못 들어갔어요. 아토스 초청권을 가지고 있는 우리 대주교 소티리우스 제자 데오로고스( Theologos) 수도사님이 아토스를 떠나 잠간 한국에 오셨습니다. 그 분에게 사정하면 초청장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제가 자리를 마련할 께요.”
 그리고 몇 차례 전화를 주고 받더니 날자를 정하였습니다. 나와 점심 식사를 같이 하기로 하였습니다. 약속한 날 데오로고스 수도사와 같이 식탁에 앉았습니다. 언어는 영어였습니다. 제가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데오 수도사님! 저 아토스를 보고 싶습니다.”
 “누구신가요?” “감리교 목사입니다.”
 “감리교 목사는 초청할 수 없습니다.”
 “저는 수도원 관광하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한국에 수도원을 세우려고 합니다.”
 그는 눈이 동그래지면서 나를 응시하며 물었습니다.
 “정말입니까?”
 “네. 이미 건축에 들어 갔습니다.”
 “좋아요, 초청해 드리겠습니다. 언제요?” “저는 7월이 영성 훈련기간입니다. 해마다 7월이면 교회 밖에 안 나가고 십자가 밑에 6시간 앉아 있곤 하였습니다. 7월에 영성훈련차 들어가고 싶습니다.”
 “아토스는 수도사들이 수도에 방해받지 않으려고 하루에 정교회 성지 순례 교인 100명, 외국인 15명씩 밖에 비자를 주지 않습니다. 국법입니다. 7월은 방학기간이라 하루 1,000명도 넘게 비자 신청이 들어 옵니다. 어렵습니다.”
 “그래도 저는 7월 외에는 시간 내기가 힘든 데요.”
 “그럼 빨리 서류를 주십시오.”
 “저 수도원 운동을 같이 할 몇 친구들도 같이 가고 싶은 데요.” “서류를 주십시오.”
 그래서 수도원 운동을 같이 하기로 한 장로교 목사 조 승현 목사, 황 갑진 목사 인적 사항을 드렸습니다. 3명 모두 7월 3일 입국하는 비자가 도착하였습니다.

 

   
▲ 데오로고스 수도사와 함께


 통역 걸림돌

 우리 교회 여행사 사장 김 은영 집사에게 모든 일정을 맡겼습니다. 우선 중요한 것은 그리스어를 할 줄 아는 이를 구하여 같이 들어가야 합니다. 가서 얼굴만 쳐다 보다 올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김 집사는 그리스 지사를 통하여 통역을 구하였습니다. 하루 40만원 4일 160만원 주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습니다. 7월 입국자 외국인은 마감되었습니다. 아무리 사정을 하여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비자가 거절되었지만 포기하지 말고 또 넣어 보라고 하였습니다. 마찬가지였습니다. 결국 통역없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왕복 비행기 7번, 버스 두 번, 서울 대전 거리 택시 두 번, 배 두 번 타야하는 험란한 여정이었습니다. 길에다 뿌리는 돈만 300만원이었습니다.

 아토스국은 차로 들어가는 길은 없습니다. 너무 험란하여 길을 만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배로 가야 합니다. 아우라누포리스(Ouranoupolis) 항구에서 비자를 받아 배를 타고 아토스로 들어가야 합니다. 비자주는 시간이 아침 8시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거기 가서 자야 합니다. 데살로니끼 공항에 내리니까 밤 10시였습니다. 세 번 비행기를 갈아 타고 시달린 몸을 택시에 실었습니다. 공항에서 아우라누포리스 항구까지는 150km입니다. 서울에서 대전 거리입니다. 택시를 타고 달렸습니다. 20만원 가량 나왔습니다. 밤에 수고하였다고 10 유로 15000원 가량을 더 주었더니 너무나 고마워 합니다.

 
 비자받아 입국

 아침 일찍 흥분스러운 마음으로 일어나 비자국에 갔습니다.
 이미 만들어 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몇 명 안 되기에 순식간에 업무가 끝났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40유로인 데 나는 성직자라고 30 유로만 내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려운 비자를 받아 들고 당당하게 배에 올랐습니다. 100% 남자뿐입니다. 해안을 빙둘러 20대 수도원이 지어져 있습니다. 배에서 다 볼 수 있습니다. 대수도원마다 배가 정착합니다. 수도원에 공급할 물건들이 내려지고 수도원 순례객들이 내립니다. 순례를 끝낸 사람들이 탑니다. 항구마다 부산하였습니다.

 작은 수도원 300여개, 대 수도원 20여 곳입니다. 감탄입니다. 수도원 규모가 상상을 초월하였습니다. 우리 교회 건물이 100억 정도 되는 데, 우리 교회 건물만한 건물이 한 수도원에 수없이 많습니다. 대규모입니다. 내가 충주에 지어놓은 수도원은 코끼리와 개미로 비유할 수 있을 것같았습니다. 건축 재료를 배로 날라야 합니다. 험한 산을 개발하여 지고 올라가야 합니다. 이렇게 지은 건물들입니다. 더구나 천년전에, 수 백년전에 지은 건물들입니다. 중간 중간에 작은 독거 수도원, 은수자 수도원들이 눈에 들어오고 있습니다. 조그만 수도원까지 보이는 건물은 모조리 사진에 담았습니다.

 

   
▲ 시모노폐트라 수도원

 

   
▲ 조그라프 수도원

 

   
▲ 배타고 둘러 보는 아토스 수도원들

 

   
▲ 배타고 둘러 보는 아토스 수도원들

 

   
▲ 배타고 둘러 보는 아토스 수도원들

 

   
▲ 배타고 둘러 보는 아토스 수도원들

 

   
▲ 배타고 둘러 보는 아토스 수도원들


 케리 케라시아(Kelli Kerassia)

 우리가 내려야 할 항구는 아토스 끝에 있는 케리 케라시아 항구입니다. 배가 이 곳 부두에 도착하였습니다. 내리는 사람은 우리 셋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세 명을 내려놓고 배는 떠났습니다. 앞에는 높은 아토스 산 2033 m가 우뚝 가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반대편은 섬하나 없는 바다입니다. 집도, 사람도 없습니다. 오직 나무와 바닷물뿐입니다. 어떻게 하여야 할지 망막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당황입니다. 어떻게 데오로고스 수도사를 찾아야 할지 몰랐습니다.

 이 때 검은 수도복을 입은 수도사 한 분이 나타 났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다가 왔습니다. 반가워서 내가 물었습니다. 의외에도 영어가 통하였습니다.

 “데오로고스 수도사님을 아시나요.”
 “물론이지요.”
 “그를 만나러 왔어요.”
 “그래요? 이 산을 한참 올라가야 합니다. 길만 따라 가세요. 갈림길은 하나뿐입니다. 그 갈림길에서 우쪽으로 가세요.”
 내가 공손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초행이라 혹시 길을 잃어 버리면 다시 내려 올 테니 같이 가 주실 수 있나요?”
 “어렵습니다. 그런데 물없이 못 가요. 나를 따라 오세요.”

 그는 우리를 샘으로 인도하더니 물을 담으라고 합니다. 우리는 물병 세 개에 물을 담아 하나씩 들었습니다. 등에는 산티아고 800 km를 순례할 배낭 11 kg 이 지워져 있습니다. 우리는 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나중에 알았습니다.
 2033m 아토산 3분의 2까지 올라 가야 합니다. 길은 6km였습니다. 걷고 보니 길이 아니라 물이 흐르는 계곡이었습니다. 돌만 가득한 길입니다. 7월의 태양이 이글거립니다. 경사는 가파랐습니다. 너무 너무 힘들어서 100보 가다가 쉬고, 걸음을 세면서 100보 세고 나면 쉬곤하였습니다. 겉옷까지 모두 젖었습니다.

 걷다가 쉴 때면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고 상의 옷을 다 벗었습니다. 해가 지기 전에 올라가야 하니까 오래 쉴 수도 없었습니다. 쉬다가 다시 배낭을 멜 때에는 죽기보다 싫었습니다.
“내가 왜 이 고생을 하여야 하나?”
 물을 아껴 마시려 해도 조금 가다가 물이 다 떨어졌습니다. 조 승현 목사는 왼 발이 돌에 부딪쳐 삐끗하더니 삐었습니다. 황 갑진 목사는 쉬면서 시계를 풀어 놓아다가 잊어 버렸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천근 만근이었습니다.
 6 km를 네 시간 걸려 올라갔습니다. 1시에 출발하였는 데 5시였습니다. 드디어 깊은 산속에 수도원 건물이 나타났습니다.

   
▲ 데오로고스와 함께

 

수도원에 들어섰습니다. 수도사 한 명이 밭에 물을 주고 있었습니다.
 “여기가 데오로고스 수도사님 계신 수도원인가요?”
 그는 반갑다고 달려 오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네. 기다리세요.” 조금 후 데오 수도사가 우리 앞에 나타났습니다. 9개월 전에 한국에서 본 수도사입니다. 우리를 초청하여 준 수도사입니다. 얼마나 반가운지 나는 그를 끌어 안고 울었습니다. 온 몸이 땀에 젖은 나를 끌어 안고 그가 귀에 대고 말했습니다.
 “5시가 예배 시간인 데 30분 늦추겠습니다. 샤워하고 옷 갈아 입고 예배실로 오세요.”
 우리 때문에 예배 시간을 변경한 것을 알았습니다. 재빨리 서둘러 샤워를 하고 흠뻑 젖은 옷을 모조리 벗어 빨래까지 각자 마쳤습니다. 그리고 예배실로 들어 갔습니다.
 
 (다음 주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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