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여론을 반향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 하나가 패러디이다. 그러나 패러디는 듣거나 읽는 자들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 수 있는 내용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렇지 못하면  ‘웃자고 이야기 하는데 죽자’고 덤벼드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은 패러디이다. 박해 받은 신자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 당시 로마라는 공권력의 압박을 피하기 위해서 은유와 상징으로 쓴 글이다. 강자의 입장에서 자기 주장을 목소리 높여서 할 수 있는 반면에 약자의 입장에서 주장을 하는 방법으로 음모론이라는 것이 있다. 음모론은 보통 자본과 국가와 같은 총체적으로 저항할 수 없는 체제에 필사적으로 대항하려는 약자의 상상력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건전한 음모론자가 되려면 의심하되 의심을 지나치게 확신해서는 안 되는 조건이 있다.

예수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한 것은 현실에서는 전혀 실현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이었다.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세상을 망할 것으로 보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음모론적인 시각일 수도 있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음모론적인 시각에서 보면 현실은 모두 전복의 대상이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참된 기독신앙을 가진 자들은 이 세상에 대하여 음모론자들 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얼마든지 사이비 음모론으로 빠질 함정이 있는데 복음서가 아닌 요한계시록에서 길을 찾는 이들이다. 나도 20 대 한 때 조용기 목사의 요한계시록 강해를 듣고 요한계시록에서 헤매던 때가 있었다.

내가 페이스북에 이런 내용을 썼더니 어떤 이가 “조용기 목사도 지금쯤 창피해 하고 있을 것”이라고 댓글이 달렸다. 그러나 나는 전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조용기 목사의 해석은 단순 무식한 세대주의적 성서해석이어서 그가 공부를 더 하지 않는 한 벗어날 수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면서 좋은 영향을 받을 사람도 있지만 나쁜 영향을 받을 사람도 있는 법인데 당시에는 나도 무식해서 조용기 목사에게서 나쁜 영향을 받은 셈이다. 한 동안 그의 종말론에 세뇌되어(다행히도 증세가 심하지는 안았지만)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친구들에게 핀잔을 많이 받았다.

판타지는 현실이 아니지만 때로는 당사자의 삶을 이끌어가는 강한 힘이 되기도 한다. 자기만의 판타지를 갖는 것은 남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어도 자신의 삶에는 중요하기도 하고 때로는 삶의 큰 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현실의 무기력이나 무의미를 견디기 위해서 판타지가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런데 판타지가 집단적일 때는 위험할 수 있다. 한국인들 가운데는 지금 급격히 깨져나가는 중인 박정희 판타지-사실 그대로 보다는 매체들에 의하여 심겨진-에 젖어 있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박정희 판타지의 교주는 그의 딸이었다. 잘 알려졌다시피 박근혜는 박정희 판타지에 묻혀서 살고 있는 사람이다. 또 하나의 산산이 깨어진 판타지는 안철수의 ‘새정치’라는 판타지이었다. 안철수의 판타지는 자기가 정치를 하면 기존 정치에서 실험되지 않았던, 기존정치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발생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희망이었다.

요한계시록은 판타지이다. 밧모섬으로 유배를 간 요한이 본 환상에는 강물을 내뿜는 용이 나오고 여섯 날개와 눈이 수도 없이 많이 달린 기괴한 생물들이 등장하며, 사람의 얼굴에 사자 이빨을 가진 메뚜기 괴물, 입에서는 불을 뿜고 이상한 머리가 달린 뱀 꼬리를 가진 말이 나타나며,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에머랄드 성을 연상케 하는 휘황찬란한 하늘의 성이 나온다.

세상을 뒤엎으려는 판타지! 어쩌면 예수가 그런 것을 가졌다고 볼 수는 없을까? 뒤엎는 방법이야 물론 폭력적인 것이 아니고 현실에서 이루어 질 수 없는 것이니 판타지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판타지, 혹은 목표, 아주 작게 표현해서 소망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것을 가진 사람은 삶을 긴장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종말을 강조하거나 자기들만 선착순 구원의 특혜를 받는다고 믿는 신흥종교에 빠진 사람들이 그렇게 긴장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비록 꿈이 깨고 나면 본전 생각이 간절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