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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엄마아빠들과 함께한 11일 여행(4) "아메리카의 노인들"
박인환  |  gojumo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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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년 07월 08일 (일) 23:33:09
최종편집 : 2018년 07월 14일 (토) 22:59:31 [조회수 : 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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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엄마아빠들과 함께한 11일 여행

4.네 번째 이야기 - 아메리카의 노인들


29년 전 화정교회에 부임하였을 때 교회에는 노인이 많았었다. 당신네 아들 뻘 쯤이나 되는 젊은 목사임에도 그 분들은 당신네 목사라고 담임목사를 끔찍이도 존중하고 어려워하기도 하였다. 많이 배우지 못하고 평생 논밭에서 농사만 지으며 살아오신 분들이지만 그들의 말씀에는 지혜가 넘쳐났다. 그 분들이 옛날 살아오신 이야기들을 듣고 메모하였다가 “때론 자전거를 메고 갈 수도 있다”는 제목의 책을 출판하기도 하였다. 화정교회 30여 년의 목회가 재미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가 노인들의 순수한 마음과 배려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지 않아도 노인들을 공경해야 한다는 생각이 깊었던 터라 지난 29년 동안 화정교회의 노인들을 나름대로 공경하고 돕는 일에 정성을 들여왔다.

그런데 세월호참사 이후 태극기부대라는 노인들을 접하게 되면서 그 동안 가지고 있었던 노인에 대한 공경심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 역시 점점 노인이라는 이름을 향하여 가는 60대 초반의 그리 젊지 않은 사람이지만, 지난 몇 년 동안 노인이라는 두 글자가 내게는 스트레스 그 자체였다. 일당 몇 만원 받고 동원되어 관제데모나 하고 아픔 당한 세월호 부모들 앞에서 추태를 부리는 그들, 그리고 세월호 노란 뱃지를 가슴에 단 것을 보고 “목사가 왜 그런 것을 달고 다니느냐”며 눈을 부릅뜨고 싸우자고 덤벼드는 나이 많은 장로들(기껏해야 70안팎의 초로들인데)을 보면서 노인들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물론 대한민국의 노인들이 다 태극기부대는 아니고 또 그들처럼 몰상식하지는 않다고 이성적으로는 생각하면서도 노인에 대한 감성적인 느낌은 나도 모르게 좋지 않게 되었다.

 

   
 

 

911Memorial Musium을 관람하고 충격과 감동을 함께 받은 세월호 엄마.아빠들에게 그 날 저녁식사를 대접하신 분은 후러싱제일교회의 송학삼 집사이다. 70대의 노인에, 위암수술을 받은 지 며칠 되지 않아 거동이 불편함에도 굳이 세월호유족들을 위해 몸소 오셔서 비싼 일식 뷔페를 대접을 해주시면서 당신은 정작 아무 것도 드시지 못하시는 모습 자체가 감동이었다. “아, 미국에는 이렇게 멋진 노인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이미 세월호유족과 뉴욕세사모 및 시민들과의 간담회 장소가 취소됐다는 얘기를 듣고는 “한국이나 미국이나 태극기부대는 똑 같구먼” 하는 생각에 울적하였던 터라 그 분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세월호유족들을 위해 오신 것이 더 감동적이었는지도 모른다.

말이 나온 김에 세월호유족간담회 장소 취소와 변경에 얽힌 이야기를 한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김정호목사로부터 “세월호유족간담회를 뉴욕교민회관에서 열기로 하였었는데, 교민회관 측에서 일방적으로 장소 사용 허가취소를 통보해 왔다”며 분개하는 소리를 들었다. 취소 사유가 황당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였다. “세월호유가족은 박근혜대통령탄핵의 원흉이기 때문에 회관을 빌려줄 수 없다”는 것이란다. 교민회의 일을 맡아보는 분들이 대부분 연세가 많은 분들이라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러고 보니 한국사람 사는 곳은 비슷한 것 같다.

이미 1950년대와 60년대, 그리고 70년대를 거치며 독재자들에게 세뇌를 받으며 자란 사람들 가운데 그 세뇌의 독을 빼지 못한 사람들이 한국에도 있고 미국에도 있다. 아니 오히려 미국에 사는 한국노인들이 한국의 태극기부대보다 더하면 더하지 결코 못하진 않다는 얘기도 들었다. 1960년대에 이민 온 사람은 1960년대의 한국 상황에 그 생각이 머물러버리고 1970년대에 이민 온 사람들은 1760년대의 한국 상황에 그 생각이 머물러버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아픈 몸을 이끌고 세월호유족들에게 저녁을 사주시기 위하여 오신 송학삼어르신이 참으로 귀하고 멋진 분으로 보였다.

미국에서 우리에게 감동을 주신 노인이 또 한 분 있다. 보스톤에서 예배와 간담회를 마치고 묵었던 Rolling Ridge라는 숙소(UMC수련원)에 이른 아침에 한 할머니가 찾아오셨다. 1971년까지 중앙정보부 언론담당관으로 있다가 망명하듯 도미하여 지금까지 통일운동에 헌신해오신 박기식 선생의 아내 되시는 분이셨다. 당신 나이가 84세이며 남편은 몸이 불편하여 함께 오지 못했다고 하시며 아쉬워하셨다. 자그마한 체구에 지팡이를 짚고 오신 이 할머니가 세월호 엄마.아빠들을 한 사람씩 안아주시며 눈물을 글썽이셨다. 그러면서 “내가 죽기 전에 세월호 엄마.아빠들을 만나서 손이라도 잡게 되어 고맙고 또 내가 오래 살아서 남북통일의 기운이 싹트는 것을 보게 되어 고맙다”고 하셨다. 같이 사진을 찍고 헤어질 때는 좀처럼 유가족들의 손을 잡고 놓을 줄을 모르셨다. 그러면서 연신 “힘을 내라. 세상이 바뀌고 있다. 당신들이 살아갈 한국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사회일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주변에 이렇게 성숙한 어른이 많아지면 좋겠다. 어떤 노인들은 젊은이들을 절망에 빠뜨리지만, 송학삼집사, 박기식선생 부부 같은 노인들은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준다. 나도 이제 곧 노인 소리를 듣게 될 텐데 잘 늙어가야겠다. 잘 늙어야 후대들에게 작은 희망이라도 줄 수 있는 존재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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