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
가짜난민은 없다우리도 한때 난민이었다
홍주민  |  juminhong@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18년 06월 30일 (토) 15:32:59
최종편집 : 2018년 07월 03일 (화) 05:03:14 [조회수 : 1843]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 1955년 청주의 변두리 난민수용소에 급식소의 역할을 한 교회를 지으신 아버지...

내 책상위에는 한 장의 사진이 놓여있다. 아버지 사진이다. 1955년 청주의 변두리 난민수용소에 교회를 벽돌한장 한 장 쌓아 세우던 현장감있는 사진이다. 질통지고 못질하고 기초를 다지는 작업은 물론 교인들이 함께 했다. 나이 서른다섯에 전쟁의 상흔이 다가시기 전에 교회가 가장 필요한 것은 급식소였다. 특히 난민으로 북에서 내려온 사람들에게 밥 한그릇이 하늘이기에 아버지는 여러 구호물품을 조달받아 전해주는 전달자로서의 교회가 된 것이다.

유엔 난민기구는 한국전쟁중인 1951년 이 전쟁으로 인한 난민들을 위기에서 탈출시키고 그들을 구조하기 위해 구성된 국제조직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종전 초반 무상원조가 없었다면 적게는 수백만명 많게는 인구 절반이 극심한 기아상태에 떨어졌을 것이라는 예측을 한다. 한국전쟁 당시 발생한 난민 규모는 600만 여명으로 미국, 캐나다, 유럽, 호주, 남미, 인도로 흩어졌고 가까운 일본으로도 갔다. 기네스북에 가장 많은 난민을 실은 수송선은 미국의 매러디스 빅토리아호인데 1950년 1월 22일, 1만 4천 여명의 난민을 수송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 배에 탄 한사람이 문재인 대통령이다. 현재 해외거주 800만 여명의 한인들은 1960년대 미국, 캐나다, 유럽, 호주로간 이민자들을 제외하고 거의 난민출신들이다.

제주에 500명의 예멘 난민들이 들어와서 나라가 온통 난리다. 우리나라 인구의 10만분의 1정도가 들어왔다고 호들갑을 떠는 것이다. 얼마 전 독일인들이 와서 간담회를 한 적이 있다. 한국인들이 왜 독일은 120만 명 정도의 이슬람 난민을 수용하는가 하며 이해할 수 없다고 하며 이슬람의 호전성과 문란함 등 부정적인 이야기를 비추었다. 그러자 독일인은 그렇게 대응한다. 독일 인구가 8000만명인데 120만정도 들어온 것을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단다. 한 교실에 80명의 학생들이 있는데, 한명이 새로 들어오면 큰 영향이 있는가 하며 반문한다. 그리고 이슬람도 평화를 존중하는 종교이기에 그들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면서 출애굽기에 나오는 여호수아의 말,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 격려의 말을 전한다. 그리고 독일은 난민이 들어와서 오히려 사회적 문화, 연대의 기운이 더 활성화되었단다. 특히 교회는 디아코니아가 직접 개입을 해서 난민을 섬기다보니 교회를 다니다가 안 나왔던 이들도 다시 교회에 출석하는 기이한 현상도 벌어진단다. 더 나아가 이슬람인 난민들이 자기나라 주변의 이슬람국가에서도 자신들을 받아주지 않는데, 기독교 국가인 독일에서 흔쾌히 자신들을 받아 주는 것으로 인해 기독교로 개종하는 사례도 나타난다고 한다.

어찌보면 나는 한국전쟁이후 세계의 수많은 나라들이 보내온 소중한 생명의 후사들로 인해 연명해온 사람이다. 어렸을 때 교회가 급식소였으니 늘 구호물자가 있었고 가난하지만 배를 채울 수 있는 최소한의 먹거리는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얼마 전 제주에서 만난 예멘 친구들은 대부분 세월호 세대들이었다. 20-28세의 이들은 마치 나의 아들과도 같은 어린 아이들이었다. 나의 어린 시절과 나의 아들들의 얼굴들이 오버랩되어 가슴이 메어졌다. 나의 아들이 기타치면서 노래하는 애라고 하니 눈이 동그랗게 되면서 자기도 노래를 좋아한다고 스마트폰의 영상을 보여준다. 이들이 가짜일까? 아니다. 이 친구들이 온 목적은 단 하나이다. 생존을 위해서 이다. 물론 이들은 심사를 통해 이제 가려질 것이다. 하지만 진짜 난민으로 받아들여진 경우는 1994년 이래 34000명이 난민신청을 하였으나 결국 난민지위를 획득한 사람들은 826명이다. 결국 얼마 안있으면 그들은 등급으로 분류되어 난민지위를 획득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2.4%이다. 아니면 인도적 체류자로 분류될 것이다. 이도저도 아니면 본국송환 내지 타국으로 송출되어질 것이다.

500년 전 스위스 제네바에는 장 칼뱅이라는 프랑스출신 개혁가가 난민신세로 개혁운동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임종 얼마앞두고 획득한 국적은 서러움과 회한의 결과물이었다. 하여 칼뱅은 그 도시에 이주민과 난민을 위한 안전장치를 만들어 당시 전 세계에서 외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도시로 유명하였다고 한다. 그 결과, 오늘날 국제기구 200여개가 제네바에 존치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리라. 제주도, 진정한 마음으로 평화의 섬으로 남길 원하는가. 배척과 혐오의 눈길을 거두시라. 한국,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의 심장부로 역할을 하기를 바라는가. 사선을 넘고 이 땅에까지 찾아온 난민들을 따듯하게 맞이 하라. 평화는 바로 거기에서 시작된다.

홍주민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11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1개)
0 / 최대 22400바이트 (한글 11200자)
- 금지어 사용시 댓글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 [댓글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도배성, 광고성, 허위성 댓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지나가다 (99.225.236.86)
2018-07-06 21:15:07
난민을 받아야 하지만,
한국 땅에서 난민들의 삶을 생각하면,
안 받는 것이 좋습니다.
온갖 편견과 인종차별 속에 살아가야 할 텐데,
이게 관연 좋은 것인지,
오히려 북미 땅의 흑인들 처럼 증오 범죄로 얼룩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안할라면,
정부에서 난민 기금 만들어서 한국 문화에 적응할 수록
교육도 시키고, 직업도 알선시키고, 거주비도 지원해 주어야 합니다.
아무튼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받아야 하지만, 한국 땅에서 살아가야 할 그들의 삶도 기구합니다.
리플달기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