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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용맹기도
최용우  |  9191az@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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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년 06월 25일 (월) 12:25:43
최종편집 : 2018년 06월 25일 (월) 12:27:49 [조회수 : 4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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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최용우

해도 해도 갈급함을 느끼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저는 ‘기도’에 대한 갈급함이 해도 해도 부족하다는 갈급함을 느낍니다. 아, 내가 기도를 그렇다고 엄청나게 하는 것은 아니니 ‘해도 해도’ 라고 하믄 안되갓구만요.

기독교를 기도교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기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하나님과의 연결고리이기 때문입니다. 그 고리가 끊어지면 서로 아무 관계가 없어집니다. 만약 목회자의 기도 고리가 끊어지면 하나님과 상관없이 ‘목회자의 야망’과 ‘성공’을 위한 인위적인 목회를 하게 되고, 일반 성도들이 기도하지 않으면 무늬만 기독교인이 됩니다.

제가 불교의 스님들에 대해 딱 한 가지 부러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름과 겨울에 하는 안거(安居)입니다. 스님들은 1년에 한번씩  100일 동안 절 문밖을 나가지 않고, 새벽 3시부터 벽을 보고 앉아서 용맹정진을 시작합니다. 밥 먹고 정진하고 밥 먹고 정진하고 밥 먹고 정진하다 자고 일어나서 다시 밥 먹고..... 오직 벽만 보고 앉아서 ‘화두’를 붙잡고 용맹스럽게 정진을 합니다.

일년 내내 한 주도 쉴 틈 없이 바쁜 목회자들이 만약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한적한 곳에 가서 1년에 단 1주일만이라도 새벽 3시부터 일어나 밥 먹고 기도하고 밥 먹고 기도하고 밥 먹고 기도만 하는 ‘용맹기도’를 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목회자들이 세미나에 가서 ‘방법’을 배워오는 것이 아니라 ‘벽’을 바라보고 앉아서 하나님을 만나고 온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벽을 향해 앉는다는 것은 이 세상 수단과 방법을 모두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하나님만 만나겠다는 결기입니다.

   
▲ 사진:최용우

쓸데없는 일?

개그맨보다도 더 웃긴다는 목사님의 인터넷 설교를 듣는데 “절간의 중들을 보세요. 그들은 허구헌 날 벽을 보고 앉아서 진리를 찾는다고 합니다. 쓸데없는 짓이에요. 예수가 진리인데 벽을 보고 앉아서 도대체 뭘 찾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얼마나 간단합니까? 그냥 예수님만 믿습니다... 하면 되니까 말입니다.”

이 목사님은 참 쉽게 예수님을 믿으시네요. 부럽습니다.

마틴 루터는 ‘내가 정말 구원 받았는가?’ 하는 문제로 벽을 바라보고 앉아서 한없이 고뇌하였습니다. 그는 로마의 성 베드로성당에 있는 ‘참회의 돌계단’을 무릎으로 기어올라 무릎이 온통 벗겨지고 피투성이가 되도록 회개하였지만 그 심령에 구원의 확신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어둡고 지루한 영혼의 방황 끝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1:17)는 말씀을 받고 그 영혼이 깨달음을 얻고 쉼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거스틴은 타락과 방종의 죄악 속에서 그 영혼이 고갈 상태에 이르렀을 때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13:13-14)는 말씀을 받고 그 영혼이 자유함을 얻어서 글을 썼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믿고 있는 ‘복음’에 대한 메시지는 마틴 루터, 어거스틴, 칼빈 같은 사람들이 벽을 보고 앉아 눈물을 흘리며 얻어낸 귀한 보화입니다. 그분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복음’이 무엇인지도 모를뻔 했습니다. 우리는 아무 노력 없이 아무 대가 없이 그분들의 것을 받은 것뿐입니다. 우리의 노력이 들어가 있지 않기 때문에 사실은 복음이 복음으로 대접하지 못하고 그래서 그것이 얼마나 귀한 열매인지 우리는 사실 잘 모릅니다.

스님들이 벽을 보고 앉아서 찾는 ‘도’가 무엇인지 저는 잘 모르겠지만 그분들의 노력을 ‘쓸데없는 짓’이라고 비꼬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우리들도 자극을 받아서 깊이 묵상하지 않아 천박한 우리들의 신앙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한 절 붙잡고 벽 앞에 앉아 몸부림을 치다보면 그 말씀이 의미하는 엄청난 깊이의 ‘도’를 깨닫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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