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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을 넘어
김기석  |  vorblick@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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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년 06월 20일 (수) 01:09:48 [조회수 : 6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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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폴 사르트르는 '타인은 내게 있어 지옥‘이라고 말했다. 이 함축적인 문장은 <존재와 무>에서 제시된 인간관계에 대한 설명이다. 서구적 주체는 자기를 유지하기 위해 타자를 객체화하여 격하시키려고 경쟁한다는 것이다. 타자를 지옥으로 경험할 때 세상은 안전한 곳도 지속 가능한 곳도 아니다. 그때 세상은 냉랭하기 이를 데 없는 낯선 곳으로 변하고, 사람들은 외로운 단자처럼 세상을 떠돌 수밖에 없다. 신영복 선생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바로 이런 현실을 절묘하게 포착하고 있다. 장기수로 오랫동안 복역했던 그는 겨울 징역살이와 여름 징역살이를 실감나게 대조하고 있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37도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 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더욱이 그 미움의 원인이 자신의 고의적인 소행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존재 그 자체 때문이라는 사실은 그 불행을 매우 절망적인 것으로 만듭니다.“

이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인간의 인간다움은 그러한 현실의 질곡에 갇히기를 거부하는 데서 발생한다. 신영복 선생은 어느 날 감옥에서 천사를 보았다고 증언한다. 열대야로 뒤척이다가 간신히 잠이 들었는데 잠결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아, 눈을 떠서 바라보니 한 사람이 잠든 동료들을 위해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도 더위에 시달리느라 전전반측하다가 문득 곁에 있는 동료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리라. 그는 졸지에 그 비좁은 감옥을 거룩한 곳으로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 타자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느끼는 영적 감수성이야말로 이 살풍경한 세상의 희망이 아닌가. 하이데거는 인간을 ‘함께 나란히 있음’(Mit-Einander-Sein)으로 설명했다. ‘너‘를 부정하는 순간 ‘나’도 부정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타자는 지옥이 아니라, 나의 존재 조건이다. 그것은 성경의 일관된 가르침이다. 하나님은 왜 또 다른 흙으로 하와를 빚지 않으시고, 아담의 갈비뼈를 사용하셨을까? 인간 존재는 서로에게 속해 있는 생명임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닐까? 동생을 죽인 가인에게 ‘네 동생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신 까닭은 타자, 특히 약자를 돌보고 지키는 것이 사람됨의 표징임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 아닐까? 타인과 마주 보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일 때 비로소 도덕의 세계가 열린다.

하지만 오늘의 세계는 경쟁을 마치 자연 상태인 것처럼 가르친다. 학생들은 점수 경쟁에 내몰리고, 직장인들은 실적 경쟁에 내몰린다. 국제적으로도 일등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살벌한 구호가 사람들을 죄어친다. 사람들은 인격이 아니라 수단으로 전락하고, 자기 소외는 깊어진다. 이전에 비해 많은 것을 소비하면서도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소외의 산물이다. 자본주의가 제시하는 행복은 어쩌면 신기루인지도 모르겠다. 강수돌 교수는 그러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다.

“진리를 위한 경쟁이 아닌, 타자를 누르기 위한 생존 경쟁, 즉 세계시장을 둘러싼 상품경쟁은 어떤 상품이 승리하는가와는 무관하게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지배를 존속시키는 조건이 된다. 내가 시장경쟁에 참여하는 순간, 그 승패와는 무관하게 경쟁의 희생자가 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넘어 (우리 모두를 지배하는) 자본의 지배력을 강화시켜주게 된다는 것, 이것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은 자본주의 경쟁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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