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엄마.아빠들과 함께한 11일 여행

2.두 번째 이야기 -환대

뉴욕 JFK 공항에는 예정대로 5월 7일(월) 오전 11시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입국심사가 만만치 않았다. 우리가 타고 간 비행기에서 내린 승객이 400여명이었는데, 입국심사대는 딱 2개만 열어놓은 것이었다. 게다가 모든 사람들에게 이런 것 저런 것 다 물어보고 지문을 찍게 하니 시간이 많이 걸렸다. 기다리는 동안 트럼프 욕 많이 했다.

일행 9명이 다 통과하고 나니 오후 1시가 넘어있었다. 플러싱제일교회의 김정호목사와 부목사인 김진우목사가 나와 있었다, 두 분이 거의 세 시간 동안 우리를 기다린 것이었다. 반갑고 고맙기도 했지만 미안한 마음이 더 컸다. 오래 기다리면서 지루하고 짜증이 났을 법한데 김정호목사는 환한 얼굴로 우리를 맞이하며 시장할 테니 식당부터 가자고 하였다.

금강산이라는 한국식당에 도착하니 ‘이민자보호교회’ 맴버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도 두 시간 이상 우리를 기다린 것이었다. 이민자보호교회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불안하게 살고 있는 불법체류자 등의 권익을 찾아주고 그들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였다. 주로 목사와 변호사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미국사회에서 안정적으로 살고 있는 목사와 변호사들이 고통당하며 불안해하는 약자들의 아픔에 공감하여 그렇게 나섰다는 것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또 그들의 가슴에는 하나같이 세월호 뱃지가 있었다. 세월호 엄마.아빠들은 미국에 사는 한국사람들이 세월호뱃지를 달고 있는 것을 본 그 자체로 위로를 받는 것 같았다. 박동규변호사, 최영수변호사, 강창훈목사, 조원제목사, 손태환목사, 김원재목사, 이 여섯 분의 식사대접과 환대를 잊지 못한다.

늦은 점심식사가 끝난 후 우리 일행과 이민자보호교회 멤버들이 곧 플러싱제일교회로 이동하였다. 교회에는 부목사들, 전도사들이 우리를 맞이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감신대의 이덕주교수의 딸도 있었고 공덕교회 박성규목사의 딸도 있었다. 둘 다 각 자의 아버지를 쏙 빼닮았다. 세월호가족들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던 그들의 공감을 잊지 못한다.

담임목사실에 모두 둘러 앉은 후 김진우목사(감신대75학번 동기인 김영진목사의 아들이다)가 미국에서의 우리의 여정에 대하여 브리핑하였다. 우리는 그저 막연한 마음으로 왔는데, 김정호목사가 준비하고 어레인지 해놓은 것을 보니 빈틈이 없었다. “제가 미국일정을 잘 준비할 테니 편안한 마음으로 오라”고 하던 김정호목사의 말이 빈말이 아니었다. 브리핑을 들으며 세월호 엄마.아빠들은 또 탄복하며 위로를 받았다.

저녁식사 때까지는 특별히 할 일이 없으니, 비행기에서 꼼짝없이 14시간 묶여있던 몸도 풀 겸 시내 산보나 하고 오라고 하였다. 뉴저지에서 기차를 2시간이나 타고 온 이민자보호교회의 손태환목사가 동행하였다. 한인타운을 돌아보고 버블티를 파는 곳에서 한참 동안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손태환목사는 장로교회목사이다. 그런데 헤어지기 전 “목사님, 제가 목원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했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박충현목사(안산지방 목사)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예, 그 형님 잘 알고, 그 형님 사모님을 더 잘 압니다. 고향 제천의 선배입니다”라고 하였다. 세상이 넓고도 좁다더니 미국에서 만난 사람도 한 두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 재미있었다. 버블티 값을 계산하려고 했더니 굳이 자기가 내야겠다고 하였다. 나도 굳이 내가 내야겠다고 했더니 “박목사님은 얼마든지 기회가 있지 않습니까, 저는 오늘 헤어지면 세월호엄마.아빠들에게 차 한 잔이라도 대접할 기회가 없잖아요.” 하였다. 그 말에 기꺼이 양보하였다.

지난 4월15일, 세월호4주기 기억예배 설교를 하고 원고를 페이스북에 올렸었다. 28명인가가 내 글을 공유하였다. 내 글을 공유한 사람들 중에는 나와 페친이 아닌 사람들도 있었다. 내 글을 공유한 사람들이 누구인가 하는 호기심에 검색을 하다가 Katie Ha라는 분이 공유한 창에 “세월호 지겹다. 이제 그만하자”는 댓글이 달려있었다. 그 댓글에 대하여 Katie Ha라는 분은 “권사님 그러시면 안 되죠....”라며 그 분을 설득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계속 댓글 공방을 하더니 결국은 “우리 기도합시다” 하며 훈훈하게 결론을 내리는 것이었다. 거기에 내가 댓글을 달았다. “뉘신지는 모르지만 세월호를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을 설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저녁식사는 플러싱제일교회의 하장로님 댁에서 초청하였다. 하장로님은 미국에 와서 맨 손으로 큰 사업을 일군 보험회사 회장님이다. 하장로님 댁에 도착해보니 그 댁의 안주인이 Katie Ha(하금숙권사)였다. 서로 먼 곳에 살아서 한 번도 대면하여 보지 못한 사람이라도 서로 소통할 수 있는 페이스북의 위력에 새삼 놀랐다. 그 날 생전 처음으로 아사도라는 고기를 먹었다. 그 댁 아드님이 훈제하여 주는 고기가 웬만한 식빵만큼 컸다. 이걸 어떻게 다 먹으라고 주나 하면서 먹기 시작하였는데, 하나를 다 먹고 더 먹었다.

그 후 하장로님네는 세월호 엄마.아빠 일곱 명의 뉴욕 숙박 5일을 호스트해 주었다. 거기서 5박을 하는 동안 하장로님은 매일 밤 세월호엄마.아빠들을 지하노래방으로 불러서 함께 노래도 하고 맛있는 음료수도 대접했다고 한다. 마지막 날에는 한 병에 천 불짜리 음료수도 대접했다는데, 나는 시찬이 아빠가 찍어 온 사진으로만 봤다. 쩝. 매일 아침 집을 나설 때마다 하권사님은 과일, 과자, 떡 등을 담은 11봉지를 차에 실어주곤 하셨다. 세월호 아이들이 희생되던 그 시점에 사랑하는 딸을 잃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도 세월호 부모들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기에 그렇게 정성들여 돌봐 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하장로님 내외분의 환대와 정성을 잊지 못한다.

그 날 저녁식사에는 한국에서 잠시 다니러 온 박성규목사가 동참하였고, 뉴욕 ‘세월호를 잊지 않는 뉴욕.뉴저지 사람들’의 회장인 김수진 씨가 와서 세월호유족들과 반갑게 인사 나누었다.

이번 미국여행을 한 단어로 묘사하라면 ‘환대’라는 말로 표현하겠다. 10일 동안 가는 곳마다에서 환대를 받았다. 세월호 엄마.아빠들은 한국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특별한 환대의 체험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