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저희 집 아이들의 먹성이 대단합니다. 제가 성인이 된 후 친정어머니께서 “너희들 어릴 때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제일 무서웠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말인즉슨 먹고 돌아서면 다시 먹을 것을 찾는 4남매를 혹여나 굶기는 일이 생길까 그것이 가장 두려운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오징어 한 축을 사다놓으면 이틀을 못 갔고, 라면을 박스로 사다놓으면 끓여서 먹는 것보다 생으로 부셔 먹는 것이 더 많았습니다. 지금 저희 아이들이 먹는 것을 보니 친정어머니의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 밥을 먹고 돌아서면 바로 배가 고프다고 합니다. 마트에서 사다놓은 냉동피자를 식후에 구워주면 아이들 둘이서 두 판을 먹습니다. 때론 세 판도 돌파합니다. 입이 달고 시시때때로 배가 고픈 아이들을 잘 보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도 오물오물 먹는 입들이 사랑스러우면서 동시에 무섭습니다.

   지난주일 오후에 작은아이가 심심하다며 유치원 시절 친구 집에 전화를 해 달라고 졸랐습니다. 사실 작은아이가 함께 놀고 싶은 친구는 형이 있어 집에서 형과 놀고, 부모님이 장사를 하고 있어 저희 작은 아이가 놀러 가면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 아이를 저희 집에 데리고 오면 형이 혼자서 집에 있어야 하니 그것도 마땅치 않습니다. 어쨌거나 작은 아이는 어른들의 사정은 잘 모르고 매번 그 집 어머니에게 전화를 해달라고 합니다. 전화 연결이 잘 되지 않기 때문에 이리저리 어르고 달래서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남편과 제가 애를 씁니다. 하지만 친구와 놀고 싶은 작은아이는 쉬이 포기하지 않습니다. 지난 주일에도 같은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작은아이가 시무룩해 있는 사이 큰아이는 “엄마 우리 고래 똥 주우러 반암 바닷가에 가요.”하고 말합니다. 돌을 좋아하는 큰아이에게 “반암 바닷가에 예쁜 돌이 많고, 운이 좋으면 고래 똥을 주울 수 있다.”고 말 한 이가 있었습니다. 큰아이는 그 이후 반암 바다에 가자고 지속적으로 저를 졸랐습니다. 저는 날이 추우니 좀 따듯해지면 바다에 가자고 했었습니다. 마침 날씨도 덥고 아이들도 심심해하니 바닷가에 나가 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가 작은아이에게도 바다에 가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바다에 가도 같이 놀 친구가 없다며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고래 똥 같은 것은 없다고 새침하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인터넷에서 고래 똥을 찾아서 보여주자 순간 눈이 반짝이며 고래 똥을 찾으러 바다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저와 아이들의 고래 똥 찾기 모험이 시작되었습니다. 차를 타고 진부령을 내려가면서 작은아이가 말하기를 “엄마 고래 똥이 엄청 비싸대요. 그러니까 그걸 찾으면 내가 원하는 너프건 3개를 사고, 엄마 차를 우리 선생님 차처럼 튼튼한 걸로 바꾸고, 누나 돌을 10개 사주고 남는 돈은 할머니 할아버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이모들한테 나눠줘요.”합니다. 이때쯤 저는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바다에 가도 고래 똥은 찾지 못할 것이고 작은아이가 “누나랑 엄마가 거짓말 했어”하면서 토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이왕 나왔으니 돌아갈 수도 없고 고래 똥을 찾는 척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바닷가로 달렸습니다.

   반암 바닷가는 저도 처음 가보았습니다. 고성은 해변을 따라 곳곳이 해수욕장이기 때문에 못 가본 곳이 더 많습니다. 샛길로 반암 모래사장으로 내려가니 바다 특유의 비린내가 났습니다. 조개를 주우면서 해변으로 가까이 가보니 작은 생선들이 해변으로 쓸려 와서 은빛 몸짓을 하며 파닥대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멸치들이었습니다. 저와 아이들은 그런 광경을 처음 보았기에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해변을 따라 쭉 작은 멸치들이 모래사장에 쓸려와 파닥파닥 파도를 타려고 애타는 몸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멸치가 불쌍하다며 살아있는 멸치들을 손으로 잡아 바닷물 속으로 던져 주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멀리서부터 한 할머니가 무언가를 열심히 정리하며 저희 쪽으로 오고 계셨습니다. 자세히 보니 봉지를 들고 해변의 멸치를 걷어서 담고 계셨습니다. 할머니는 한 봉지 가득 멸치를 담아서 “우리 집이 바로 저기야. 민박도 하는데 한 번 가서 봐봐.”하셨습니다. 손에 멸치 비늘이 가득 묻은 아이들 손도 씻길 겸 할머니 댁으로 따라가 보았습니다. 바로 해변 위에 있는 붉은 벽돌집이었는데 전날 걷은 멸치들은 이미 뜨거운 태양에 바짝 말라 정리가 깨끗이 되어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당일 잡은 멸치를 큰 편상에 쭉 펼치시고는 “내가 22살에 여기 시집와서 평생 살았는데 살기 좋아. 올해는 멸치가 작은 게 많이 왔네. 말려서 찌개 끓여서 먹으면 맛있어.” 하셨습니다. 그렇게 할머니 댁도 구경하고 할머니 슬하의 6남매 자랑도 잠시 들었습니다.

   바위에서 낚시를 하시는 아저씨는 “여기 그냥 뜰채로 뜨면 다 멸치예요.”하셨습니다. 정말 바다 속은 물 반 멸치 반 이었습니다. 해마다 규모는 조금씩 다르지만 멸치 떼가 항상 오는데 올해는 해변으로 쓸려 나온 멸치가 많은 편이랍니다. 큰아이는 멸치들이 불쌍하다고 울상이 되었고 작은아이도 멸치 구명활동을 하다가 신발이 다 젖는 바람에 고래 똥에 대한 기억은 사라져버렸습니다. 저는 속으로 ‘지천에 먹을 것이 있으니 굶지는 않겠다.’며 혼자 좋아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작은아이의 젖은 신발을 빨고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반찬 중에는 멸치볶음도 있었습니다. “멸치들 불쌍해서 너희는 못 먹겠다.”고 했더니 큰아이가 “이건 그 멸치랑은 좀 달라요.”하고 말합니다. 살아있는 멸치가 파닥파닥 애처롭게 뛰는 모습을 볼 때와 이미 잡혀와 말리고 볶은 멸치를 볼 때의 느낌이 달랐나 봅니다.

   고성에서 3년을 넘게 살아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습니다. 제가 가진 지식들은 해변에서 멸치를 줍는 할머니의 성실만 못한 것이 더 많습니다. 평생을 살아도 ‘아는 것’만 알 뿐 세상 대부분의 것은 모르고 살아갈 것입니다. 값비싼 고래 똥은 못 찾았지만 22살에 결혼 하여 지금까지 멸치를 줍는 여든 할머니의 생활의 지혜를 배우고 돌아왔습니다. 살면서 자고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자랑하지 말고 낮추며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