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예한 사회문제를 자신들의 영화 소재로 삼는 벨기에 영화감독 다르덴 형제의 영화 중 <내일을 위한 시간>이라는 영화가 있다. 한 여성 직원이 병가 중이다. 사정이 어려워진 회사. 사장은 나머지 16명의 직원들에게 천유로, 그러니까 약 130만원의 보너스와 병가 중인 직원의 해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 14:2로 보너스를 선택한 동료들. 복귀 직전 주말에 청천벽력 같은 해고를 통고받은 주인공은 투표의 불공정에 문제를 제기하고 재투표의 기회를 얻는다. 그리고 비록 과반을 넘진 못 했으나 주말 동안 설득 끝에 8:8을 만들었던 주인공에게 사장은 복직을 약속한다. 해피엔딩 같은 결말에 사장은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인다. “당신 휴가 기간 동안 보니 16명으로도 일이 가능하더군요. 그래서 9월에 있을 계약직 대신 당신을 복직시키려 합니다. 그때까지 두 달만 휴직이지요.” 그러자 주말 동안 여러 인간군상을 만나면서 마침내 연대의 힘을 경험했던 주인공은 말한다. “남을 해고시키고 복직할 순 없어요.” 그러자 사장은 말한다. “해고가 아닙니다. 단지 재계약을 안 하는 거예요.” “같은 겁니다.” “아닙니다.” 사장의 말에 주인공은 작별인사를 하고 자리를 뜬다.

‘법적으로는’ 사장의 말이 옳다. 그러나 주인공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자신을 지지해준 계약직 직원을 ‘법적으로 정당한’ 절차를 통해 재계약을 못 하게 하고 그 자리에 대신 들어가는 것이 옳을까? 그것은 양심을 거스르는 일이며 불의한 일이다. 그러므로 사장의 말과 주인공의 말은 둘 다 옳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단, 각기 다른 측면에서. 법적으로는 옳지만, 정의로는 옳지 않다.

48억에 매입한 건물을 70억에 팔기 위해 건물주는 그 건물에서 족발장사를 하는 사장에게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300만원이던 임대료를 보증금 1억에 월세 1200만원으로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서촌의 궁중족발이야기다. 물러설 곳이 없는 사장은 강제집행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버티고 있다. 현행법상으로는 불법을 자행하고 있는 셈이다. 5년이 지났으니 보증금과 임대료를 얼마나 올리든 주인 마음대로니까, 그것이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으니까. 바로 이곳에 기독청년들이 연대하기 시작했다. 함께 건물을 지키며 그들은 다음과 같은 구호를 외친다. “하나님의 정의는 법 너머에 있다.”

여러 가지 생각을 들게 하는 이 구호의 원천을 최근 한 지인을 통해 알게 되었다. 아마도 이 구호의 발원지는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다음 말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자체로 법의 바깥 또는 너머에 있는 정의는 해체 가능한 것이 아니다.” 지인은 이 말을 최근 해고 후 12년간 복직을 위해 싸우고 있는 KTX 해고 여승무원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전했다. 1심과 2심에서 해고의 부당성을 인정받아 연달아 승소했으나 어이없게도 대법원에서 패소했던 그 대법원의 판결에 당시 정권과의 거래가 의심되는 정황이 발견된 상황에 대해 지인은 분노하며 저 말을 남겼던 것이다.

정의는 법 너머에 있다는 말, 하나님의 정의는 법 너머에 있다는 말은 ‘법적으로’ 아무 문제없다며 불의를 자행하는 많은 행태를, ‘법적인 문제’를 두려워하여 한없이 움츠러들기만 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다시금 돌아보고 성찰하게 만든다. 당시 실정법에 버금가는 유대교의 수많은 관습법을 어기셨던 예수님, 어쩌면 그분도 같은 확신을 가지셨던 것이 아니었을까?

“화 있으리라, 너희 위선자들아! 너희는 법의 더 중요한 것들을 버렸다. 정의와 자비와 믿음을!” (마 2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