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봉쇄 수도원 개원을 앞두고(7)
강문호  |  mhkang526@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18년 06월 01일 (금) 11:04:07
최종편집 : 2018년 08월 15일 (수) 03:37:11 [조회수 : 5703]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봉쇄 수도원 개원을 앞두고(7)

 

수도의 길

 

6월 10일 16;00 충주 봉쇄 수도원 개원을 앞두고 있습니다. 당당뉴스에 7번 연재 글을 올리며 기도하여 달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야 합니다. 멀리 같이 가고 싶어서 글을 올립니다.

 1. 4월 22일 봉쇄 수도원을 세우라.
 2. 4월 29일 이스라엘 수도원 방문
 3. 5월 6일 수도학교 창립
 4. 5월 13일 수도원 건축
 5. 5월 20일 한국 토속 수도사
 6. 5월 27일 타 종교 수도원
 7. 6월 3일  수도의 길

 

수도원 영성

 

“나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더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수도원 영성의 핵심입니다.

로마를 하루 본 사람은 볼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로마를 한 달 본 사람은 볼 것이 너무 많아서 떠날 수가 없다고 한답니다.

수도원을 모르는 사람은 비난합니다. 천주교를 따라가느냐고 합니다. 세상에서 살면서 소금과 빛이 되어야지 왜 수도원에 파묻혀 사느냐고 불만을 토합니다. 그러나 수도원을 아는 사람은 미칠 정도로 좋아 합니다. 이스라엘에는 수도원이 300여 곳 있습니다. 3,000만원을 들고 다녀보기 시작하였습니다. 91 곳을 보고 나니 돈이 떨어졌습니다. 더 보고 싶고 나 보고 싶은 데 교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 곳 한 곳 다닐 때마다 새로운 맛을 찾았습니다. 묻혀있는 보화를 캐내는 것같은 짜릿함을 맛보았습니다.

차는 차도로 다닙니다. 사람은 인도로 다닙니다. 그러나 수도는 수도의 길이 있습니다. 수도사는 수도사의 길이 있습니다. 전자제품을 사면 매뉴얼대로 사용하여야 오래 그리고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똑같은 말인 데 훈련받지 못 한 말은 고기값 정도입니다. 카자크스탄에 갔더니 최고의 대접은 말고기였습니다. 맛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 순실 딸 정 유라가 타고 다닌 말은 30억원이라고 합니다. 훈련받은 말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하나님은 큰 일할 일군들은 호되게 훈련시키십니다. 그리고 적당히 사용하실 사람들은 적당히 훈련시키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쓰시지 않을 사람은 훈련도 시키지 않고 고생도 시키지 않으시고 편안하게 내버려 두십니다. 거친 파도는 사공을 유능하게 합니다. 무지개를 보려면 비를 맞아야 합니다. 서리가 알곡을 만듭니다. 사탕만으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향료는 으깰수록 향기를 발합니다. 과정이 힘들면 결과가 소중합니다. 천번 흔들려야 어른이 됩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습니다. 넘어지지 않고 배운 빙상 선수는 없습니다. 꿈은 꿈꾸는 자를 가혹하게 합니다.

 훈련도 안 받고 편안하게 살면서 쓰임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적당히 훈련받고 적당히 쓰임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눈물이 펑펑 쏟아질 정도로 호되게 훈련받고 크게 쓰임받는 일군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여호와여 그들을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원까지 보존하시리이다”(시 12:6-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딤전 4:1-6)

수도사도 훈련을 통과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누가 시키면 억지로라도 할 수 있지만 스스로 하여야 합니다. 그렇기에 자기와의 싸움이기도 합니다. 수도의 길이 있습니다.

 

1. 거절

 

수도사의 길은 거절로 출발합니다. 하나님은 <거절의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거절할 줄 모르는 사람을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성경 3대 인물이라고 하면 모세, 바울 그리고 베드로입니다. 이 세 명의 특징은 <거절>입니다. 모세는 궁중을 거절하였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히 11;24)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였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왕이 될 지도 모르는 자리를 거절하였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부귀영화를 거절한 것입니다. 모세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것을, 가장 좋은 곳을, 가장 편한 궁궐을, 사람들이 가장 부러워 하는 왕자의 자리를 거절하였습니다. 바울은 결혼을 거절하고 머믈기를 거절하였습니다. 베드로는 가정을 거절하고 예수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거절을 하신 분이 있습니다. 가장 영성이 깊으신 분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명예를 거절하시며 메시야 하나님의 아들이기를 밝히지 않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생명을 거절하시고 안 죽을 수도 있는 분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며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셨습니다.

물질을 거절하시고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일 곳이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시면서 살아가셨습니다.

자기를 거절하시고 침뱉음을 당하시면서도 십자가에 못박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수도는 거절로 시작합니다. 거절은 수도의 첫 영성입니다.

예수님이 40일 금식기도 하신 곳에 시험산 수도원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 곳에서 수도사에게 나와 아내가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니까 그는 말했습니다.

“여자와는 사진 찍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와 둘이만 사진을 찍었습니다.

 

   
▲ 나와 아내 셋이서 사진찍자고 하니까 여자와는 싫다고 거절하는 여리고 수도원 수도사
   
▲ 그는 끝까지 사진 찍지 않고 혼자 앉아 있다.

 

2. 침묵

 

수도 영성중에 중요한 영성은 침묵입니다.

침묵도 훈련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말을 배우는 데는 3년입니다. 그러나 침묵을 배우려면 50년 걸립니다. 침묵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침묵 훈련을 할 수 있습니다. 아무 말이나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6시간 동안 십자가에 못 박혀 계시면서 겨우 짧은 6 마디 말하시고 나머지 시간은 침묵이었습니다. 6 마디 다 합하여도 1분 정도입니다. 5시간 59분은 침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노크 소리는 조용할 때 더 크게 들리는 법이다.”
 “말하는 사람은 씨를 뿌리고 침묵을 지키는 사람은 거두어 드린다.”
 “조용한 개가 무는 데 으뜸이다.”
 “침묵은 영원처럼 깊고 말은 시간처럼 얕다.”

침묵은 수도에 큰 도움을 줍니다.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스라엘 수도원 91개를 돌아 보면서 인상 깊은 수도원 중에 하나가 성 죠지 수도원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하는 험한 사막 지대에 있습니다. 죠지가 낭떨어지 위에 굴속에 들어가서 5년 동안 나오지 않고 침묵으로 살았던 곳에 지은 수도원입니다. 가파른 낭떨어지 위 동굴부터 밑으로 드레박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배가 고프면 위에서 들어 봅니다. 먹을 것이 있으면 당겨서 먹습니다. 목마르면 당겨 봅니다. 물이 담겨 있으면 끌어 올려 마십니다. 없으면 굶었습니다. 5년 동안 굶어죽지 않았습니다. 누가 담아 놓았는 지 모르는 음식과 물을 먹고 마시며 5년 살았습니다. 5년 침묵하며 살면서 고도의 영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깊이 기도하고 나면 얼굴에 오로라가 나타난다고 들었습니다. 모세가 40일 동안 하나님과 함께 살았습니다. 사람들과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40일간 침묵하며 산꼭대기에서 살다가 내려 올 때 모세 얼굴에 광채가 났습니다. 이것이 오로라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는 오로라가 없습니다. 그런데 수도원에서는 종종 나타난다고 합니다. 깊은 침묵의 영성으로 나타납니다. 특별히 아토스는 수도원만 300여 곳 있는 데 오로라가 많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7월에 가서 확인하여 볼 작정입니다. 침묵은 하나님과 둘이 걷는 안전한 공간입니다. 그렇기에 수도 훈련에 가장 중요한 요소중에 하나가 침묵입니다.

 

   
▲ 성 죠지 수도원
   
▲ 성 죠지 수도원 가는 길
   
▲ 성 죠지가 5년 동안 수도하던 동굴
   
▲ 성 죠지가 음식을 공급받던 바구니

 

 

3. 고행

 

수도의 길중에 중요한 길은 고행입니다.

수도사들의 고행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본능을 억제하는 금욕입니다. 모든 종교에는 수도원과 수도사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고통스러운 곳에서 고행하면서 살았습니다. 자기를 이기는 훈련입니다.

 

(1) 천연 동굴 생활

동굴속애서 겨울의 찬 바람을 이겨냅니다. 여름의 더위와 모기의 뜯김과 싸웁니다. 줄리안 사바스 수도사가 모델입니다.

(2) 진흙집 생활

공기 소통 구멍과 음식을 위한 구멍 하나만 있는 집을 짓고 그 안에서 평생 나오지 않고 살며 복음을 증거 하는 생활입니다. 아비트 수도사가 모델입니다.

(3) 기둥 생활

기둥위에 조그만 공간을 만들어 놓고 그 곳에서 복음을 증거하며 사는 생활 입니다. 시메온수도사가 모델입니다.

(4) 빈 무덤 생활

오래되어 빈 무덤속에서 살아가는 생활입니다. 리코폴리스의 요한 수도사가 모델입니다. 가끔 세 무덤에서 살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는 기도할 때, 다른 하나는 일할 때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필요한 것을 두는 창고입니다.

(5) 버려진 산속의 집 생활

아무도 살지 않는 산속에 버려진 집을 수도원처럼 사용하는 수도사들도 있었습니다. 성 마론 수도사가 모델입니다.

(6) 빈 우물 생활

우물이 말라버려서 사용하지 않고 버려진 것이 있습니다. 이는 수도사들의 고행 금욕 자리가 되었습니다. 에우세비오 수도사가 모델입니다.

(7) 무너진 집 생활

천정이 없어지고 벽만 남은 곳에서 평생 수도하는 수도사들도 있습니다. 추위와 더위, 비와 눈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공간에서 고행하기도 하였습니다. 하늘이 지붕이고 땅이 요가 되었습니다. 돌이 벼게입니다. 대 야고보 수도사가 모델입니다. 이들은 자기 절제 훈련을 극단적으로 하면서 예수님을 닮아 살려고 발버둥쳤습니다. 오직 예수, 오직 복음이었습니다

(8) 기둥 수도원

고사전(高士傳)에 기록이 있습니다. 세상을 버리고 산중으로 들어가서 나무위에 둥지를 만들고 올라가 살았습니다.

수도사는 고행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수도사들은 육체의 욕망을 거절하였기에 고행은 당연한 것입니다. 자기 육체를 영으로 제어하려고 하는 시도입니다.

 

 

4. 감정 조절

 

수도의 길을 가려면 감정 조절을 잘 할 줄 알아야 합니다. 화내면 안 됩니다. 혈기도 금물입니다. 자기를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은 자보다 낫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영양가 있는 차가 있습니다.

“꿀꺽차”

이것입니다. 감정이 폭팔할 때 꿀꺽 마시는 차는 깊은 영성을 선물로 줍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생기는 감정대로 살면 수도사가 될 수 없습니다. 생기는 감정을 조절할 줄 알아야 성숙한 인격입니다.

 

5. 독서

 

수도의 길중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길이 있습니다. 독서입니다. 수도사들은 독서를 일삼아 하였습니다. 그래서 수도원마다 도서관이 있습니다. 그리고 수도원에 보관되어 있는 책들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서적들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성경 필사본들도 수도원에서 보관된 것들이 많습니다. 수도원에서 사본을 찾아 성경을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독서는 수도사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요소입니다.

 

 

6. 성경 암송

 

수도사들은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성경을 암송하는 사람들입니다. 특별히 시편을 암송하였습니다. 읽는 것과 암송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뽀르 피리우스는 “향기로운 삶과 말씀”이라는 두꺼운 책을 저술하였습니다. 그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공부하면 큰 노력없이도 성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수도원에서는 오직 성경만 읽으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원천이고 기본이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은 꿀같이 달다고 하지 않고 “더 달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시 119;103)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시 119;103)

 

 

7. 청빈

 

수도의 길은 청빈의 길입니다. 알퐁소는 청빈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청빈은 무언의 설교다. 잘 준비한 100가지 설교보다 청빈은 더 많은 감동을 준다.”

가난과 청빈은 다릅니다. 어거스틴은 말했습니다.

“나는 가난한 사람은 많이 만난다. 그러나 청빈한 사람은 찾아야 한다.”

첫 수도원을 세운 안토니우스는 청빈으로 수도원을 시작하였습니다.

AD 270년 이집트의 한 시골 마을의 예배당에 스무 살 나이의 안토니우스란 이름의 청년이 들어왔습니다. 때마침 강단에선 마태복음의 한 대목을 읽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마태복음 19;16~21)

이 말씀이 그의 영혼 깊이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결단의 기도가 흘러 나왔습니다.

"예수님.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게 들려주신 말씀 그대로 따르겠습니다!"

그는 여섯 달 전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면서 그에게 기름진 농토를 남겼습니다. 그는 그대로 가서 부모님이 물려주신 유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그의 사랑의 첫걸음은 이렇게 "모든 것을 버리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청빈으로 수도를 시작하였습니다. 그 날부터 그는 마을 어귀에 있는 공동묘지의 빈 무덤으로 거처를 옮기고 기도와 묵상에 전념하였습니다. 그 곳이 그에게는 영적 투쟁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온갖 종류의 유혹과 환영이 그에게 나타나 그를 무너뜨리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아예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사막으로 옮겨 갔습니다. 사막 한 가운데 로마군이 사용하다가 버린 요새가 있었습니다. 그는 그 곳으로 들어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하였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과의 영적 싸움에 승리하여 하늘로부터 임하는 평화와 감격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여섯 달에 한 번씩 친구들이 마른 빵과 소금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생명을 부지하였습니다. AD 285년 그의 나이 35세 때였습니다. 예수님만을 사랑하고자 하는 열망이 그를 사막 깊은 곳으로 인도하였던 것입니다. 그의 이런 선택이 병들어 가던 당대의 기독교를 살리는 수도원 운동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의 삶에 영향을 받은 많은 젊은이들이 사막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러면 그는 더 깊은 사막으로 들어가곤 하였습니다. 356년 그가 105세로 죽을 즈음에는 수천 명의 수도자들이 그를 따랐습니다.

지금 한국교회에 필요한 사람은 유명한 목사가 아니라 존경받는 목사입니다. 교인이 아니라 성도입니다. 목사는 많아도 목자가 없고, 교인은 많아도 성도가 없습니다. 안토니우스와 같은 사람이 요구됩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하여 먼저 자신의 모든 소유를 버리고 가난한 이웃을 돌아보며,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 승리하는 하나님의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어느 분 “하루에 한 가지 버리기”를 작정하였습니다. 매일 무엇인가 하나씩을 버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다 버리고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누구에게 선물받은 난초 두 화분이 있었습니다. 매일 물을 주고 거름을 주며 길렀습니다. 어느 날 다른 곳에 가서 자게 되었습니다. 난초에 물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났습니다. 난초가 말라 죽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서 그 난초를 다른 사람에게 주었습니다. 모두를 비웠습니다.

성녀 테레사는 수도원을 건축할 때 잘 짓기를 거절하였습니다. 건물을 잘 지을 때 하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딸아! 이같은 건물은 세우는 그 날 무너지기를 원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야 할 돈으로 화려한 건물짓는 것을 나는 싫어한다.”

청빈은 수도의 길입니다.

 

 

8. 혼자 있기

 

수도의 길 중에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혼자있기입니다. 수도사는 혼자 있기에 능숙하여야 합니다. 이미 언급한 성 죠지가 그렇습니다. 동굴에서 5년 혼자 있기를 하였습니다.

시메온(390-459)은 <혼자 있기>에 탁월한 모델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기둥에 조그만 움막을 달아 놓고 그 곳에서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하늘과 땅을 연결시킨다는 의미입니다. 그를 만나려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보고 싶어 하였고, 그를 만지고 싶어 하였습니다. 그의 옷자락이라도 지니고 싶어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기둥은 점점 높아졌습니다. 17m까지 높아졌습니다. 37년 동안 기둥에서 내려오지 않고 살았습니다. 밑에 와서 얼굴을 보여 달라고 소리치는 사람들 때문에 영적 생활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둥위에서 오전 오후 두 번 얼굴을 내밀기로 공포하였습니다. 시간을 정하였습니다. 그 시간에 몰려 온 사람들에게 복음을 외쳤습니다. 5만명이 몰려올 때도 있었습니다. 어떤 목사보다 많은 사람들을 변화시켰습니다. 459년 9월 27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그 기둥 밑에 묻혔습니다.

성 다니엘(San Daniel)도 그렇게 기둥에서 33년 동안 살면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시메온 제자입니다.

지금 로마에서는 기둥 수도사들이 살았던 기둥들이 수없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로마 황제들이 이들을 존경하며 직접 기둥을 세워 주었기 때문입니다. 든든하였던 기둥은 지금도 건재하게 남아 있습니다. 작은 바구니를 밑으로 달아 내려 먹고 마실 것을 공급받았습니다.

기둥 수도사들은 고독한 생활, 고행의 진리 탐구에서 그치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 돌아 오게 하는 강력한 멧세지를 전하였습니다. 4세기에 나타난 기둥 수도사들은 11세기까지 이어졌습나다. 거의 700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후에 기둥위에 두 세명 영접할 수 있는 조그만 방을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기둥 수도사들을 사랑하는 이들이 기둥을 잘 만들어 주기도 하였습니다. 기둥 밑은 집회장소가 되었고, 복음 증거하는 곳으로 변하였습니다. 가구는 전혀 없었습니다. 작은 걸상하나가 있었습니다. 오래 앉아 있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기둥밑에 주는 음식을 받기 위한 바구니가 전부였습니다. 관 하나가 연결되어 오물들이 땅속으로 스미게 하였습니다. 기둥 수도사가 목사인 경우에는 밑에 모인 사람들과 더불어 성만찬을 행하기도 하였습니다. 떡과 포도주는 바구니로 올려주면 기도후 다시 밑으로 보내졌습니다. 혼자 있기는 수도사에게 중요한 요소입니다.

 

 

예수님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가려는 무리들입니다. 예수님도 깊은 영성을 지니고 싶으실 때에는 <혼자 있기>를 시도하셨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러 산으로 가셨습니다. 9명은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는 곁에 두시고 예수님은 항상 조금 떨어진 곳에 가셔서 밤새 기도하셨습니다. 9;3;1의 구조였습니다.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마 14:23) 

<혼자 있기>는 수도사의 온상입니다.

 

   
 
   
▲ 아토스 혼자 있기 은수 수도사

 

9. 신비

 

수도의 길에는 신비가 항상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프러스와 마이너스 전기가 부딪치면 불꽃이 튀기게 되어 있습니다. 무한의 하나님과 유한의 인간이 만나는 곳에는 신비가 있습니다. 수도는 하나님과 만남의 길입니다. 이 곳에는 항상 신비가 있습니다.

동굴속에 들어가서 오랫 동안 깊은 도를 닦은 구미선인(久米仙人)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깊은 도를 오랫동안 닦았는 지 구름을 타고 비행하는 도의 경지에 들어갔습니다. 하루는 구름을 타고 가다가 개울에서 빨래하는 여인의 허벅지를 보고 음란한 마음이 들어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구름타는 도가 약해지면서 떨어졌습니다. 그 여인과 결혼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상을 이긴다는 것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수도승들에게는 신비가 있습니다.

인도를 여행하던 순례객이 귀중한 만년필을 잃었습니다. 산속에서 수도하던 수도승에 말했습니다. 그는 80km를 되돌아가서 그 만년필을 찾았습니다. 어떻게 만년필이 떨어진 곳을 알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가 대답하였습니다.

“자꾸 이 곳에서 나를 부르기에 찾아 왔다.”

 

   
▲ 마르사바 수도원
   
▲ 마르사바 수도사와 함께. 뒤에 보이는 동굴속에 수도사들이 수도하고 있다.

지금도 죽은 수도사들 몸에서 향기가 나고 있다.

 

 

10. 순복(順服)

 

수도사는 하나님께 무조건 순복하여야 합니다. 323년 콘스타티누스 황제가 리키니우스 황제를 이기고 기독교를 공인하였습니다. 그 후 순교가 사라진 세상이 되었습니다. “하얀 순교”가 “붉은 순교”를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피흘리던 순교가 거룩한 삶으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순교가 미덕이 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인도 풍속중에 하나입니다.

결혼하고 첫 날 남편이 목욕한 물을 신부가 마셔야 합니다. 결혼후 가정이 평안하려면 아내는 남편에게 철저히 순종하여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는 순복이 수도의 길입니다.

남 아프리카 나타루에 살고 있는 주르족이 있습니다. 추장은 절대 권력자입니다. 어느 날 그는 부하들의 복종심을 알아 보려고 가장 우수한 군대에게 명령하였습니다.

“바닷속으로 행진하라.”

이 말이 떨어지자 말자 2천명 군인들은 바닷속으로 행진을 시작하였습니다. 중지명령이 안 떨어지니까 모두 바다속으로 죽을 때까지 행진하였습니다. 한 명도 명령을 어긴 군사가 없었습니다. 모두 죽었습니다. 이것이 순복입니다.

그래서 글라라 수녀원 대문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습니다.

“이 곳은 죽는 것을 배우는 곳이다.”

순복은 중요한 수도의 영성입니다.

 

 

11. 노동

 

수도의 길이 또 있습니다. 노동은 수도의 길입니다. 굶어 죽어도 구걸하지 않아야 합니다. 수도사는 노동을 의무적으로 하여야 합니다.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아야 합니다.

8시간 노동하고, 8시간 영적인 시간을 가지며, 8시간 휴식과 자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 것이 수도원 영성입니다. 어느 수도원은 새벽 2시부터 일어나 노동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특별히 꿀벌 기르기, 양어장에서 물고기를 길러서 영양 보충하기, 포도주 만들어 팔기등의 자립을 위한 노동은 수도원에서 흔히 있는 노동이었습니다. 어떤 수도사는 새끼를 꼬아 팔기도 하였다. 아킬레스 수도사는 매일 밤 새끼줄 24m를 꼬기도 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수도원에서의 노동은 철저히 창세기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아담에게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하와에게는 잉태하는 수고가 따라야 했습니다. 영혼의 안식을 위하여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은 노동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수도사들은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먹을 것만 자급자족하는 것이 아니라 입을 것도 자급하였습니다. 자신의 옷은 자신이 직접 만들어 입었습니다. 대체적으로 검은 색 만토를 입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만들기 쉽고 관리하기 쉬웠기 때문입니다. 흰옷을 그대로 입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수도사들은 대부분은 농사, 직조, 양치기, 방앗간, 특별한 기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수도사들은 모두가 “게으름은 영혼의 적”이라고 여겼습니다.

 

 

12. 기도

 

기도는 수도의 핵심입니다. 기도없이 가는 길은 나침반을 잃어버린 배와 같아서 방황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르틴 루터는 하루에 2시간에서 3시간 기도하였습니다. 바쁘면 마귀가 틈탈가 두려워 더 기도많이 하였습니다.

요한 웨슬레도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수요일과 금요일에는 오후 3시에 한번만 식사를 하고 기도하였습니다.

강원도 예수원의 대천덕 신부는 “노동은 기도요, 기도는 노동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루터도 “기도는 중노동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캐논 리든은 “기도는 하나님께 지분거리며 떼를 쓰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수도 영성중에 중요한 영성은 기도입니다. 수도사란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 예수님이 40일 금식기도한 자리 - 시험산 수도원
   
▲ 시험산 수도원 뒤 동굴은 수도사들의 수도처

 

13. 거룩

 

수도의 목표는 거룩입니다. 수도의 길은 거룩을 찾는 길입니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 하리라”(히 12;14)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 1;15-16) 

거룩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는 것입니다.

본래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는 것이 거룩이라는 의미도 들어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형상을 닮을 수가 있을 가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그 비결입니다.

 

 

14. 순교

 

수도의 최고 목표는 마지막에 순교하는 것입니다. 한번 죽는 일생을 순교로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모두 순교로 생을 마쳤습니다. 적들에 잡혀 죽는 것만 순교가 아니라 순교적으로 살다가 죽는 것이 정말 순교입니다. 순간적인 순교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순교적으로 살다가 순교적으로 죽는 것이 수도의 길입니다.

동광 수도원을 세운 이 현필은 말했습니다.

“믿을 수록 인격이 나아지지 않으면 사탄과 같아 집니다. 참된 인격이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인격 수양이란 공부가 아닙니다.”

천주교가 기독교인들을 핍박할 때 이야기입니다. 기독교인 420명을 체포하였습니다. 영하의 날씨에 가두었습니다. 천정이 없습니다. 문도 없습니다. 지키는 자도 없습니다.

“예수 안 믿을 사람은 나와서 집으로 가시오.”

며칠 후 가 보니 420명 전체가 얼어 죽어 있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수도의 마지막은 순교적인 삶입니다.

 

 

15. 하나님의 성품

 

베드로가 말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벧후 1:4-7)

 수도의 최고 목표는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제1 성품 덕, 제2 성품 지식, 제3 성품 절제, 제4 성품 인내, 제5 성품 경건, 제6 성품 형제 우애, 제7 성품 사랑

이런 성품을 본받으려는 것이 수도입니다. 수도의 길은 다음과 같은 길입니다.

1. 거절, 2. 침묵, 3. 고행, 4. 감정 조절, 5. 독서, 6. 성경 암송, 7. 청빈, 8. 혼자 있기, 9. 신비, 10. 순복(順服), 11. 노동, 12. 기도, 13. 거룩, 14. 순교, 15. 하나님의 성품

 

수도원 영성과 예수님

수도원의 가장 큰 위기는 의미의 위기입니다. 빅터 플랭클은 인간에게 의미 추구는 쾌락과 맘몬과 권력 추구보다 더 본질적이라고 하였습니다.

“의미에 대한 우리의 원초적인 추구가 실패할 때에 쾌락과 권력을 추구한다.”

예수님은 수도원 설립자는 아니지만 수도생활은 오직 예수 안에서만 그 존재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수도원의 영성은 예수님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복음 안에는 수도원 규칙이 명시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수도원 규칙은 복음을 능가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 수도원이라는 단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숨어서 은밀하게 수도원을 돕고 있습니다. 복음만이 수도원의 본질과 수도원의 의미를 확실하게 알려주는 표준이 되고 있습니다. 복음이 최고의 수도원 규칙입니다. 복음을 따르려고 수도원은 존재하고 있습니다.

 

1. 청빈의 영성

수도원 영성의 주축을 이루는 것이 청빈 영성입니다. 지구상에 사람 중에 그 누가 예수보다 더 청빈하다고 말하겠습니까? 온 우주를 다 가지신 부자 중에 부자요, 재벌 중에 재벌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는 40일 동안 금식하였으나 단식광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길거리에서 나서 길거리에서 살다 길거리에서 죽었지만 고행 찬양론자도 아닙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이 12 제자와 함께 살았지만 가난 예찬론자도 아닙니다. 기껏해야 12제자가 쓸 비상금 정도 가졌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가진 자가 아무 것도 가지지 않았습니다. 진정한 청빈의 모델은 그리스도입니다.

 

2. 거룩의 영성

수도원 영성 중에 거룩의 영성도 중요한 영성입니다. 거룩의 영성은 그리스도의 영성입니다. 거룩은 구원의 필수조건입니다. 거룩은 선택 과목이 아니라 필수 과목입니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 하리라”(히 12;14)

 거룩 없이는 주를 보지 못 합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 할지어다하셨느니라”(벧전 1;15-16)

하나님이 거룩하니 우리도 거룩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수도원의 거룩의 영성은 그리스도로부터 흘러 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감리교를 창설한 요한 웨슬리은 감리교를 창설하면서 말했습니다.

“성경에 의한 하나님의 거룩함을 전 세계 알리기 위하여 감리교를 창설한다.”

수도원 거룩의 근원지는 그리스도입니다. 사막 수도원에서 평생 지내는 수도사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수도원에서 무엇을 하고 있소?”

수도사가 대답하였습니다.

“우리는 넘어지고 일어나고, 넘어지고 일어나고 또 넘어지고 일어납니다.”

거룩을 향하여 영적 싸움을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3. 순복(順服)의 영성

수도원 영성의 5요소 중에 하나가 순복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따르는 것이 순복입니다. 예수님은 순복의 최고 모델입니다. 아브라함은 100살에 난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하는 순복을 하였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복하며 산꼭대기에 큰 방주를 세웠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복하며 반석을 쳤습니다. 다니엘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며 기도하다가 사자굴속에 들어갔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며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순복의 모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복하고 이 땅에 와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5-6)

수도원 영성인 순복은 그리스도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순복을 떠난 수도원은 수도원이 아닙니다.

 

4. 노동의 영성

수도원 영성 중에 중요한 요소는 노동입니다. 수도사는 일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노동의 모델은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이 일하시니 나도 일 한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고 관리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히 1:2)

누가 예수님만큼 일했고 예수님만큼 일하겠습니까? 수도원의 노동 영성은 그리스도로부터 흘러 나와야 합니다.

 

5. 정주(定住)의 영성

수도원 영성 중에 중요한 영성은 정주의 영성입니다. 한 곳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강원도 땅보다 조금 큰 땅 정도에서 평생 살았습니다. 두로와 시돈에 잠간 나갔을 뿐 해외에 나간 흔적이 없습니다. 땅의 정주만이 정주가 아닙니다.

한 가지 사명에 집착하는 것이 정주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명한 구속 사업외의 어떤 것도 공생애 동안에 넘지 않았습니다. 사명에 정주하였습니다. 한눈팔지 않았습니다. 정주의 영성을 배우려면 그리스도에게로 가야 합니다. 수도원 창설자가 예수님은 아니지만 수도원의 주인은 예수님입니다.

물고기가 물밖에 오래 있으면 썩는 것처럼 수도사들은 독방을 벗어나면 죽는 줄 알았습니다.

 

   
▲ 충주 수도원 돌비

 

후미에 드리는 글

 

그 동안 7 편의 글을 대하느라고 수고하셨습니다. 당당뉴스 심자득 목사님에게도 고마움을 드립니다. 읽어주신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댓글로 관심을 보여 주신 분들에게도 감사를 잊지 않겠습니다. 7번 글을 올린 이유가 있었습니다. 봉쇄 수도원을 개원하면서 몇 가지를 알고 싶었습니다.

 

1. 수도원 반대하는 이들의 논리를 구체적으로 알고 싶었습니다.

2. 반대하는 이들과 찬성하는 이들의 정도를 알고 싶었습니다.

3. 같이 일할 동역자를 찾아 내고 싶었습니다.

4. 수도원의 영성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결과는 퍽 만족스럽습니다. 네 가지 목적을 다 이루었습니다.

한번도 댓글로 응답하지 않고 침묵으로 지켜 보았습니다. 수도원의 영성을 사모하는 동역자 수 십명을 찾아냈습니다. 같은 생각을 가지고 같이 걸어갈 것입니다. 우선 같은 목적을 가진 수도원이 2-3곳에 더 세워질 것입니다. 수도하는 이들끼리 네트워크가 될 것입니다.

누가 무어라 하여도 상관없습니다.

내게 그렇게 욕을 해도 천국에서 같이 살 하나님의 가족이기에 싸울 수 없습니다. 생각없이 사는 사람은 사는 대로 생각한다고 누가 댓글을 올린 것을 기억합니다.

세계가 봉쇄 수도원을 반대하여도 나는 세계와 등지고 수도원을 세울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이니까요. 잘 세워서 하나님께 고스란히 드릴 것입니다. 사유재산 안 남기고 하나님 앞으로 가고 싶습니다. 이번에 올린 7편은 6월 5일 출판됩니다.

황 교안 전 총리께서 오셔서 격려해 주시기로 하였습니다. 동네 주민들과 함께 환영 준비 중이었습니다. 제게 총리로부터 문자가 왔습니다.

" 미안해요. 선거 때문에 민감하여 갈 수 없습니다. 따로 방문하겠습니다. 황교안 올림"

이 때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셨습니다.

"황 교안이 온다는 때부터 너는 나를 잊었다."

기도실에 들어가서 한참 울었습니다.

 

죄송한 말씀

그리고 6월 10일 16;00 개원예배입니다. 기도하여 주십시오. 초대받으신 분 외에는 기도만 하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500석 마련되었는 데 자리가 찼습니다. 식사, 기념품, 주차 공간등 500명만 준비하였기 때문입니다. 죄송합니다.

대신 끝나고 많이 들러 주십시오. 손님이 오지 않는 집은 천사도 오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천사가 되어 주십시오. 반갑게 맞을 준비하고 기다리겠습니다.

 

하나님! 고맙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관련기사]

강문호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44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0 / 최대 22400바이트 (한글 11200자)
- 금지어 사용시 댓글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 [댓글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도배성, 광고성, 허위성 댓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