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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쇠퇴가 왜 목사들 탓인가양두구육의 푸줏간 같은 교회들
임종석  |  seok944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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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년 05월 31일 (목) 00:02:23
최종편집 : 2018년 06월 13일 (수) 03:49:33 [조회수 : 2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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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별과 성별은 같은 것이 아니다

 

교회 쇠퇴가 목사들 탓이라는 데에 아니라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목사들이야 자기들 문제이니 왜 그것이 우리 탓이냐 항변하고 싶기도 하겠지만, 그 외의 사람들은 그러는 그들을 향해 혀를 차고 싶을 것이다.

필자도 목사이지만 그들의 대열 말미에도 끼기가 어려울 정도로 얼간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교회 쇠퇴, 목사 탓 맞다’는 입장이다. 그 증거야, 아니 증거고 뭐랄 것도 없이 그 실상들이 외면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을 정도로 차고 넘치는데, 어떻게 아니랄 수가 있겠는가. 머리가 예수님이신 하나님의 교회를 사유재산이라도 상속하듯 제 아들에게 물려주고, 여신도를 상대로 성추행을 하고, 교회 예산에 눈독을 들이고, 사기에다 횡령에 이르기까지 범죄와 비리의 종합세트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현실이 그들의 세계데, 어떻게 아니라 할 수 있겠는가.

이에 그 같은 자들이 사역자 전체의 몇 퍼센트나 된다고 기름 부음 받은 하나님의 종들을 범죄자 취급을 하는 거냐고 할 목사들도 있을 것이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무엇보다 앞에 열거한 행위들을 직접 그리하는 목사들은 그들 전체에 비해 그다지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면에서 맞는 말이다. 그러나 목사가 되었다고 다 기름 부음을 받았다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기름 부음을 받았다면 받지 않은 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되는데, 아니지 않는가.

남들이 안 하는 예배를 인도하며 설교를 하고, 하나님 일 외의 생활을 위한 일을 전혀 하지 않는 전업 사역자인데 왜 구별이 되지 않느냐 할 것인가. 그런 면에서라면 구별된 삶을 살고 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에 있다. 그런 것을 가리켜 구별되었다 하는 데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기독교에서의 구별된 삶이란 그런 것을 말하지 않는다. 성별된 삶을 말한다. 그럼 예배인도나 설교 같은 것도 성별된 것이 아니라 세속적인 것이냐고? 그렇다. 성별된 것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일상을 성별되게 살다가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아보며 저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저 낮은 곳까지 내려가겠다는 각오로 예배에 임한다면 그것이야 물론 성별된 것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나 세속으로 오염된 자아에 일시적으로 분칠을 한 뒤 마음을 새롭게 했다고 착각하고는 근엄한 얼굴을 하고 대제사장이 지성소에라도 들어가는 것 같은 걸음걸이로 강대로 올라가는 것을 성별이라 한다면 그건 세속의 삶만도 못한 성별이다.

설교도 마찬가지다. 자기와는 상관없이 교인들만을 향해 설교를 한다면 그것은 성별이라 하라 할 수 없다. 그렇게 설교를 할 수 있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셨기 때문이다. 남 못잖은 욕심을 가지고 있으면서 버릴 생각도 없이 마음을 비우라 설교를 한다면 어디 그게 성별인가.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욕심 없는 사람은 없는데, 그럼 누구도 욕심을 버리라는 설교는 할 수 없는 게 아니냐 하지 말기 바란다. 그런 말을 하려는 게 아니지 않는가. 아무리 욕심쟁이라 할지라도 그런 설교를 할 수 있다. 다만 교인들에게보다 먼저 자기를 향해 하면 된다. 욕심을 내려놓다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실천하겠다는 각오와 결단을 선행한 뒤 한다면 그는 훌륭한 설교자요 엄격한 성별을 이루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양두구육의 푸줏간 같은 교회들

 

이쯤에서 누군가는 그런데 무엇 때문에 ‘교회 쇠퇴가 왜 목사들 탓인가’라 딴지를 거는 거냐 할 사람도 있을 줄로 안다. 이 말은 그에 이어 바로 ‘목사들 탓이 아니다’라는 표현이 수반되는 것으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맞다. 필자도 분명히 그런 의미로 썼다. 그런데 이 말은 또 ‘교회 쇠퇴가 목사들 탓이 되는 원인이 무엇인가’라고 하는 의미로도 읽을 수 있다. 필자는 이 양자를 염두에 두고 이 말을 썼다. 교회 쇠퇴가 목사들 탓이 맞지만, 그들만의 탓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목사들 말고 또 누구의 탓이라는 말이냐 라는 의문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교인들 탓, 그래, 교인들 탓이 크다. 교인이 있으니 교회가 있고, 교회가 있으니 목사도 있지 않은가. 환언하면 교회가 없으면 그 세습도 없고, 교인이 없으면 교회에서의 성추행 같은 일도 일어날 리 없다는 말이 된다.

세습되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고 목회자가 여신도를 대상으로 성추행을 해도 교회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교회가 교회가 아니게 변질되면 교인들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 말이다. 그야 교회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듣지 않으면 원인을 제거해서라도,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그런 목사를 내보내서라도 교회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하나님의 교회가 분탕질 당하는데, 좋은 것이 좋다는 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종을 대적했다가 그분의 진노를 사지 않을까 두려운가. 그런 일은 결단코 일어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화나시게 하는 것은 목사의 범법을 보고도 못 본 척 외면하는 일이다.

일개 교인에게 무슨 힘이 있어 철옹성 같은 목사와 그를 옹호하는 세력에게 반기를 들 수 있겠느냐고 하지 말라. 힘이 없어 못하겠거든 두말말고, 미련 같은 것도 두지 말고 떠나라. 교회 아닌 교회를 버리고 보다 나은 교회를 찾아 떠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백번 옳은 일이다.

교회를 위해 한 기도와 헌금과 봉사가 아까워서 떠나기가 망설여지는가. 나뿐 아니라 부모님 때부터 땀 흘려 일궈 온 교회라서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니 않는가. 이 교회에서는 그래도 말발이 조금이라도 섰는데 하는 마음이 옷자락을 붙잡고 놓아 주지 않는가.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천하보도도 귀한 내 영혼을 양두구육의 푸줏간 같은, 목사의 탈을 쓴 거짓 사역자가 주물럭거리는 교회 아닌 교회에서 시들어 죽게 하는 것이 옳은가 판단해 보라.

 

 

목사 탈을 쓴다고 사기꾼이 사역자가 되는가

 

그래도 교회인데 말이 너무 심하지 않느냐 하지 말기 바란다. 아버지 목사에게서 아들 목사에게로 넘어가 세습되는 순간 그것은 이미 교회가 아니다. 불법을 막는 데에 앞장서야 할 장로들이 오히려 범법자들이 가는 길에 레드카펫을 깔아 주는 곳이라면 거기는 더 이상 교회일 수 없다.

하나님의 뜻을 빙자하여 성폭행을 정당화하는 것은 전형적인 이단인데, 그런데도 그런 목사라는 자를 두둔하는 자들도 있다. 그러나 그런 자들이야 그 왕국의 중신들이니 어쩌겠는가. 문제는 다른 데에 있지 않다. 그럼에도 그 왕국에 교회라는 간판을 걸고 하는 영업이 성업 중이라는 데에 있다.

고객 없는 매장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속기만 하면서도 다시 찾는 고객이 있다면 그게 바보 아니고 뭐겠는가. 워낙 장사수완이 좋아서 속아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하지 말기 바란다. 저들의 좋다는 장사수완도 교회라는 간판을 걸지 않고는 발휘할 수 없고, 교회라는 간반을 건 이상 성경을 들먹이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성경이 그들에게만 있는가. 고객인 교인들도 교회에 드나들 때마다 옆구리에 끼고 있는 게 성경 아닌가. 조금만 정신을 차리고 읽는다면 그들이 사기꾼이라는 것을 금방 알 일인데, 왜 속은 줄도 모르고 당하고만 있는가.

여신도들을 대상으로 성추행한 사실이 들통 나 교회로부터 쫓겨난 목사 탈을 쓴 성범죄자가 다른 곳에 교회 간판을 걸고 영업을 시작했는데, 그 업소에도 고객들이 심심찮게 찾는 사례도 있다 하니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뿐 아니라 교인이라는 이름의 고객들이 그런 자도 목사라고 두둔까지 한다 하니 요지경도 그런 요지경이 없지 않은가.

몇 갠가의 사례를 좀 삐딱한 어투로 늘어놓아 보았는데, 어떤가. 그런데도 교회 쇠퇴가 목사들만의 탓인가. 교인들 탓은, 그러니까 내 탓은 조금도 없는가.

자신은 돌아다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목사들 탓만 한다면 우리 한국 교회는 언제까지도 침체의 늪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싸울 힘이 있거든 싸워야 하고, 그럴 수 없으면 미련 없이 떠나 조금이라도 더 나은 교회를 찾아야 한다.

그렇다고 목사가 하는 일에 사사건건 트집을 잡아 물고 뜯으라는 말이 아니다. 목사가, 교회가 조금만 비위에 맞지 않아도 부평초처럼 옮겨 다니라는 말도 아니다. 흠이 전혀 없는 목사, 완벽한 교회는 이 지구촌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고, 그에 따라 사는 가운데 목회를 하려 기도하며 애쓰는 목회자는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는 흥해야 하겠고 나는 쇠해야 하리라”(요3:30)라 한 세례자 요한의 말에서 배워야 한다. ‘하나님의 교회는 흥해야 하고 목사의 교회는 망해야 하리라’라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

그런데 어떤가. 세습이 이뤄진 교회 아닌 교회들이 아직도 성업 중에 있지 않은가. 성범죄자가 아직도 목사라는 명함을 버젓이 내어놓고 교회라는 간판을 내걸어 개척이라는 사기행각을 벌이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도 그들 목사 탓 만이라 할 수 있는가.

나는 아니라고, 우리 교회는 아니라고 한다면 다행한 일이다. 아니、은총이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저들 교회의 쇠퇴 탓이 목사에게만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말한다면 그대의 탓 또한 작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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